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Episode 5.

영화 ‘캐스트 어웨이(Cast Away, 2000년 개봉)’를 보면, 불의의 사고로 무인도에 불시착한 주인공이 배구공에 ‘윌슨’이란 이름을 붙여 마치 대화하듯 혼잣말을 한다. 그렇다. 인간에게 의식주 다음으로 필요한 건 누군가와의 소통이다. 그런데 이 소통이란 것이, 내 할 말만 곱게 하고 위로 받고, 공기처럼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인들에게 이런저런 사는 얘기(대부분 삶의 사소한 문제들)를 늘어 놓고 나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곤 하는데, 참 이상하게도 ‘말’이란 것이 사라지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 거나 더 나쁜 쪽으로 확대 해석되어 돌아오는 경우가 심심찮다.

‘진중한 나는 안 그래, 남 얘기 함부로 안 하는 사람이야’라고 자부하면서도 술 한 잔 기울이면, 누군 가가 물어보면, 나도 모르게 자동응답기가 되곤 한다. ‘자기 인생이나 제대로 살 것이지, 왜 남 일에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아?’ 그러는 내가 ‘엄마 있잖아, 아무개가 결혼을 했는데 남편이…’ 이러고 있더란 말이다. 사람 참 볼품없게.

물론, 말이 좀 떠돌더라도 다들 주거니 받거니 그렇게 사는 거니까 그런 대화가 무조건 나쁘다고 할수는 없다. 자식 얘기, 남편 험담, 잘 나가는 친구나 못 나가는 친구 뒷담화로 얻는 심리적 효과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정에 대해 무조건적인 ‘결론’을 내어 나쁘게 전파할 때다. 얼마 전 버스 앞 좌석 50대 아줌마들의 대화를 꺼내본다.

“돈 때문 아니겠어? 아니면 내 손에 장을 지져. 두 팔 걷고 말려야지.”
“아이고, 본인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나저나 영석 엄마 끙끙 앓겠네. 어쩌나.”
“술집여자같이 생겼다고 하더라고. 영석이네 돈이 보통 돈이야? 아무 능력 없는 애가 어떻게 영석이를 꼬셨겠냐고. 봐라, 몇 년 살다가 위자료 받고 내빼지. 안 봐도 비디오야.”

막장 드라마를 즐겨보시나 보다. 이 분의 말에 따르면 모 여인은 술집여자, 남자 돈 뜯어내려고 결혼하는 몹쓸 년이다. 정말일까? 정작 본인도 전해들은 얘기일 뿐인데,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치 진실인듯 전파하고 있다. 둘만의 대화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분명, 영석 엄마에게도 조언이랍시고 떠들겠 지. 진실이야 어떻든,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어떤 과정과 결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하고 슬픈 일이다.

공론화된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내비치고 주장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내 일이 아닌 남의 일을 언급할 때는 그것의 파장도 고려해야 함을 새삼 느끼는 요즘이다. 대대로 남 일을내 일같이 웃고 울어주던, 좋게 말하면 ‘정’이고 격하게 말하면 ‘오지랖’이 깊은 대한민국의 문화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를 만났으니 얼마나 많고 닳은 말들이 허공에서 오고 가는지 모른다. 내 일도 함구하고, 남의 일도 조금은 진중하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고모, 비밀인데요. 아빠랑 엄마랑 싸웠어요.”
대답 1: “뭐? 왜? 어떻게? 막 소리 질렀어? 울었어? 아빠가 잘못한 거야?”
대답 2: “너도 반 친구들이랑 말싸움할 때 있지? 어른도 가끔씩 그래.”

어린 조카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가 내게 흘러 들어왔다. 세상 모르는 어린 녀석도 저러니, 인간의 소통(?) 본능은 막을 길이 없나 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 태도다. 상황을 캐물은들 그들의 가정사를 내가 알면 뭐하고 안다고 해결해 줄 건가? 모두 각자의 인생길이다. 비밀이 없는 세상, 적어도 어설픈 진실을 만들겠다고 나서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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