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우 쿠첸 인사팀 팀장

중국인 관광객 구매목록에 ‘한국산 전기밥솥’이 일찍이 자리잡았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권이라면 우리의 전기밥솥 밥맛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력과 품질에 놀랄 따름이다. 더욱이 생활‧주방가전 품목의 대다수를 국내외 대기업들이 독점하는 와중에도 밥솥만큼은 한국 중소기업들이 꽉 잡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부분이다.
평범한 그러나 한국인 식생활에 필수적인 밥솥을 ‘프리미엄 가전’으로 승격시킨 대표 브랜드 ‘쿠첸’은 모두가 꿈꾸는 이상적인 밥맛을 실현하듯 조직의 변화와 혁신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조진우 쿠첸 인사팀 팀장은 ‘브랜드 가치, 매출규모에 걸맞은 조직’이 되기 위한 그간의 과정을 되짚으며더 높은 목표 달성을 위한 HR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HR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한 것으로 들었다.

동양건설산업에서 인사총무를 시작해 지금의 쿠첸까지 HR만 17년째 해오고 있다. 쿠첸은 2009년 부방이 웅진그룹으로부터 쿠첸사업부를 인수하여 리빙사업부로 운영하다 2015년 인적, 물적 분할을 통해 기업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당시 조직규모가 커지는 시작점에 합류했기 때문에 인사조직의 전문성이 타 조직에 비해 부족한 상황이었다. 몸담은 산업 자체가 건설업에서 제조업으로 바뀐 터라 업무기획과 추진에 있어서도 온도차이가 많이 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쿠첸이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전기밥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일궈오며 기업 경영의 전략적 파트너인 HR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깨달았다. 본사 87명, 공장(천안, 생산직 포함) 193명 전원 정규직으로 구성된 쿠첸은 한 몸, 한 방향으로 직무 가치와 조직문화에 집중하여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경험한 건설업과 지금의 제조업은 인사관리 측면에서 무엇이 다른가.

사업분야를 막론하고 인사의 틀은 유사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 하면 ‘정해진 일을 잘 하면 된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다른 산업으로의 이동은 많은 공부를 필요로 했다. 비교적 크고 장기적인 사업계획과 억 단위 보고에 익숙했던 건설업이었다면, 제조업은 년 단위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분기별, 월별 세부적으로 체크해야할 사항이 많다. 직무 단위도 다양하고 상호 소통해야 할 요소들이 산재하기 때문에 회사의 업과 현장을 모르면 제대로 된 인사관리, 조직관리를 해나가기 어려움을 경험했다. 어떤 산업이건 문제와 답은 ‘현장에 있다’는 원칙 아래, 각 부서 담당자들에게 직접 묻고 배우면서 쿠첸만의 HR을 다듬어가는 중이다.

HR 이슈와 관련하여 쿠첸 인사팀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타사와 마찬가지로 정부의 노동정책 변화에 따른 대응방안 마련이 우선이다.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생산파트의 경우 2018년 급여체계를 ‘월급제’로 변경하여 작업시간에 따라 급여가 급락하는 것을 방지했다. 제조업의 특성상 성수기‧비수기에 따른 과업을 최소화하고자 재고 조율도 탄력적으로 운영한다.
내부적으로는 2018년 도입한 ‘직무급의 정착’과 ‘조직문화 개선’이 주요 이슈이다. 국내 대다수 기업들이 직무 본연의 가치보다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과 처우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저출산, 빠른 고령화, 밀레니얼 세대 중심 사회로 변모하는 지금, 과거 연공주의 제도는 분명 한계가 있다. 직무가치에 맞는 보상체계 수립과 성과 지향형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쿠첸은 직무급을 도입, 운영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연차에 따른 승진과 보상이 아니라 어떤 일을 얼마만큼 잘 수행하는가를 중심으로 채용, 평가, 보상이 이루어진다. 아직 직무가치에 대한 시장의 기준이 모호하고 직원들 역시 기존 연공, 호봉제에 익숙하기 때문에 이들을 설득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는 한편, HR이 보다 전문성을 띤 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성과평가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상/하반기 각 1회 절대평가를 실시한다. 상대평가의 경우 과도한 경쟁이 협업을 저해하고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를 떨어뜨릴 수 있으며 무엇보다 개인이 목표를 달성하고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절대평가를 채택했다. 단, 제도를 악용할 경우 평가가 지나치게 관대해질 우려가 있어서 무엇보다 목표설정 단계를 철저히 점검한다. 매출, 손익, 재고관리, 불량률 등은 경영계획을 바탕으로 정하고 계획에서 언급되지 않은 항목은 전년대비 상향 설정한다. 업무를 고도화시킬 개선점에 주안을 두며, 목표 설정의 적절성을 판단하기 위해 부서장이 1차 검토, 면담을 진행하고 인사팀에서 최종 점검한다. 평가는 본인평가 및 제언을 바탕으로 부서장 및 임원이 진행하며 본인과 평가자의 결과가 상이할 경우 면담을 통해 조정한다. 평가의 순기능을 적절한 피드백이라 보기 때문에 면담기록을 시스템에 입력하여 향후 발전의 계기로 활용한다. 성과평가와는 별개로 직무가치를 평가하여 직무등급을 산출하는 ‘직무평가’도 실시한다. 부문장, 임원, 인사팀장으로 구성된 ‘직무평가위원회’의 주도하에 직무수행 자격요건, 전문성, 창의성, 조직에 기여하는 부가가치 등의 항목을 평가하고 결과에 따라 직무등급을 결정한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꾸준히 실천하고 있는데.

‘수평적 조직문화, 업무몰입’에 대한 오너의 일관되고 지속적인 관심과 솔선수범이 크게 작용했다. 일례로 어느 날인가 주말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잠시 회사를 들른 대표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얼마나 일을 못 하길래 주말까지 나와’라고 말하는 듯했다. 나만의 착각일 수 있지만, 업무시간에 집중하고 퇴근 이후의 삶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쓰라는 메시지인 것만은 분명했다. 그렇게 ‘직원 스스로 일하고 싶은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2014년 탄생한 것이 바로 ‘스마트랩(Smart-Lab)’이다.

직원들이 주축이 되어 1년 단위로 기수를 선발(한 기수에 14명), 조직문화 이슈를 도출하고 개선활동을 지속하는 스마트랩은 올해로 6기가 활동 중이다. 1기의 안건이었던 ‘업무효율 강화’에 따라 보고‧회의문화가 크게 개선되었는데 1. Paperless(대면보고 줄이고 시스템 및 Raw Date로 공유) 2. 간단한 소통은 앉은 자리에서(파티션 없애기) 3. 회의는 발언내용이 있는 사람만 참석, 길어도 1시간 이내로 하기가 정착되었다. 올해 어젠다는 ‘Back to the Basic(기본 으로 돌아가자)’과 수평적 문화 형성을 위한 호칭 변경이다. 호칭의 경우 직무급 시행에 따라 직급과 직책으로 부르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의견과 여전히 승진과 직급을 중요시하는 풍토 사이에서 합의 점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그밖에 직무매뉴얼, 업무혁신 실천 가이드 등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돕는 프로젝트들을 추진하여 불필요한 프로세스를 줄이게 되었다.

이처럼 오너의 강력한 드라이브 아래 2014년부터 진행된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하루 8시간 집중근무, 6시 퇴근송이 흘러나오면 정시 퇴근하도록 만들었다. 직원 스스로 워라밸을 실천하는 문화가 안착되었다는 점, 직무급 운영과 호칭문화 개선을 통해 보다 효율 적이고 수평적인 기업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음이 고무적이다.

쿠첸의 조직문화, 나아갈 방향은.

한마디로 수평적이고 뻔(fun)한 문화를 지향한다. “집에 갑시다!” 나른한 오후시간, 사장님의 한마디에 일제히 퇴근하는 날이 있는데 이른바 ‘홈런데이’다. 사옥 옥상에서 열리는 맥주파티, 임직원 경매 행사, 다양한 문화활동에 이르기까지 효율적 업무 외에도 각종 이벤트와 소통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잃지 않는 쿠첸만의 문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앞서 설명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기계적 효율과 성과창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일터 속에서 스스로 몰입하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임을 강조하고 싶다. 년 20시간 이상 직무역량 개발 교육과 월 1회 진행하는 전직원 대상 소양교육은 물론 보다 폭넓은 자기계발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약 30%에 해당하는 여성직원들이 차별 없이 능력에 따른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 또한 보완할 계획이다. 다만 본사와 천안공장의 경우 물리적 거리라는 장애요소가 있는 만큼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인사팀의 과제이다.

채용 프로세스와 주안점도 간단히 짚어 달라.

쿠첸은 연간사업계획에 따른 인력운영계획을 바탕으로 수시공채를 진행한다. 프로세스는 서류전형-실무면접-인성검사-인성/가치면접으로 이어진다. 서류전형, 실무면접에서는 ‘직무역량’ 중심으로 적합여부를 판단하고 해당 직무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인성검사 및 인성/가치면접에 서는 회사의 가치와 철학에 부합하는 인재상을 갖추었는지를 본다. 신입의 경우 스펙의 다다익선보다는 지원한 직무 관련 경험, 자기 계발 노력, 제품에 대한 관심도를 주요하게 생각하며 경력직은 이력서상의 자기소개서와 경력기술서를 상세히 본다. 레퍼런스체크도 필수다. 뛰어난 능력도 좋지만 ‘조직과의 융화’를 이루는 것, 노력하는 자세를 더욱 중요시 여기며 이는 신입, 경력 공통사항이다.

최근 블라인드 채용, AI면접 등 올바른 채용을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운영되고 있는데 면대면 소통의 중요성은 여전하다. 때문에 지원자의 역량과 인성, 직무적합도 판단 기준을 명확히 하고 이를 타당하게 수행할 수 있는 면접관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효율적인 인사관리를 위한 조언 한마디.

채용-육성-평가-보상에 걸친 인사의 기본 업무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영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은 인사담당자의 당연한 의무겠지만, 그 바탕에 자신이 ‘회사’를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 살피고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회사의 비즈니스, 재무상태, 현장의 상황을 잘 모른다면 아무리 훌륭한 기획도 무의미 하다고 본다.

쿠첸 인사팀은 2016년도에 약 3개월간 본사가 아닌 천안공장에 자리를 꾸려 일한 적이 있다.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묻고 직원들이 겪는 문제와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살피는 등 그야말로 ‘쿠첸과 사람들’을 알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쿠첸 인사팀은 적어도 우리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명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는 아닐지라도 단계적으로 회사의 안정적인 운영과 성장을 돕는 데 인사팀의 노력은 필수이다. 가급적 전 부서의 실무 진과 동일한 이해를 가지고 본인의 업에 임하기를 권한다.

평소 후배들에게 인사는 ‘경영자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존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비즈니스 성패는 그 사업을 수행하는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경영상황에 맞춰 발 빠르게 대처하는 능력에 달려있다. 그에 비추어 봤을 때, 경영자가 조직 및 인력에 대해 올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인사의 역할이다. 인사담당자는 경영활동의 전략적 파트너이자, 미래에 보다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핵심인재임에 자부심을 가지고 회사와 한방향을 보고 나아가길 또한 바란다.

쿠첸의 올해 경영목표와 더불어 노력할 부분을 전한다면.

매년 세우는 정량적 목표도 챙겨야겠지만,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이 주요 과제인 만큼 현 제도를 점검하고 새로운 변화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계획이다. 직무급 운영과정에서 나타난 이견을 조율하고 승진과 같은 성취감을 여전히 중요시하는 사원들을 설득해 직무 중심 평가보상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겠다.

새로운 호칭제도, 회의‧보고 프로세스 간소화, 시스템 개선, 눈치보지 않는 정시퇴근 등 개인과 조직이 동등하고 효율적으로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 또한 계속해서 가꾸어 나가겠다. 쿠첸의 인사 조직이 보다 높은 전문성을 지닐 수 있도록, 나부터 배움의 자세를 다잡을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저작권자 © 월간 인재경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