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Episode 6.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이 새벽에 전화일까.

불과 몇 달 전만해도 낮이든 밤이든 걸려오는 전화나 울리는 카톡에 답했겠지만, 이날 나는 깨어있 으면서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자주 연락하고 왕래하며 지내는 사촌동생의 전화인데 나는 왜 수신을 거부했을까?

연고 없는 서울에 자리잡은 후 서로 의지하고 도움 주고 살면서, 누가 뭐래도 핏줄이니까 그저 좋은 언니, 동생으로 그간 잘 지내왔다. 내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 녀석이 재수생활로 가끔 서울과 고향집을 오가면서부터니까 10년이 넘어가는 세월이다. 동생이 워낙 사교성도 좋고 말도 잘 통해서 중간중간 한집에서 같이 살기도 하고, 일 있을 때 서로 도와주는 사이로 편안했다. 문제는 녀석의 사소한 습관(동생에게는 매우 중요한 소통창구겠지만)이 내 생각의 범주를 넓혀주 면서 발발했다.

요는 이렇다. 동생은 주로 내게 연락을 먼저 하는 편인데 연락의 내용은 다음 세 가지가 전부다.

1. 가족, 애인, 친구, 사회생활 등 문제 상담(99%가 부정적인 것들) 2. 심심해서, 밥 먹거나 같이 뭐 하자고(90% 돈은 내가 쓴다, 물론 동생한테 내라고 하면 냈겠지만) 3. 이런저런 부탁(자소서 첨삭, 일 관련 질문, 빌릴 것 등)

유년시절을 제외하고 서울에서 함께 지낸 지난 10년만 곱씹어 보니 저 세 가지가 아닌 일로 먼저 연락을 한 경우는 도무지 한 건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물론 같이 있을 때 내 남친문제나 가정사, 사회 생활 문제를 다 까발리고 서로 상담해주기도 했지만 여기서의 핵심은 ‘먼저 연락을 하는 사유’이다. 누구라도 자신이 중심이 되어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헌데 쌍방을 의미하는 ‘관계’에 있어서 왜 모든 편의를 본인에게만 맞추는 걸까.

결정적으로 지인의 결혼식이 녀석이 나를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엿보게 했다.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한 언니가 있는데 가끔 밥자리, 술자리가 생기면 사촌동생도 혼자 심심하니까 곧잘 부르곤 했다. 우리보다 어리고 당시 학생이기도 했던 내 동생이 마음이 쓰여서 언니는 유명한 내한공연도 먼저 예매해 보여주고, 동생이 돈을 쓰는 일은 단 한 번도 없게 할 정도로 나름 챙겨주었다. 몇 년 뒤, 그녀의 결혼식이 다가 오면서 나는 당부했다.

“나는 친척이고 핏줄이라 그럴 수 있어도 그 언니는 어쨌거나 남인데 너한테 잘 챙겨주기 쉽지 않아. 그간 얻어먹은 밥값, 술값 크지 않아도 도리 잊지 말고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해줘.”

‘당연히 가야지’ 말하고서는 당일, 끝내 톡으로 ‘감기몸살이라 도저히 못 가겠다, 축의금 좀 대신 내줘’라는 단문만 남기고 참석하지 않았다(대신 낸 축의금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결국 안 주더라). 저도 나이 서른을 앞두고 있는데, 철이 없어 그런다고 하기엔 실망이 너 무 컸다. 나는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존재에 불과했던 건가. 막말로 제부모도, 친 언니도 아닌데.

내가 덕이 높고 마음과 지혜의 깊이가 남다른 사람이라면 좋으련만, 고작 10년만에 나의 삐침으로 인해 관계는 틀어졌다. 전화도, 메시 지도 어떤 내용일지 뻔하니 굳이 시간, 돈 쓰기 싫은 거다. 내 부모, 내 친동생에게도 그렇게까지 못했는데 생각할수록 왜 잘해줘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더라. 그렇게 요즘 대면대면 연락도 없이 지내는 와중에 미국에 있는 사촌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야, 너는 미국 와서 잘 놀고 돌아가서는 어째 연락 한 번 없니. 섭섭 하다.”

1년 전 3개월 정도 언니에게 신세지고 돌아와서는 어쩜 연락 한 번 없다고 호통치는 전화였다. 참, 사촌동생이 나의 거울이었다니…… 동생들은 원래 다 그런 거였구나…….

남 욕 하기 전에 나부터 살펴봐야지 다시금 되새기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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