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Episode 8.
“나는 한다고 마음 먹으면 잘 해.”
차라리 그렇게 착각하고 살 때가 행복, 건강, 부유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나’라는 존재의 실체를 순간순간 마주할 때마다 그야말로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몇 초 만에 땅으로 내리꽂는 놀이기구를 탄 듯이.
인간은 저마다 페르소나(Persona, 가면 쓴 인격)를 가지고 있고 이를 당연한 거라 여기며 산다. 사람 만날 때 한껏 꾸미고 집에서는 노숙자 저리 가라 행색을 하고 있다거나,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좋은 말만 하다가 뒤돌아서 욕하는 그런 단순한 가면들은 인간 세상 적절한 양념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 그 온도차가 너무 크다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슬금슬금 벌어진 차이가 30대 중반이 되어서는 그야말로 열탕과 냉탕이 되고 말았다.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곰곰 생각해 봤다. 말 많은 유년기는 일단 제쳐두고 진로를 결정하는 수능 즈음을 떠올려 보니,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막나갔다. 중학교 때 연극을 했으니(나름 연출자로 큰 상을 받았던 게 화근이었다) 연극연출가가 되겠지, 어라 근데 좋은 학교 연영과는 점수가 높네? 그럼 유럽이 연극으로 유명하니까 어디 보자, 불어를 배울까? 성적 안 되면 불문과 가고 연극은 대학로에서 배우지 뭐.
어정쩡한 대학 불문과에서 놀다 보니, 연극은 잊은 지 오래. 막상 3학년이 되니 살짝 불안해졌다. 중국어가 핫한데, 교환학생이나 갈까? 그렇게 1년 다녀오니 취업을 하란다. 나는 한참 첫 연애 중인데. 잡코리아에 이력서나 올려놓지 뭐. 말도 안 되는 소개서인데 충무로 어느 중소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면접 보고 일 시작. 취업준비라는 순결한 노력은 전혀 없었다.
연봉이란 단어를 붙이기 민망할 정도의 박봉에 모든 일이 맨땅에 헤딩이었다. 중국관련 신규사업이라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알아서 하라는. 그런데 어떻게 신입을 뽑았지? 아무튼 그렇게 뒹굴다 우여곡절 회사만 옮기기를 수차례. 돌이켜 보면 전문성 없이 단타로 이 일, 저 일 했던 게 얼마나 무모했던가 싶지만, 적어도 그 때 당시는 일 잘한다고 해서 연봉도 오르고 회사도 옮기고, 뭔가 대단히 발전한 것처럼 느껴졌다. 스스로 무시무시한 가면, 가짜를 만들고 있다는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매 순간 기회들이 스쳐갔다. 내가 전공(불 어)을 살렸다면 할 수 있는 일들, 중국어를 조금 더 집중해서 공부했다면 잡을 수 있는 일들, 다 접고 영어만 다시 했더라면 구했을 것들, 전 회사에서 참고 버텼더라면 주워졌을 행운들, 수많은 만남 속에서 진실로 대하고 솔직하게 나를 보여줬더라면 정말 귀한 인연이 되었을 사람들까지…… 나는 단 하나도 제대로 못 하면서, 마치 다 제대로 하는 사람인 것처럼 겉돌기만 하다가 서른 하고도 여섯이 된 거다.
얼마 전 글로벌기업의 한국진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딱히 내가 기자로서 역할을 할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던 탓에, CEO 및 패널 들이 영어로 대화하는 자리에서 나는 통역 기를 귀에 꽂지 않았다. ‘얼추 알아듣겠지 혹은 알아듣는 사람처럼 보이면 좋지’ 본심 그랬나 보다. 그런 중 행사를 진행하는 홍보대 행사 대표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갑자기 “직원을 소개시켜 주겠다”며 다른 테이블로 안내했다. 당연히 본인 회사 직원이겠거니 했는데, 금발의 중년 여성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는 순간 당황해 이상한 단어 몇 개를 내뱉고는 자리를 떴다. 홍보대행사 대표는 나의 그런 거짓 제스처에 속아 봉변을 당했다.
어디까지를 온전한 나로 인정해줘야 할까. 영어를 못하면 통역기를 썼어야 했고 외국인을 대면했을 때도 솔직하게 “토킹 어바웃이 안 됩니다” 말했어야지 왜 아는 척하다 곤란을 겪냐는 말이다.
‘나는 하면 잘 해’, ‘못할 것 같으면 안 하면 돼’
그간 살아오면서 만든 ‘내가 나를 대하는 두 가지 잘못된 습관’으로 인해 수많은 가면만 만든 것은 아닌지. 나는 ‘안 하는’ 사람, 그게 알려지면 쪽 팔리니 그냥 ‘도망’가는 사람으로 살아 온 것을 알게 된 지금, 가면을 벗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수 있나 심히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