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

일하기 좋은 조직문화 하면 떠오르는 기업이 있다.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항공이다. 동종 업종 경쟁기업에 비해 임금도 높지 않고, 승무원이 청소를 하는 등 다기능화로 인해 업무량도 많다. 그런데도 직원들의 직장 만족과 직무 몰입도가 높고, 이직률이 낮다. 실제 미국 경제지 포춘지가 매년 선정하는 ‘일 하기 좋은 100대 기업’ 상위권에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이름은 웬만해선 빠지는 법이 없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많은 전문가는 펀(fun)경영 문화를 첫손에 꼽는다. ‘고객만족은 직원 만족에서 나온다’는 단순하고 평범한 원리를 실천하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기업의 유일하고 강력한 힘이자, 지속 가능한 경쟁우위 요소는 사람(Our people are our single greatest strength and most enduring long term competitive advantage)’이라는 철학으로 직원에 대한 경의, 관심과 배려를 표한 다. 직원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을 때, 고객만족과 기업경 영의 성과는 저절로 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람들이 취직하고 싶어 하고,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어 하는 회사의 기저에는 즐거운 기업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눈에 띄는 기업문화의 키워드는 가족, 즐거움, 성장, 존중과 배려, 소통과 공유다.

노사발전재단 사업 중 대표적 브랜드의 하나가 노사파트너십 프로그램 지원사업 및 노사문화 우수기업과 노사문화대상 선정사업이 다. 재단의 노사파트너십 프로그램 재정지원을 받은 사례를 잠깐 소개한다면, A 기업은 자동차 완성차 조립기업의 2차 협력업체로, 매년 원자재 가격과 제조원가는 오르는데도, 모기업 납품가격은 수년째 동결 또는 삭감되는 상황이었다. 약간의 기술경쟁력을 제외하면 도저히 존립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경영여건이다. 최저 임금을 겨우 넘는 임금수준이고, 직원 수는 100여 명 남짓이다. 그런데도 직원만족도가 높고, 직원의 이직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여, 원가를 절감하고 비용 절감된 이익을 배분했다. 비결은 무엇 일까. 소규모 기업이고, 투명하게 경영을 하는 터라, 기업경영의 어려운 사정은 다 같이 공유된 상황이다. 여기에 재단의 재정지원으로 전체 임직원이 노사한마음 워크숍 등을 통해 기업의 경영상태를 공유하고, 스킨십을 통해 공동운명체임을 확인했다. 무엇보다도 직원과 그 가족들이 회사가 진심으로 직원들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기술경쟁력에 더해 직원들의 높은 만족과 몰입은 전후방 비용압박 속에서도 불량률 제로라는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소통과 공유, 존중과 배려, 가족경영이 조직문화의 키워드다.

2018년 세계 고용노사관계 학회(ILERA) 세계 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학술 올림픽으로도 불리는 대회는 노사정 경제주체 간사회적 대화를 통해 사회정의 실현이라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 하는 ILO(국제노동기구) 창립 100주년을 앞두고 추진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대회는 학술올림픽 한국개최의 의미 중 하나를 한국의 협력적 노사관계 현실과 모범사례를 세계에 알리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의 노사관계가 협력적이라는 대회 주최 측의 인식은 올바른 것인가. 일부 대기업의 대중동원 방식에 입각한 ‘전투적 노사관계’라는 일반적 통념과 배치되는 것은 아닌가. 일반적으로 우리의 노사관계는 대립·갈등적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전통적인 직업직종별 노조 및 산업별 노조와 달리 기업별 노조 및 기업별 노사관계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는 우리나 라의 노사관계는 노사협조주의, 경제조합주의를 주요 특징으로 하고 있다. 노사교섭대상이 기업의 관리처분이 가능한 임금 등 경제적 영역에 국한되어 노조운동이 고립·분산적(비 연대적, 비 초기업 적)이며, 노조 및 노사관계가 회사의 존립과 기업의 종업원임을 전제로 하는, 따라서 공동운명체적 요소가 강하고(노사협조주의), 노사 간 힘의 균형보다는 궁극적으로 기업의 절대적 힘의 우위가 유지되는 노사관계다. 산별노조운동과 경제여건의 변화로 지금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노동관계법령 등 제도와 종신고용,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와 퇴직금 제도, 내부노동시장 등의 관행 등은 여전히 우리 나라 협조적, 경제조합주의적 노사관계의 물적 토대를 이룬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글로벌 경쟁격화와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급변 하는 경영환경을 맞고 있다. 또, 문재인 정부는 사람중심, 노동존중 사회를 기치로 소득주도 성장,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기 등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ILO기본협약 비준, 직장 내 갑질과 괴롭힘 방지법 제정 등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정책은 기업 경영 및 노사관계에 있어서 획기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의 선택은 무엇인가. 경영혁신과 기술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삶의 질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수밖에 없다. 늘어나는 비용을 절감하고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과 경영혁신이 불가피하 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은 고용불안과 노동강도 강화 및 직무재배 치와 교육훈련 강화 등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반대와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노동친화형 변화와 혁신, 변화와 혁신친화형 노사관계다. 변화와 혁신이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조직생존을 위한 선택 아닌 필수조건이고, 기업 측 힘의 우위가 전제된 기업별 노사관계 조건상 노사협조가 항상적 가능태로서 주어져 있다면, 노사협조의 관건은 가능성을 현실 화시키는 기업 측의 조치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뢰형성이다. 신뢰행동을 통해 노사 간 파트너십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문화로 정착되어 조직구성원들에게 내면화되어 사고와 행위의 기준과 규범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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