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Episode 12.

“두 달 전, 점심으로 짬뽕을 먹는 게 아니었어. 자장면을 먹었어야 했는데......”

자장면 먹을 것을 짬뽕 먹었다고, 잘못된 선택을 두 달이 지나서 후회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똑같은 선택에 평생토록 후회하기도 한다.

“두 달 전, 그녀와 헤어지던 날 짬뽕을 먹는 게 아니었어.”

서먹했던 연인, 점심을 먹는데 여자친구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했다. 분위기 좋은 카페나 스산한 길거리였다면 멋진 한 장면으로 기억되련만. (중국집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고하다니, 그녀는 진심 빨리 헤어지고 싶었나 보다.) 매콤짭쪼름한 국물에 안그래도 목이 메이고 콧물이 나는데 너무 진지한 여자친구의 태도에 당황과 슬픔과 매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마치 폭탄이 터지듯 코와 입이 개방되던 순간을 그는 10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후회는 끝도 없이 쌓인다. 불필요한 물건을 샀을 때, 괜한 시비에 휘말렸을 때, 다이어트 중에 참지 못하고 먹었을 때를 우리는 기억해뒀다가 이따금 상기하며 ‘내가 왜 그랬을까’ 되뇐다. 다행스럽게도 이런 종류의 후회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삭제’할 수 있다. 구매 전에 한 번 더 고민 하고, 남 일에 불쑥 끼어들지 않으며, 힘든 다이어트는 그냥 포기하면 그만이다. 막말로 앞의 에피소 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는 똑같이 벌어지기 힘든 상황이니까, 재미난 일화로 웃으며 넘길 수도 있다.

수없이 쌓여있는 내 안의 후회 가운데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혼자 힘으로 들어내기 힘든 것들’이 정말 큰 문제다. 그냥 쌓여만 있으면 또 몰라, 이런 종류의 후회는 내가 약해졌을 때나 특정 상황에 취약할 때 통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신적, 육체적으로 몸을 혹사시킨 경험
부모님, 친구 등 아끼는 사람들에게 뱉은 막말
해야지, 할 거야, 생각으로만 곱씹다가 시기를 놓쳐버린 일 또는 도전들

장기간 스스로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면 그 타격은 평생토록 간다. 연인과의 이별 때문에, 도박이나 주식으로 빚지고 폭망해서 인생 끝날 것처럼 자신을 혹사시킨 사람들은 설령 나쁜 환경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그 흔적이 남는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지인들에게 되돌리지 못할 실수를 한 것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니까 내가한 말과 행동을 이해하고 털어버릴 지 몰라도, 저지른 나는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울어야 할 지도 모른다.

사실, 내가 가장 뼈아프게 생각하는 후회는 ‘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다. 당시에는 이런저런 핑계로 넘어갔지만 지나고 나서 보면 하나같이 ‘게으름’ 때문이었다. 공부도, 취미도, 일도 꿈만 꾸고 손대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앞선 후회들은 ‘못해서 또는 잘못해서,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이’ 생기지만 이건 단순히 ‘안 해서’ 생기기 때문에 어찌 보면 가장 질이 나쁜 케이스다.

“후회할 일을 하지 마라.”
“과거는 잊어라.”

맞는 말이다. 후회할 일은 안 하는 게 좋고, 이미 엎질렀다면 쿨하게 인정하고 잊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하지 않은 후회’를 할 바에야 ‘뭐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그나마 울지 않고 웃을 수 있는 후회이지 않을까. 귀욤귀욤한 2020년, 많은 후회로 웃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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