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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의 공존법
권영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2020년 02월호, 제180호 | 승인 2020.02.04 16:48

고령사회는 모두에게 새 경험이다. 은퇴 무렵의 직장인에게 특히 그렇다. 50대 후반에 은퇴해도 90세까지 30여 년을 산다. 충분히 성공해 저금과 연금만으로 살아도 걱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사실 평균적인 직장인이라면 퇴직 이전부터 그래야 한다. 이미 평생 고단하게 이 직장, 저 직장 옮겨가며 일하는 시대다. 미국 고용통계국(BLS:Bureau of Labor Statistics)의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평생 평균 12개의 직장을 갖는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는 시작됐다. 최근 입사 10년차를 대상으로한 설문조사(잡코리아, 1322명 설문)를 보면 10년간 이직 횟수는 평균 네 차례나 된다.

일하고 싶어도 서로 불편한 사이

예전에는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하는 것이 성공의 요체였다. 이제는 언제든 옮겨 갈 준비가 돼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일자리 정보에 밝아야 하고 네트워크도 그만큼 넓어야 한다. 소위 ‘고용 가능성’ 이 높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일하는 직장 모습이 이렇게 바뀌고 있으니 보통의 중장년들, 특히 은퇴자들은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자신의 구직행위가 구차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밥벌이’는 가장이 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소명이다.

베테랑들이 현역 때보다는 훨씬 적은 임금으로 일할 준비가 돼 있고, 이들을 고용하고픈 직장이 분명 있는데도 이런 매칭이 잘되지 않는 데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경직적인 호칭 문화다. 예전 선배를 아직도 ‘이 사장님’ ‘김 부장님’이라고 불러야 한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서로 이름(first name)을 부르는 서양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관행이다.

새로운 ‘일하는 문화’가 생겨야 하는 지점이 여기다. 이것만 깨주면 중장년 고용은 엄청나게 늘 수 있다. 다만 정부가 제도로 바꿀 수없는 것인 만큼 민간에서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국내에서도 호칭 파괴 운동은 많이 시도됐다. SK는 그룹 회장도 ‘태원님’이라고 부르고 카카오는 이사회 의장을 ‘브라이언’이라는 영어 별명으로 부른다. 그런데도 아직 이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관행 때문이다. 예전부터 우리는 어린아이 때 부르는 아명이 있었고 성인이 되면 자 (字)를 따로 지어 불렀다.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부모나 스승 정도였다고 한다.

이름대신 號 부르는 수평문화

그래서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할 것이 바로 호(號)다. 호는 이름 대신에 서로 편하게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그 자체가 특별한 이름이라 ‘님’자를 붙이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아는 퇴계, 율곡, 추사 등이 모두 호다. 그들의 본명인 이황, 이이, 김정희가 오히려 생소하다. 연구에 따르면 김정희는 무려 503개의 호가 있었다고 한다.

서울의 어떤 로타리클럽에서는 수년 전부터 서로를 호로 부른다. 김 회장님, 박 사장님이 아니라 ‘청산’ ‘심곡’ 하는 식이다. 20년 나이 차의 사람들이 서로 호칭이나 ‘님’자를 붙이지 않아 처음에는 민망 하지만 격의를 줄이는 데는 최고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호칭이나 직함으로 불리던 ‘임시적인 나’ 대신 영원히 남들에게 불릴 수 있는 새 이름, 호를 지어 이를 관계 속에서 활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효과가 클 수 있다. 당연히 세대 차이가 줄 것이고 또 서로 동격이 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더 높아질 것이다. 100세 시대에는 경쟁이 아니라 공존의 철학이 필요하다.

권영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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