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여기자의 일상다반사

Episode 15.

몸 빛깔을 자유롭게 바꾸는 카멜레온. 낮과 밤의 빛과 온도 차이나,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타고난 능력을 지녔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겠지만, 인간도 카멜레온처럼 자신의 모습을 상황에 따라 철저히 바꾸는 능력이 뛰어나다.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행동과 태도를 조절하는 건 당연히 필요하고 또 사회생활에 있어서 상당한 이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식 선에서 카멜레온 같은 본능을 사용하고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특이하게도 상식 밖의 돌변을 보이는 사람들이 주변에 적지 않더라.

강남 모 빌딩 관리소장은 약 3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주야간 경비원, 주차요원, 청소원 등 빌딩 소속 정직원부터 파트타임 계약직까지 빌딩과 관련된 인력을 관리한다. 건물 로비에 상주하다 시피 하고, 오가는 수많은 사람에게 인사도 곧잘 건네기에 그에 대한 평가는 크게 나쁠 게 없다. 문제는 이러하다. 본인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경비원 할아버지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면전에 세워놓고 반말과 욕설을 섞어가며 훈계를 하고, 택배기사가 엘리베이터를 오래 잡고 있는다고 저층은 계단으로 짐을 옮기란다. 애당초 인성이 그러하면 모를까, 건물주가 오는 날은 천사가 따로 없다. 90도 인사에 생글생글 웃는 모습, 갑자기 직원들에게 존댓말을 쓰기도 한다. 혹시, 다중인격자일까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중소기업 밀집단지에 있는 부대찌개 식당 여사장은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손님에게 친절하다. 목청은 또 얼마나 큰지 들고 나는 손님마다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부지런히 인사한다. 직접 음식을 나르고 테이블을 치우는 등 적극적인 태도는 음식맛 못지 않게 손님을 끌어모으는 무기가 된다. 이리도 친절하고 성실한 사람인데, 직원에게는 한없이 악독하다.

“김씨, 내가 3번부터 치우라고 했잖아, 당신이 여기 주인이야? 아주 생긴 대로 일도 뭐 같이 해요. 얼른 치워!”

귀를 의심하는 사람들. 식당은 여전히 손님으로 가득한데 주인은 지킬앤하이드처럼 가면을 바꾸며 대화한다. 그녀가 손님과 직원을 대하는 태도가 극명히 다른 것을 보며, 누군들 마음이 편할까.

재무팀 이사는 여직원들 사이에서 젠틀하기로 유명하다. 존댓말은 기본, 오해를 살 만한 여직원과의 독대는 절대 사절, 잡일도 야근도 여자는 제외시킨다. 여직원의 부탁은 본인이 직접 나서든 밑에 부하직원을 시키든 척척 해결하고 회사로 들어오는 선물이나 회식비도 여직원 중심으로 쓴다. 반듯하고 자상한 그의 비밀은 퇴근 이후에 숨어있다. 임원진과의 미팅, 남자 직원들과의 술자리 특히 접대를 받는 주점에서 그는 철저히 여자를 성상품화하는 사람으로 돌변한다. 그런 이사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차장은 같은 남자로서 낯이 뜨겁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이 앞뒤 다르고 낮밤이 틀릴 수 있을까.

사람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저마다의 기준이 다르다. 옳고 그름이나 잘잘못을 따지지는 것도 지극히 주관적인 문제다. 하지만, 자신을 거울 앞에 세워놓고 물어보자.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못난 사람은 아닌지, 선량한 이미지로 꾸미기에 급급하진 않은지.

나와 당신, 우리는 어떤 카멜레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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