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원장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역사를 구조사, 국면사, 사건 사로 등급을 구분했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가장 큰 수준이 구조사적 변화, 산업화나 정보화는 국면사적 변화, 지난 국회의원 선거 같은 건 사건사적 변화라 할수 있다. 그런데 많은 사회학자가 코로나19라는 현상을 국면사적 변화로 보고 있다. 한 번의 해프닝으로 끝나고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산업혁명이나 컴퓨터 기술의 등장에 맞먹는 정치‧사회‧문화적 전환을 일으킨다고 예측하는 것이다.

크게 보아 1900년대 전반기를 열전(세계대전)의 시대, 후반기를 냉전의 시기, 그리고 1990년대 이후를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의 시기로 본다면 지금 우리는 감염병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다고 할까? ‘감염병의 시대’라는 말은 내가 만든 신조어가 아니다. WHO가 1997년에 이미 21세기가 ‘감염병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바있다. 사스(2003), 신종플루(2009), 메르스(2015), 그리고 코로나19(2020)가 5~6년 간격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코로나19로 끝일까? 그간의 빈도를 볼 때 인류사회가 국면사적인 전환을 완료하기 전에는 잦아들 것 같지 않다.

정보화라는 국면사적인 전환이 반도체의 발전을 포함한 여러 전제조건에 의해 일어났다면, 감염병이라는 국면사적 전환은 광범위한 연결(Connection)이라는 원인이 촉발하는 현상이다. 급격한 도시화와 글로벌화된 교통망,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의 변화들이 뒤엉켜서 전례 없는 재앙을 일으키는 거다. 그렇다고 그 연결이란 추세가 후퇴할 리는 만무하다. 인간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는가? 그러면 이런 감염병의 도전은 인류가 국면사적인 전환을 통해 응전방법을 만들어낼 때 극복될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국면사적 전환이란 녀석이 혼자 외롭게 오는 법이 없었다. 이미 진행 중이던 정치경제문화적 전환요소들과 복잡 하게 뒤섞여 상상하지도 못한 세계를 만들어서 우리를 기함하게 하곤 했다. 코로나19 덕분에 우리 모두가 얼떨결에 미래세계에 불시착했고, 아직은 설익은 DT기술에 절대적으로 의존도 해봤다. 그와중에 ‘우와 이런 게 되는구나!’라는 경탄도 있었지만, 전문가인양 하던 양반들이 자랑하던 그 기술이 턱도 없겠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당연히 핑크색으로 치장되어 있던 그 요란한 기술도 옥과 돌로 빠르게 정리될 것 같다.

가장 충격이 큰 곳이 국제정치적 영역이다. 학자들은 ‘초세계화(Hyper Globalization)의 완화’라는 자기들만의 용어로 설명하는데,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는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초세계화, 글로벌화 현상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어서 그것을 모니터하고 통제할 수 있는 관리체계(Governance)의 영역을 넘어가버린 현상은 일시 조정될 거다. 코로나19도 글로벌화가 낳은 산물인 데, 그런 사단이 생겼으면 죽자고 뛰어야 할 글로벌 조직이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존재감조차 없다. WHO도 그렇지만, UN이나 EU도 손 놓고 있다. 그냥 개별 국가들이 무질서하게 자기 팔 자기가 흔들면서 봉쇄와 수습에 나서고 있다. 이쯤 되면 다들 글로벌화가 만든 달콤한 꿈에서 깰 수밖에 없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글로벌화와 신자유주의의 완화가 수면 밑에서 태동했다. 그래도 이권을 내려놓기 싫었던 사람들이 애써서 막아왔지만 블랙시트와 트럼프가 등장한 2016년 이후 수면 위로 등장했고, 코로나19로 인해 노골화될 것 같다. 뭐, 그렇다고 해서 글로벌화라는 현상이 완전히 좌초되는 건 아니다. 수백 년에 걸친 근세의 역사가 개방과 글로벌화의 축으로 전개되었고 그런 노력이 준 이점이 엄청나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으니 글로벌화의 ‘일보후퇴 이보전진’으로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일보후퇴의 보폭이 얼마나 크고 오래 걸릴지는 알 수가 없다. 원래 바이러스가 변이가 심하다지만 코로나19라는 녀석은 민족주의 바이러스라는 묘한 변이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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