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는 Out of Box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의 시대라지만 여건이 된다면 한 직장에서 오래 몸담으며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고 싶은 게 직장인의 소망이다. 더 나아가 여기저기 휘둘리지 않고 한 부서에 오래 머물며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것 역시 많은 직장인의 꿈이다.
여기 인사과 평사원으로 입사해 36년간 인사관리 외길을 걸어온 끝에 조직의 수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 있다. 올 4월 취임한 백진기 한독 대표이사 이야기로, 그는 자신의 인생 모토 “서두르지 말고 그러나 쉬지 말고”처럼 주어진 자리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쉼 없이 노력했기에 오늘과 마주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장기화되고 있는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살피고 챙길 게 많은 지금, 국내 대표 HR 통으로 통하는 백 대표를 만나 HR이 챙겨야 할 중점과제를 들었다.

신입사원에서 출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늦은 감이 있지만) 대표 취임 소감을 전해 달라.

1984년 한독약품(현 한독) 인사과 평사원으로 입사해 36년째 한독맨으로 살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인사․교육․노무등 HR 분야에서만 전문성을 키워왔는데, 곱씹어보면 내가 이 자리에 오르게 된 이유 또한 ‘인재’의 중요성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고 관리했던 내 경험을 크게 인정해준 것이고 다시 한번 큰 그림에서 챙겨달라는 회사의 요구라고 생각하며, 대표로서의 역할도 나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수장의 위치에서 그리는 새로운 그림이 있을 것 같다.

‘한독을 대표하는 브랜드, 이미지는 무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동종 업계 기업 중에는 이름만 대면 바로 떠오르는 이미지,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 있다. 화이자 하면 많은 사람이 비아그라를 떠올리고, 또 유한양행 하면 창업자 유일한 박사를 떠올리는 것처럼 한독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브랜드를 만들고자 고민하고 있다.
취업 포털 등에서 한독에 대한 평을 보면 “직원들이 근무하기 좋은 회사”로 요약된다. 줄곧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던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어 환장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와 같은 맥락인데, 눈을 좀낮춰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게 목표다. 사실 모든 직원이 다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안다. 해서 요즘은 범위를 좁혀 인재가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회사의 정체는 무엇인가? 회사는 같이 근무하는 동료라 할 수 있다. 이 동료가 싫어지면 퇴사하고 이 동료에게 배울 것이 많으면 출근 하고픈 것이 회사다. 무림의 고수가 움직이면 그를 따라 움직이는게 사람의 생리다. 결국 또 다른 고수와 작은 고수들로 꽉 찬 회사가 된다. 인재의 밀도가 높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 대표로서 목표고 어떻게 높일 것인지가 주어진 과제인데, 내부에서 육성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외부 인재를 유입하는 것도 적극 검토 중이다.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인재에 대한 정의와 함께 개인적인 철학을 전한다면.

개인적으로 팀장 이상 관리자와 현재 업무를 탁월하게 수행하는 담당자를 인재로 정의한다. 팀장 이상의 관리자는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이 사람들이 단언컨대 인재이다. 물론 특정 업무에 탁월한 소수 담당자도 인재다. 이들이 모델이 되어 궁극적으로는 성과를 낸다. 이제는 의미가 덜한 전체 퇴직률보다 인재 퇴직률이 더 중요하다. 일을 하는 데 불필요한 사항(hygiene factors)을 제거해 주고 이들의 동기부여요인(motivation factors)은 어떤 것인지 파악하는 것이 경영진이 해야 할 일이다.
인재의 관한 철학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님과 생각이 같다. 교보 생명의 총자산이 얼마인지를 묻는 질문에 교보생명 직원 전체가 나가서 받을 수 있는 월급의 총량이라 말한 것처럼, 우리 회사 직원들이 시장에 나갔을 때 받을 수 있는 이른바 기회 임금의 총계가 한독의 자산이라 생각한다.

코로나19로 기업의 일하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한독은 어떤가.

코로나19로 많은 기업이 비대면 근무환경에 맞춰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한독은 몇 년 전부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애자일 조직으로의 전환을 경영 키워드로 삼고 또 이를 실천하고 있었기에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다.
올해 경영 화두가 된 유연근무제(선택근로제, 탄력근로제, 간주근로제, 재량근로제, 보상휴가제 등) 또한 이미 3년 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로, 우리 직원들은 한 달 근무시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 지 스스로 계획하에 일하고 있다.
비대면 근무환경을 위한 인프라 역시 제약업계 아니, 업계를 막론하고 네트워크 시스템이 가장 잘 되어있는 기업 중 한 곳이라고 자부한다. 우스갯소리이지만 직원들 사이에 남산 올라가는데 에베레스트 장비를 준다고들 이야기한다.(웃음)

코로나19로 어느 때보다 HR 부문에서 살피고 챙길 이슈가 많다. 인사담당이 챙겨야 할 중점과제를 짚는다면.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HR이 변화의 선봉(Initiative)에 서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한독은 정부가 노동시장에 적극 개입해 근로시간, 임금까지 간섭하기 전인 3년 전부터 유연근무제를 전면 도입했다. 환경변화에 대응했다기보다는 환경변화를 예측하고 한발 빠르게 움직인 것인데, 같은 맥락에서 포스트 코로나19 상황을 예측,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방안을 HR 부문에서 강구할 것을 주문하고 싶다.
변화를 추구할 때 관리자의 역할이 중요함을 덧붙이고 싶은데, 한독은 유연근무제 도입에 앞서 가장 먼저 관리자 교육에 집중했다. 골자를 잠깐 이야기하면, 직원이 어디서 일하는지, 몇 시간을 일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 내 일을 해내는 것,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에 대한 관리자들의 인식 전환을 강조했다. 새로운 제도가 조직의 문화로 안착하기 위해선 누구보다 관리자의 인식 변화, 실천이 중요하다. 유연근무제의 핵심은 장소에 상관없이 효율적으로 업무를 완수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을 잘 잡아주는 것이 HR의 역할이다. Out of Box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간 정답으로 여겼던 사무실 출근에서 벗어나 일의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성과관리에 있어 즉각 피드백(Real Time Feedbacks)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성과관리의 목표는 직원을 A-B-C-D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성과를 높여 시장의 파이(Pie)를 키우는 것이다. 더불어 직원의 역량도 함께 키우는 것이 목표인데, 만약 과정에 대한 관리, 즉 피드백이나 코칭이 수반돼 있지 않다면 빠르게 제대로 된 성과관리 매뉴얼을 세울 것을 주문하고 싶다. 지금처럼 재택근무가 일상이 되면 직원을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피드백, 코칭이다.
세 번째는 위기는 늘 기회와 공존함을 기억하자. 많은 기업의 불황속 채용을 줄이거나 보류하고 있지만 우리 한독은 올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공채를 진행했다. 오히려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있는 적기로 판단, 실제 신입직은 물론 경력직 인재를 적극적으로 확보해 나가고 있다. 물론 기업별 상황에 맞춰 가야 하는 부분이기는 하나, 중장기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 특히나 인재에 대한 투자는 멈춰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참고로 우리 한독은 IMF 때에도 다른 기업과 달리 고용 보장을 약속했었다. 위기 시어떠한 전략을 펼치느냐가 후에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시 피드백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1년의 성과를 연말에 평가 하는 기업이 많다.

만약 성과관리제도가 연초에 목표를 설정하고 6, 7월에 중간평가를 하고 연말에 최종평가를 하는 식이라면 당장 체계를 바꿔나가야 한다. 이는 성과관리가 아니라 성과평가로, 실패한 성과관리다.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성과를 관리하는 본래의 취지는 성과를 달성하려는 것이지 성과를 평가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성과관리를 잘해서 팀도 회사도 지속성장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성과관리의 궁극적인 목표이다. 특히나 불황일수록 고성과자 관리가 중요한데, 이들에 대한 보상은 평균성과자나 하위성과자와 달라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반드시 성과급제와 공정평가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정평가 를 하기 위해서는 잦은 피드백과 절대평가, 동료평가가 병행되어야 한다.
참고로 제대로 된 성과관리란 목표를 합의해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을 같이 고민하고 코칭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후에 평가 시 서로 놀라지 않는 상태(Not Surprise)를 말하는 것이다.

즉시 피드백은 최근 경영화두인 업무 몰입과도 직결될 것 같다.

조직에서 하는 일은 대부분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관계된 사람들(Stakeholders)이 적어도 2명 이상인데, 그런데 아무도 피드백을 주지 않으면 어떨 것 같은가? 내가 일을 하다가 장애가 발생했는데 논의할 상사나 동료가 없다면 어떨 것 같은가? 논의할 상사가 있어도 아무런 피드백을 받지 못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당연히 몰입하기 힘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게임이나 스포츠를 좋아한다. 왜 그럴까?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일을 하는 직원도 마찬가지로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잘했다 못했다는 피드백이 이어지면 일에 더욱 몰입하게 되어 있다. 불황 속 생산성이 화두가 되면서 직원들 몰입을 유도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피드백을 즉각즉각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한독이 일찍이 수시 평가시스템 IPaD(Individual Performance and Development)로 바꾼 목적도 여기에 있다. 잠깐 소개하면, 구성원과 관리자가 개인 업무 목표와 역량 및 경력개발계획 등을 사전에 합의한 뒤 이 시스템에 등록한다. 이후 수시로 달성 여부를 확인·점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구성원과 관리자가 모두 언제든 성과 과정을 관리할 수 있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인사에 반영할 수 있다.
한독은 현재 국내에서 제일 좋은 리얼타임피드백을 구현할 수 있는 모바일 버전을 파일럿 테스트 중이다. 곧 모바일을 통한 성과관리, 즉 지금보다 훨씬 더 쉽고 편하게 상호 간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진화될 거라 기대가 크다.

이 시대 가장 중요한 리더의 자질을 꼽는다면.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직원들의 생각을 일치시키는 것 즉, 조직원들과 하나가 되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본다. 오래된 장수기업들은 하나같이 이 같은 역할을 하는 리더들이 있었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그만큼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나아가 몰입까지 유도할수 있는 리더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단적으로 회사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직원의 생각이 다르다고 한다면 이는 필히 금세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이 시대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 회사의 비전과 직원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일치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후배 HRer에게 조언한다면.

비즈니스 파트너 역할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HR 담당자는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할 때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사안 결정 시에 “HR 쪽에 검토 받았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공부라 함은 단순 책을 보는 차원이 아니라 해당 비즈니스에 대해 완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해당 부서의 노동시장을 알 수 있다.
과거 사노피 시절 프랑스에 회의를 하러 간 적이 있는데 명함에 HR이 아닌 Internal Performance Consultant라고 표기되어 있더라. HR은 성과를 제고하는 사람이다. 우리 한독만 봐도 종합병원 에서부터 의학 기기, 크리닉, 건강식품 등 사업분야가 다양하다. 사람을 나아가 성과를 키우는 담당자가 사업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사람을 뽑고 관리할 수 있겠는가. 사업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추가로, HRM, HRD를 수시로 넘나들 것을 주문하고 싶다. 간혹 이둘을 아예 다른 성격으로 이해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한정 짓게 되면 큰 틀에서 HR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둘 다 경험해야 완성된 HR이 된다.

끝으로 수장으로서 포부를 말해 달라.

한독이 대한민국 제약산업을 진화시켜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런 조직의 수장을 맡고 있다는 데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 특히나 올해는 한창 글로벌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중으로 어깨가 더욱 무거운데, 목표한 성과를 내는 데 부족함 없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갈 것이다.
개인적인 포부라 한다면,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어하는 회사, 인재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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