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뮤지컬 <맘마미아>로 데뷔,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끼와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배우 박지연. <레미제라블> 한국 초연 당시 에포닌 역으로 2013 더뮤지컬 어워즈 여우신인상, 2013 한국 뮤지컬대상 여우 신인상을 거머쥔 검증된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미모, 연기력, 노래 실력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10년차 배우이지만 여전히 신인처럼, 귀기울이고 고민하는 노력파 연기자. 그런 그녀가 2020년 뮤지컬 <고스트>로 돌아왔다. 원작 <사랑과 영혼>을 살아있는 무대로 옮긴 이번 작품은 2013년 초연에 이은 재연 작품으로 7년 전의 몰리 박지연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짧은 이메일 질의응답을 소개하며 그녀와의 만남은 공연 현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자료제공: 신시컴퍼니
2010년 맘마미아 ‘소피’로 데뷔, 벌써 10년차 배우다. 첫 오디션 기억을 떠올린다면.
연기를 전공했지만 ‘이 길이 나와 맞지 않는 것 같다’는 고민을 깊이 하고 있던 대학시절, 실용음악과 수업을 같이 듣던 선배가 맘마미아의 소피 역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오디션 일정을 알려주었다. 당시 별다른 계획도 없던 터라 ‘방학이니까 한번 해보지 뭐’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원서를 넣었는데, 덜컥 합격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의 무대까지 연기를 이어오고 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내가 오디션을 위해 대기하는 방에서 조용히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큰소리로 노래를 연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끄러운 소리에 모두가 나를 쳐다보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다.
본인에게 뮤지컬의 매력은 무엇이며, 자신의 강점은 무엇인지.
대에서 연기하는 배우를 봤을 때 반한다고 할까. 조명과 음악을 온몸으로 느끼며 연기에 집중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 공연예술의 매력을 흠뻑 느낀다. 사실 나만의 강점이라기보다는 내 연기를 바라보는 사람들 역시 나를 통해 캐릭터와 스토리, 공연 전체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큰 것 같다. 예전에 강점, 장점 관련 질문을 받으면 ‘신선함’이라고 대답했는데…… 계속해서 신선한 배우로 관객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출연작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
그때그때마다 다른 것 같다. 좋은 시나리오, 좋은 음악,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극중에서 어떤 변화를 맞이하고 이끄는지, 내가 이 작품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고민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다. 어떤 때는 ‘그때 이 분과 작업해서 너무 좋았지’하고 사람을 믿고 임하는 경우도 있다. 딱히 정답이 되는 기준은 없다.
레미제라블, 레베카, 빨래, 시라노 등 출연작 가운데 애착이 가는 작품과 인물을 꼽는다면.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했던 건 ‘원스’라는 작품이긴 하지만 사실 출연했던 모든 작품과 인물을 애정하기 때문에 딱 꼬집어 말하기도 어렵고 답변이 매번 바뀌기도 한다. 지금으로선 고스트의 ‘몰리’라고 말할 수 있다. 몰리의 살아가는 힘, 강인함을 배우고 싶다.
뮤지컬 <고스트>에서 몰리 역을 맡았다. 영화 <사랑과 영혼> 원작이라 관객들의 사전이해도가 높은 편인데, 차별화된 부분이 있는지.
원작 <사랑과 영혼>의 작가 브루스 조엘 루빈이 뮤지컬 대본작업을 했기 때문에 드라마적으로 큰 변화는 없다. 워낙 원작의 캐릭터가 확실하기 때문에 뮤지컬에서도 그 매력이 구체적으로 살아나는 것 같다. 다른 점이라면 영화의 대사들이 세련된 팝 가사로 옮겨진 것이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가장 큰 차이점은 몰리 젠슨의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영화보다 뮤지컬에서 좀 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연출 역시 몰리라는 여성이 앞으로 잘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을 관객에게 심어주기 위해서 극 전반에 강인함을 보여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슬픔에 빠졌을 땐 어떡하지? 강인함이 무너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는데, 슬픔과 힘듦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도 용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연출의 말이 인상깊었다.
배역에 임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고스트가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서 시츠프로브(sitzprobe) 때 첫 오프닝곡을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았던 당시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또 ‘With You’라는 곡의 난이도가 높아서 너무 감정으로 치우치면 노래를 잘 소화하지 못할 때가 있다. 노래 부르는 내내 참았다가 끝나고 구석에서 가슴을 부여잡고 아프게 울음을 쏟아낸 후 다시 씬으로 들어갔던 기억도 나고…… 그런 감정적인 부분들을 견뎌야 하는 것이 몰리를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인 것 같다.
연출, 안무, 출연진 등 팀 호흡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귀 기울이는 자세를 가장 중요시한다. 나와 생각이 다른 것 같아도 곱씹어 보면 결국 상대방의 말도 일리가 있더라. 그리고 기다려 주고 인정해 주는 것 등 중요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들이 수없이 많다. 근래 들어 ’같은 배를 탔다’라는 말을 더더욱 실감한다. 주어진 시간 안에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협력은 언제나 어렵고도 재밌는 일이다.
관객들에게 뮤지컬 고스트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준다면.
물론 원작이 있는 작품들이 많지만 그중에서 <고스트>가 원작의 매력을 그대로 가지고 가면서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를 가장 잘 표현해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텐데 각 분야 전문가들이 얼마나 노력해서 이 작품을 만들었을지를 생각하면 늘 감사한 마음이다. 시각적인 만족뿐만 아니라 음악도 너무 훌륭하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에 반했다. 드라마의 극적인 부분들을 음악이 너무 절묘하게 표현해 내서 사실 음악만 들어도 눈물이 날 정도다. 데이브 스튜어트와 글렌 발라드의 천재성이 돋보인다. 고스트는 화려하고 볼거리도 많지만 서로의 진솔함 없이는 불가능한 공연이다. 배우들이 진솔하게 표현하는 이야기를 관객 여러분이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고, 내가 이 공연을 통해 위로를 얻었듯이 관객 또한 삶의 위로와 에너지를 얻어가셨으면 좋겠다.
무대 밖 박지연은 어떤 사람인지, 평소 닮고 싶은 사람은 있는지 궁금하다.
밝고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 벽이 많은 것 같다. 어렸을 때 혼도 많이 나고 오해를 많이 받아서 밝아 보이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약간 외면의 딱지처럼 내려앉았다. 그래서 집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편이다. 요즘은 솔직해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약한 모습이 비춰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훌륭한 분들의 장점을 배우는 건 좋지만 그들과 비교하고 견주어 보는 것이 나에게는 그리 좋은 자극제는 아닌 듯하다. 다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존경과 긴장감을 갖게 되는 건 좋은 것 같다.
신체, 감정, 목소리, 음악적 역량 등 뮤지컬이 필요로 하는 요소가 참 많다. 특별히 신경 써서 관리, 연습하는 부분이 있다면.
아무래도 목관리를 가장 신경 쓴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느끼고 조심하고 있다. 모든 생활습관에서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기도 하다. 고스트 작품을 하면서는 정서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저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도 필요했다. 또 체중을 늘리기 위해 먹는 양도 늘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예술 분야도 많은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생각은.
아주 오래 전부터 무대는 존재해왔다. 역병과 전쟁 등 수많은 인류의 위기 속에서도 무대는 살아남아 이렇게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앞으로도 무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어려울수록 서로를 외면하는 게 익숙해진 요즘인데 그렇게 계속 살다 보면 결국 인간은 분리되고 나눠질 거다. 예술은 서로 이해하기 힘든 다른 영역들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다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예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계속해서 노력하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터뷰를 통해 힘든 시기에 공연을 지켜주고 계신 많은 분들께 짧은 감사를 전한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전한다면.
건강하고 안전하게 <고스트>를 내년 3월까지 잘 마무리하는 것이 올해 남은 목표다. 공연을 함께 나누는 모든 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그들에게 작품 속 인상 깊은 캐릭터로 남는 배우 박지연이 되었으면 한다. 앞으로 어떤 무대와 작품으로 인사를 드리던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