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직장도 고졸자를 보조자가 아닌 주역 인재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건 대졸자가 할 일, 저건 고졸자가 할 일 이렇게 나누어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2012 대한민국 고졸인재 잡콘서트’ 에서> 고졸취업이 대세 올 하반기 취업시장 최대의 화두는 단연 ‘고졸 인재의 채용’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많은 기업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해 고졸인재 채용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은 올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 4,500명, 경력사원 2,500명, 전문대졸 사원 1,500명, 고졸사원 4,000명을 각각 선발한다. LG그룹은 하반기에 7,700명을 뽑는데 대졸 신입사원은 3,000명, 대졸 경력사원은 800명, 고졸사원 3,400명, 기타 기능직은 500명이다. GS는 하반기에 1,400명을 계열사별로 선발하며 이 가운데 대졸 신입사원 350명, 고졸사원 100명을 각각 뽑는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전체 신규 채용 7,500명 가운데 고졸을 2,200명 선발하기로 했다. 공공부문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말까지 시·도교육청과 소속기관, 국립학교, 산하 공공기관 19곳에서 채용할 신규 인력 2,817명 중 18%인 388명을 고졸자로 채용하기로 했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고졸 인재 또한 지난 2008년에는 1만5,000명이었지만 올해는 3만5,000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고졸 취업이 대세라는 것을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인 정보기술(IT)업체인 SK커뮤니케이션즈는 포털업체 최초로 고졸 채용을 실시했다. 담당자는 자사가 운영하는 네이트, 싸이월드, 네이트온 같은 서비스의 주 타깃이 신세대인 것을 감안, ‘어린’ 신입사원들이 신세대의 눈높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하고 맞춤서비스를 제안할 수 있다는 장점이 채용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채용 공고가 나간 이후 이미 4년제 대학에 합격했거나 유학을 준비 중인 지원자, 각종 전국 경시대회에서 상을 휩쓴 화려한 이력의 지원자 등 생각보다 뛰어난 인재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는데, 이는 고졸 취업이 단순히 양적으로 늘어난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능력 따로, 처우 따로?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학력보다는 능력으로’ 인재가 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기업의 고졸 채용을 적극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고졸자와 대졸자의 직무를 동등하게 맞추는 데까지는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아 보인다. 또 고졸자에 대한 대우도 대졸자보다는 한두 단계 낮은 등급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고졸 신입사원의 초봉(고정급 기준)은 평균 1,867만원으로 4년제 대졸 신입사원 평균 초봉의 86%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 불공평한 처우는 아닌 듯 하지만 문제는 입사 이후다. 대다수의 기업들은 고졸 사원을 뽑으면 평생 고졸 취급을 한다. 보수도 안 올려주고 진급 역시 쉽지 않다. 고졸 취업자가 재직 중에 방송대나 사이버대학 등에서 학위를 따는 경우가 많지만 똑같이 학위를 따더라도 일반 4년제 대학을 나온 학생들과 다르게 대접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졸사원 중에는 오히려 대졸 사원보다 성과가 나은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처우도 공평하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진화하는 인사관리 시스템 지난해 말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사학연금)에 입사한 손 주임(23)과 장 주임(19)은 회사 생활이 어떠냐는 질문에 “의욕이 넘친다”고 대답했다. 고졸 사원인 이들이 대졸 동기들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사학연금은 올해 초 고등학교 졸업자도 입사, 승진에서 학력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인사 규정을 개정했다. 승진 조항에 학력차별을 할 수 없다고 명시한 것이다. 손 주임은 “나 같은 고졸자라도 입사 후 4년이 지나면 임금, 승진 등에서 대졸 직원과 동등한 대우와 직위를 보장받게 됐다”며 “학력보다는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으니 일에도 욕심을 부리게 되고 회사생활도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주임은 “4년 후에 대졸자와 동등한 대우를 해주겠다는 것은 이 기간 동안 좋은 인재가 되도록 노력하라는 의미”라며 “업무는 물론 자기계발에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학연금 인사부장은 “요즘에는 고졸 사원도 대졸 사원 못지않은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이들이 보다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회사가 길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졸 채용이 활발해지면서 기업들의 인사정책도 바뀌고 있다. 늘어나는 고졸 사원들에 맞춰 인사관리 시스템도 변하고 있는 것. 연공제 대신 능력에 기초한 인사고과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과 공공기관 등이 학위 소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던 호봉제와 같은 연공제를 폐지하고 능력급제로 전환하고 있다. 고졸 사원이 입사 후 일정 기간 지나면 대졸자와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것이다. 이미 직무급제를 도입한 CJ 외에도 인천공항공사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직무급제를 잇달아 도입했다. 학력보다는 능력을 보고 대우해주겠다는 취지다. 학력 허들을 뛰어넘는 근본적인 해결책, 교육 학력보다는 능력에 따라 업무를 나누고 인사 평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학력이 곧 능력으로 통하는 관행이 존재한다. 개선해야 함에는 모두 공감한다. 그렇지만 좀처럼 이 장벽을 넘기가 힘들다. 왜 그럴까? 우리는 교육의 힘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졸사원과 대졸사원의 유일한 차이는 그들이 받은 교육수준에 있다. 기업이 학력 차별의 오랜 관행을 깨고 이상적인 인재경영을 시행하려면 고졸사원들이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잠재능력을 깨울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 채용이나 임금 관행에 있어서 대졸ㆍ고졸 차별을 없앨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바로 교육이다. ‘신(新)고졸인재’ 시대를 앞서 열어가는 기업학교로 평가받고 있는 중공업사관학교는 대우조선해양이 고졸 신입사원을 중공업 전문가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교육기관이다. 교육생들은 기본소양교육부터 본격적인 공학 심화교육까지 1년간의 정규교육을 마치고 실무부서에 배치돼 담당 멘토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현장직무교육을 통해 경험을 쌓게 된다. 이렇게 일과 학습을 병행하는 4년간 교육을 모두 마치면 고졸사원은 연봉과 승진, 연수 등 모든 인사에서 대졸사원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실무경험을 인정받아 생산관리 및 경영관리, 선박설계 등의 업무를 맡을 수도 있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에 진학해 연 1,000만 원 이상의 등록금을 내며 4년을 보내는 동안 중공업사관학교 교육생은 돈을 벌면서 경력도 쌓을 수 있는 셈이다. 한화는 우수 인재 조기 선발을 위해 향후 고졸 신입사원 채용은 채용전제형 인턴을 중심으로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아울러 어학, 교양 등의 공통과정뿐 아니라 직무 관련 전문과정까지 포함하는 커리큘럼을 개발해 한화그룹 공통의 사내 대학을 운영할 예정이다. 한화 관계자는 “근무평가 우수자에 대해서는 야간대 및 방송통신대 학비를 지원하며 회사별 사내 기술훈련 과정도 개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이미 고졸자 수준에 맞는 교과 과정을 만들어 따로 교육중이며 직원들이 직장에 다니면서 학사ㆍ석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삼성전자공대 등 사내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신(新)고졸인재’시대 학벌이나 스펙보다는 적성과 능력을 앞세워 취업에 성공하고 성과를 올리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신(新)고졸인재’ 시대다. 이는 작게는 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의 발견이요, 크게는 학력 인플레이션에 따른 사회적 고비용 구조와 인력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청년실업난 해소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선진 균형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언론 모두가 앞장서서 이 열기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길 바란다.
- 2012년 9월호, 제91호
- 입력 -0001.11.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