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복잡해져만 가는 경영 환경 속에서 기업의 위기는 일상이 되었다. 경영진들은 위기 극복을 강조하며 구성원들이 업무에 더욱 몰입하도록 독려한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일방적인 강조로는 구성원들의 반감이나 불신을 사게 되고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위기 일상의 시대, 둔감해진 구성원들의 마음을 일깨우고 자발적인 열정을 이끌어 내기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매년 ‘올해도 위기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기업의 경영진들도 위기 극복을 강조하며 구성원들의 심기일전을 독려하고는 한다. 구성원들의 마음과 행동을 한 방향으로 집중시키고 업무에 몰입하게 하여 변화에 수반되는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변화 관리 전문가인 존 코터도 ‘성공적인 변화는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며, 리더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구성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문제는 반복적으로 위기를 강조하다 보면 경영진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무게감이 점차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구성원들이 위기를 위기로 느끼지 않고 경영진이 전달하는 메시지에 담긴 진정성을 의심하며 ‘또 시작이구나!’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장난으로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여 정작 실제로 늑대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도움을 얻지 못한 양치기 소년의 일화처럼, 잦은 위기 강조가 구성원들을 둔감하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실제로 위기 상황일 수도 있지만 잘못된 위기감이 조성되어 오히려 의도했던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작 중요한 순간에 구성원들의 역량과 에너지를 결집시키지 못하여 어려움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위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구성원 심리적으로 동일한 자극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그에 따른 반응의 강도는 점차 줄어들기 마련인데, 이를 둔감화(Desensitization)라고 한다. 기업이 맞닥뜨린 ‘위기’도 기업의 존망을 결정지을 정도의 중차대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구성원들이 느끼는 강도는 점차 감소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구성원들도 자신이 속한 조직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말을 쉽게 흘려 넘기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위기 경영이 정작 중요한 시기에 의도한 만큼의 효과를 거두는데 장애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위기 상황이라고 하면 예를 들어 평소보다 점차 증가하는 업무량, 길어진 근무 시간, 급여나 성과급 및 구성원 복리후생과 같은 각종 보상의 감소 등을 떠올리기 쉽다. 구성원들도 기업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다 보면 반복되는 위기 속에 이러한 조치들이 뒤따를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을 갖게 마련이다. 결코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는 여건 속에서 열정을 가지고 업무에 적극적으로 몰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위기 극복을 위하여 구성원들이 보다 업무에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노력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위기 극복으로의 정조준, 무엇이 필요한가? 우선, 경영진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를 구성원들에게 정확하게 전파하거나 공유할 필요가 있다. 그 다음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만큼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이 핵심 업무에 몰입하고 중요한 사항을 놓치지 않도록 일하는 방식을 재점검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무리 위기 상황이라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칭찬과 인정을, 위기를 이겨낸 이후에는 기여한 부분에 대한 공정한 보상도 필요하다. 명확한 방향설정과 구성원들의 공감 유도 가야 할 길이 명확하지 않거나 길이 여러 방향으로 갈라져 있다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력투구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구성원들이 위기 극복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영진 스스로 위기 극복을 위한 전략적 방향성 설정과 이를 실질적으로 수행해야 할 구성원들의 공감을 잘 이끌어내고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기업의 전략이 명확하지 않으면 구성원들은 수행해야 할 업무의 우선순위를 정하거나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어려워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전략가 게리 하멜에 따르면 ‘구성원들은 경영진들과 달리 정보와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한다. 즉, 큰 그림에서 고민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략을 수립해 나가는 경영진들과 달리 구성원들은 소속된 작은 단위의 조직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업무를 처리하기에도 급급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구성원들은 큰 흐름 속에서 기업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다. 필립스는 1990년대 초 재무 건전성 악화로 100여 개에 이르는 자회사를 매각하는 한편, 많은 수의 생산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의 25%를 감축하게 된다. 또 이후 IT 버블 붕괴와 함께 매출도 30% 가까이 급감하며 사상 최대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1년 제라드 클라이스터리가 필립스의 구원 투수로 취임하게 된다. 그는 위기 극복에 있어서 명확한 전략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전략이 탄탄하기만 하면, 직원들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결집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필립스는 전략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기술자들이 제품을 만들어내면 그냥 열심히 팔려는 식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었고, 이 사업들은 기복이 너무 심했다‘라고 과거를 반성하며 새로운 전략 구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핵심팀, 우수 인재 등 구성원들과의 대화를 통해 회사가 확보하고 있는 자원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장 흥미롭고 가능성이 높은 기회를 탐색하였다. 그 결과, 필립스에서는 최종 소비자 대상의 완제품 사업과 기업 대상의 부품 사업이라는 서로 DNA가 다른 두 가지 비즈니스 군이 뒤엉켜 있어 회사의 역량이 분산되어 있음을 파악하였고, 치열한 고민 끝에 소비자 중심의 비즈니스로 포트폴리오를 새로 작성하였다. 2006년 ‘기술의 필립스’를 상징하던 반도체 사업 매각을 시작으로 사업 구조를 의료, 조명, 소비자 가전으로 재조정하였다. ‘필립스의 심장을 도려냈다’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사업의 초점을 과감하게 바꾼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7년 필립스는 매출 268억 유로를 달성하게 된다. 제라드 클라이스터리는 사업 구조상의 변화 이외에도 조직 변화의 슬로건도 보다 명확하게 정립하였다. 2004년 제정한 ‘Sense and Simplicity’라는 마케팅 슬로건을 조직 변화의 슬로건으로 확정한 것이다. 즉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일지라도 소비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업도 조직의 구조, 업무 프로세스 등이 간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같이 제품 개발 과정 및 조직의 계층, 관리 체계 등도 보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개선했다. 위기일수록 핵심에 집중 위기 상황에서는 ‘혁신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지만 정작 구성원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은 모습이다. 2012년 취업포털 사람인에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살펴보면, 응답 대상의 약 74%가 ‘회사의 혁신 경영 방침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고 한다. 그 첫 번째 원인으로 언급된 것이 바로 ‘업무량이 늘어나서(49%)’이다. 기업의 위기 극복을 위한 혁신 노력에 대해서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높다고만은 할 수 없으며, 위기 극복에 수반되는 업무 증가로 인해 구성원들이 몰입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해준다. 반복되는 위기 속에 기업은 경영 효율화의 일환으로 인력을 충원하는 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기 쉽다. 또한 성과주의에 대한 강조로 인하여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성과 창출에 대한 압박도 결코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성원들은 기존의 업무를 수행하기도 버거워 하는 상황에 처해 있을 수 있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업무에 쏟을 여력이 부족한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는 현재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스템의 개선, 수시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한 보고, 새로운 아이템 발굴, 새로운 업무 프로세스 도입 등으로 구성원들의 업무가 가중되기 쉽다. 조직 연구가인 Bruch와 Menges의 연구에 따르면, “경영진은 위기를 강조하며 구성원들이 더욱 업무에 매진하도록 독려하지만 위기 극복 이후에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 보다는 그 상태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쉽다”고 한다. 일시적인 처방이 오히려 만성적인 부담으로 축적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이로 인한 업무 가중으로 구성원들이 만성 피로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연구자들에 따르면 업무는 두 가지 형태로 증가하게 되는데, 첫째는 기존 업무가 증가(Over-loading)하는 현상이고, 두 번째는 본래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부가적인 업무가 증가(Multi-loading)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즉 기존에 하던 일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회사가 오늘 내일 하고 있는 상황인데 네 일, 내 일이 어디 있어? 당장 알아보고 보고해!”라는 식으로 해당 부서와 무관한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 극복을 강조하는 동시에 구성원들이 보다 핵심적인 업무에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의 업무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제 상거래 업체 중 하나인 독일의 Otto Group의 경우, 인력 조정 이후에 경영진은 구성원들의 업무 부담이 20~30%정도 증가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경영진은 ‘각 프로젝트에서 필요한 투자 규모, 비용 대비 가치, 그리고 구성원들에게 상징적인 의미를 제공하는지 여부(안내 데스크, 직원 식당 리모델링 등 회사에 대한 구성원들의 자부심을 높일 수 있는 활동)’를 기준으로 당장 중단해야 할 업무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업무를 구분했다. 그 밖에도 제품 개발 시에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활용되고 있는 애자일 프로세스(Agile Process)와 같은 방법을 응용해보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이는 정해진 프로세스와 계획을 순차적으로 진행해가는 방법이 아니라 수시로 발생하는 요구에 따라서 프로젝트를 유연하게 변화시켜 가면서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뜻한다. 구체적으로,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끊임없이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최종적인 결과물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적응적인 방식(Adaptive Style)이라고 할 수 있다. 제품에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제품 개발의 전반적인 측면에서 이러한 방법론의 변화를 고려해보는 일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고삐를 당기더라도 당근은 필요 위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이나 위기를 극복한 이후에는 함께 고통을 분담한 구성원들의 노고를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마라톤 선수들에게도 경기 중간중간에 부족한 수분을 보충할 수 있는 급수대를 준비해두며, 경기가 종료된 이후에는 시상식을 통해 메달을 수여한다. 구성원들에게 보상도 없이 지속적으로 위기를 강조하고 구성원들에게 강도 높은 몰입을 요구하는 일은 42.195km 경주를 막 마친 사람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42.195km 경주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모습과 비슷할 수 있다. 위기 상황이라고 하여 Task Force Team 참여 등 추가적인 업무 증가, 조기 출근 및 야근과 특근, 복리후생 등 각종 비용 절감으로 인한 고통 분담을 감수하면서 ‘그래도 언젠가는 끝나겠지’라고 기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또 다시 “더 큰 위기가 온다. 고삐를 놓을 틈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지난 번과 같은 수준의 몰입은 더 어려워 질 것이다. 이런 상황의 반복 속에서 구성원들에게 위기 경영이란 단지 업무 가중과 보상의 축소만을 의미하는 일로 각인될 뿐이다. 자연히 위기를 이야기하는 경영진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매년 위기라고 이야기하면서 구성원들을 쥐어짜려고만 하는 것 아니냐?’라는 불만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위기의 끝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상황에서는 구성원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여 그간의 위기 극복 노력을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려울 땐 힘들지만, 그에 대한 인정은 확실하게 해준다’라는 인식이 구성원들에게 전반적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차후에 재차 위기 상황이 닥쳐도 구성원들은 희망을 가지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드시 금전적인 보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금전적인 보상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에 대한 감사의 메시지도 구성원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금융 회사인 웰스 파고의 CEO 존 스텀프의 경우 변화 관리 프로그램을 시행한지 1년째 되는 날에 관련된 모든 구성원들에게 각 구성원들이 기여한 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감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맥킨지의 컨설턴트 Aiken과 Keller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작은 감사의 표현이 “상징적인 제스처에 불과하거나 효과도 제한적이고 단기적일 것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이러한 보상이 변화를 위한 동기 부여에 상당한 영향을 주며, 몇 년은 아닐지라도 수 개월간 효과가 지속된다”고 한다. 위기 극복을 강조하면서 구성원들을 위축시키기 보다는 경영진과 구성원 모두 스스로가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였는지 되짚어 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의 위기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해가는 모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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