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꿈을 잃어가는 캠퍼스 참으로 서글픈 사실은 대학 캠퍼스 학생들의 꿈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캠퍼스에서 예전만큼의 생동감을 느낄 수 없다. 본인만의 색깔 있는 꿈을 가진 젊은이를 만나는 것은 참 힘들다. 이제 그곳에서 꿈과 낭만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 교육개혁에 선봉에 섰던 ‘카이스트’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다. 새로운 제도의 효율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가뜩이나 기운이 빠져있던 상아탑에 있는 우리 미래의 리더들의 휘청거리는 모습을 한 번 더 보는 듯해서 슬프다. 한 단계 더 도약을 위한 변화와 실험은 필연적인 것이다. 카이스트가 대학 교육 개혁의 선구자 역할을 하고, 짧은 시간 내 그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났던 것에 대해서 놀랐지만, 그 개혁의 성과물 가운데 진정으로 우리가 목말라 했던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누락되어 있지는 않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것 여전히 물음표가 남아있다. 개혁들의 중심에 등록금, 학점, 취업, 영어교육, 교육 정년심사 등의 전통적인 키워드 외에 젊은이들의 정체성을 붙들어 주고, 죽어 있는 ‘야성’을 자극시키는 정말 중요하고 근본적인 작업의 시도는 정말 힘들었던 것인지… 대학입학 전에 이미 사교육, 족집게과외, 점수 따기, 상대평가와 등급제 등의 교육 시장 속에서 심하게 중독되어 버린 ‘꿈이 없는 젊은이’들이 또 다시 ‘넘버 원(No.1)’ 되기 위해 ‘온리 원(Only One)’이 되는 가장 중요한 훈련을 캠퍼스에서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과연 이들의 남은 인생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 것일까. 개인과 가정에게만 이 몫을 맡겨두기에는 너무 큰 숙제로 느껴지는 것은 정말 한 사람만의 착각일까? 캠퍼스가 꿈을 읽어가고 있는 공간이라면, 오늘날 직장인들의 일터는 이미 꿈이 상실된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꿈, 자기 정체성, 그리고 야성이 사라진 젊은이들이 훨씬 더 무시무시한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지가 너무 안쓰럽기만 하다. 특히 기업 현장의 인사책임자로서, 그리고 지난 10여 년간 특강 강사로서 때로는 겸임 교수로서 젊은 학생들에게 취업, 진로설정, 경력관리 등의 과목을 지도했던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도 이런 슬픔이 피부로 느껴진다.

아쉬움, 개혁과 실험에 대한 성급한 반응 개혁과 실험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르기 마련이다. 성공한 개혁에도 저항과 시샘이 있기 마련인데, 아직 진행중인 개혁 속에서 민심을 흔들어 놓은 일련의 사태가 발생했으니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그럼에도 성급한 비난보다는 믿고 지켜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잘해보려고 개혁을 하지, 사회 전체를 들쑤셔놓으려고 개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리라. 다만 열린 귀와 균형 잡힌 감각을 유지하면서 쉽지 않은 개혁과 실험이라는 새로운 리더십 여행을 잘 끝마칠 수 있도록 도움을 줘야 할 것 같다. ‘카이스트’ 사태를 보면서 받았던 진한 아쉬움이 있었다면 우리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성급하게 반응하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모드를 취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물론 ‘카이스트’ 대학 당국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도 안타까운 아쉬움이 있는 것은 분명할 것이다. 개혁과 변화의 아젠다의 기본 방향, 속도, 디테일 등에 대해서 퍼붓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이 있을 법 하다. 그러나 지금은 잠시 기다려주는 인내와 절제가 오히려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너무 잔인한 이야기처럼 들릴 지는 모르겠지만, 카이스트 학교 당국부터 학생까지가 하나가 되어서 이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것이 진정으로 이 변화의 여정을 마무리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처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교육에 대해서 한마디씩 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많은 나라도 흔치 않을 것이고 우리만큼 교육사업이 거대한 자본과 이권으로 얽혀 크고 작은 시장으로 형성된 곳도 드물 것이다. 그럼에도 ‘학교’라는 곳만큼 변화의 치외법권 같은 존재로 오래 남아 있었던 것 같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전 세계의 다양한 고객을 상대해야만 하는 기업에서조차 변화란 힘이 드는 법인데 그런 ‘무풍지대’ 속에 있었던 학교에서야 오죽하랴. 스스로를 냉정한 잣대로 평가하면서 안락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풍랑 속으로 뛰어든 용기와 결단이 귀한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애정을 갖고 기다려주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슬픔과 아쉬움이 훗날 귀한 선물로 다시 기억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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