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은 조선왕조 22대 왕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이전하며 세운 성이다. 그 당시 나라에서 하는 부역은 모두 강제노역으로 별다른 보상이 주어지지 않았지만, 화성 공사 기록인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수원 화성은 동원된 백성들에게 임금을 지급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체계적인 규정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공사기간 중 사정이 생겨 잠시 공사가 중단되었을 때도 나라에서는 계속 급여를 지급했다고 한다. 이는 생업을 포기하고 부역에 동원되었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라도 노임을 지급받지 못하면 가족의 생계가 문제 되는 백성들의 처지를 배려한 처사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공사의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인사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즉, 백성들을 근로자로 생각해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줌으로써 신뢰를 확보했던 것이 곧 노동력 확보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던 공사기간이 불과 2년 반 만에 완공되었다. 물론 거중기와 같은 획기적인 공사장비개발과 체계적인 공사관리법 등 공사의 전반적인 관리를 책임진 당대 석학인 정약용의 공이 지대했다. 이렇듯 노동과 근로에 대한 보상은 가장 기본적인 상호신뢰와 성과로 보여지고 나타난다. 현재 우리의 근로자들을 대변하는 노동계의 역할과 그에 대한 경영자의 입장은 과연 어떠한 신뢰와 보상의 관계인가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학문적인 논리를 바탕으로 볼 때 노동운동은 혼란기, 과도기를 거쳐 안정기, 성숙기의 4단계를 거치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디 쯤일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우리나라는 안정기와 성숙기 사이 그 어디 쯤일 것 같다. 우리나라는 지표상으로만 본다면 이미 성숙기 단계에 근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노사 문화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비추어볼 때,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지멘스 본사의 노조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독일인인 그 방문자는 자신이 지멘스 노조를 대표해서 지멘스 각 사업국가의 노조활동에 대해 파악 중이라 소개하였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주요 관심국가이기 때문에 노조 활동의 문제점 및 지원을 위해 왔다는 설명과 함께 노조위원장과 면담을 주선해달라는 부탁을 하였다. 그 후에도 여러 일들을 협조 요청해 필자는 그들의 활동편의를 도와주었다. 이렇듯 우리 회사는 노조와 긴밀하고도 상생의 협력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친밀관계의 근간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서로간의 ‘신뢰’이다.

회사는 직원들을 존중하고 직원의 대표인 노동조합에서는 상생의 협상력을 발휘하여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략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지멘스는 매월 한 시간씩 CEO와 HR의 대표인 본인이 노조위원장과 만나서 함께 티타임을 갖는다. 이때 회의 주제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자유로운 소통의 시간으로 채워진다. 보통 노조측의 가벼운 바람 혹은 회사측의 부담 없는 당부 등을 주제로 하며 간혹 서로간에 확인하고 미리 대비해야만 하는 문제에 대한 사전 교감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결과로 매년 임단협은 1주일 내외의 짧은 시간에 협상이 완료된다. 이는 기존에 요구와 핑계, 공격과 수비의 대립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열린 사고의 결과일 것이다. 필자의 지난 30여 년의 인사업무 경험으로 볼 때, 성숙된 노사관계를 이끌기 위해 HR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 바로 ‘상호 신뢰’이다. 노사 간의 충돌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HR전문가로서 갖춰야 하는 역량에 대해 논해보려 한다. 무엇보다도 이 역량에 관해서는 HR 관련 업무 담당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 첫째, 당신은 HR 부서원들께 신뢰를 받고 있습니까? 둘째, 당신은 회사 직원들에게 업무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셋째, 당신은 최고경영자(CEO)의 협상 동반자입니까? 위 세 가지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보고 세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아직 노무관련 업무를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판단하면 될 것이다. 특히 세 번째 항목에 유의하여야 한다. 우리 사회의 노사문제 대부분은 사측의 Level 1 Discussion 준비의 부족이다. 노조측은 협상에 임할 때 근로자 대표로서 전권을 위임받고 참여하지만, 많은 기업들은 노무담당을 포함한 최고경영자의 하위 Level Manager가 참여한다. 이러한 불균형의 협상 및 의사결정의 형태는 노조측으로부터 최대치의 요구사항을 제시하는 폐단을 낳게 하고, 협상이 진행되면서 많은 소모적인 사건들이 발생하여 노사 모두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러한 형태의 협상문화는 성숙된 노사문화 정착의 최대 걸림돌인 것이다. 따라서 최고경영자는 노사협상의 직접 당사자로써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성실한 자세를 보여야 하며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 전반적인 정보를 노조와 공유하며 현장에서 직접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만약, 회사 형편상 최고경영자가 이와 같은 역할을 맡을 수가 없다면, 준비된 역량을 갖춘 협상대표에게 협상의 전권을 위임함을 천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상호간의 격을 맞춤으로써 근로자 대표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모범적인 노사관계에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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