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철이 막 지난 3월 중순. 곳곳에서 이별 인사가 온다. 20년 넘게 정들었던 직장을 떠난다는 사람이 보낸 짧은 문자에는 회한이 묻어난다. “이젠 안녕.” 직장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수요와 공급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젊고 실력 있는 인재를 들이기 위해서는 아직 역량이 있는 사람이어도 할 수 없이 조직에서 나가줘야 한다. 떠날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퇴직 자체를 직업인생의 종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평생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환자를 보는 의사, 여든에도 새 책을 내는 교수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데도 말이다. 인사철, 승진대열 뒤의 쓸쓸함 이 칼럼을 통해 자주 강조했지만 조선시대 경국대전에 따르면 행정가의 정년은 70세였다. 육체노동자는 66세, 장인(匠人)은 60세였다. 평균수명 40대 시절에 조상들에겐 정년이란 사실상 없었다. 대책 없이 떠나는 듯한 선배들을 보면서 후배들은 불안해진다. 특히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중장년들은 더욱 그렇다.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지금부터 노후를 위해 다른 준비를 해야 하는 건지.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성공 여부는 한 가지 기준으로 간단히 평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직원들이 떠난 그를 그리워하는가 아니면 금방 잊는가.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은 조직을 떠나도 직원들이 그리워하는 사람을 일컬어 ‘린치핀(linchpin)’이라고 불렀다. 린치핀은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연결하는 축에 꽂는 핀으로 구심점, 핵심의 뜻을 갖는다. 고딘은 이 단어를 회사나 프로젝트를 이끌고 그 책임을 기꺼이 떠안는 사람으로서, 그가 떠나는 순간 다른 이들이 그를 너무나 그리워하게 되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이 개념을 원용하면 퇴직 준비는 그리운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다. 회사와 부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특히 조직 자체의 성장을 위해 떠나는 그날까지 열정을 불살라야 한다. 직장은 떠나도 열정은 그대로 너무 당연한 얘기 같지만 현실을 보라. 많은 이들이 불안해진 노후 때문에 회사 이후를 더 걱정하고, 중장기적인 일은 후배들의 몫으로 떠넘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조직 노후 현상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회사에서 자신의 가치도 스스로 갉아먹게 된다. 내가 몸담았을 때 회사가 성장해야 프로페셔널로서 자신의 역사도, 미래도 의미가 생기고 가치도 높아진다. 공직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는 동안에 나는 이렇게 사회를 바꾸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만난 한 협회장은 자신이 전원주택단지를 성공적으로 개발했는데 많은 고생이 있었지만 지방 공무원 딱 한 사람이 성심성의껏 지원해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원인들이 그리워하는 공직자들은 분명히 있고 그런 사람들에겐 공직을 떠나도 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누가 알아서 그리워해 주면 좋겠지만 아니면 또 어떤가. 떠날 사람들은 그런 비장함을 놓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몰라줘도 얼굴 붉히지 않으니 군자답지 않은가. 퇴직 인사 문자에 사그라지지 않은 열정이 느껴져 더 기쁘게 축하해주는 인사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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