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를 녹여주는 달달한 초콜릿보다 훨씬 강력한 달콤함, 바로 직장인에게 주어지는 ‘휴일’이다. 매주 맞이하는 주말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누적된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푸느라 술과 잠으로 써버리니 사실 휴일 아닌 휴일이 된 지 오래고, 그저 한 해 달력을 꼼꼼히 넘기며 빨간 날이 며칠이나 들었는지 그 희망에 1년을 버티는 게 직장인이라고 앞선 선배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리하여 2014년은 나름 희망찬 한 해다. 문제는 어느 휴일을 대하는 한 남자의 결단으로부터 발생했다. 꽃보다 황홀한 5월, 1일부터 6일까지 총 6일간의 탈출을 즐기기 위한 징검다리 연휴 쟁탈전을 준비하던 우리는 대표님의 폭탄발언으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작년 창립 10주년 기념행사 때 제가 했던 말 기억들 하십니까? 해마다 갑갑한 실내에서 정형화된 행사에 술만 마셨지, 전 임직원이 함께 움직이고 단합할 수 있는 일은 한 번도 못했지 않습니까. 최 본부장 주관해서 체육대회든 등산이든 이번 근로자의 날에 진행하십시다.” 근로자에게는 유급 휴일이 주어지고 부득이 출근해야 하는 경우는 주말수당 등으로 50%의 가산급여를 주도록 정해져 있는 1년 중 가장 기특한 날에 체육대회? 등산이라니. ‘대표님, 누구를 위한 근로자의 날입니까? 근로자들은 쉬고 싶다고요!’ 그런데 황당하고 화나는 건 나처럼 신입사원이거나 젊은 연령층뿐인가 보다. 대부분은 실망스럽지만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다. 이래저래 얘기를 들어보니 회사들마다 근로자의 날을 이용해서 단합대회니 뭐니 많이들 한단다. 체육대회나 등산은 가장 흔한 레퍼토리고 요즘은 그나마 문화생활이 다양해져서 공연이나 영화를 단체로 보거나 진짜 돈 많은 회사는 해외로도 간다고 하니...... 미정 주임은 예전에 직원 수가 50명 남짓한 회사에서 근무했는데 그 때는 한강에서 유람선 타고 치맥 시켜 먹고 해산했다며, 근로자의 날이니 근로자답게 놀게 하는 게 회사라는 능구렁이란다. “아...... 차라리 오전 근무 하고 일찍 퇴근시키거나 그러면 안 되나? 무슨 체육대회야, 그거 하고 나머지 연휴 기간에 뻗으라고?” “단체로 뭐 하려면 회사도 돈 써야 하는데 왜 피곤하게 이중부담이냐고. 단체로 하루 움직인다고 단합이 되냔 말이지. 차라리 무급휴일로 치고 쉬게 해 주면 좋겠다.” 어제 내가 전사에 안내한 ‘근로자의 날 단합대회’와 ‘5월 2일 연차 사용 신청’ 공지는 순식간에 임직원들의 잡담 한가운데로 그 불씨를 옮겼다. 돈 쓰고 욕먹는 회사 아니, 대표님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로 파장은 컸다. 몇몇 직원은 5월 1일까지 연차 신청을 냈다. 1년에 단 하루, 전 임직원이 얼굴 마주하고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려는 회사와 개인의 일정, 행복을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직장과 가정, 공동체 생활과 사생활의 밸런스를 강조하는 요즘이라지만 서로의 이견은 쉽게 좁혀지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이틀 째, 우리 인사총무팀은 야근이다. 5월 1일까지 이제 보름 남짓 남았는데 장소 섭외가 만만치 않다. 연초 사업계획에 없던 일인데다 시즌에 뭘 구하려니 현업만 죽을 맛이다. 200명이 뛰고 구를 수 있는 공간뿐 아니라 원하는 행사를 진행하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다들 욕심과 오기가 있어서 어떻게든 내부에서 꾸려보려고 애쓰다가 결국은 대행업체에 일임하고, 이제는 직원들의 원성을 조금이라도 줄일 만한 아이디어를 짜내려고 기를 쓰고 있다. 그나마 행사비용 지출에 있어 대표님 태클이 없어 어찌나 다행인지. 먹거리, 기념품, 이벤트 팍팍 쓰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놀았다 소리 들어야만 하는 게 우리 팀의 미션이다. 이것도 맡은 일이라고 집중하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은 절로 접히는구나. 5월 2일 연차 사용 신청 안내와 함께 본부·팀별로 업무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조율하라는 공지에 아직까지 회신이 별로 없다. 과감하게 1, 2일 연차를 신청한 잔 다르크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눈치싸움을 하는 듯하다. 직급체계와 인원이 고르게 분포된 부서는 높은 순서대로 먼저 선수를 치시니 아래 직원들은 일찌감치 포기했다지만 가장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건 영업부다. 팀장님 말씀이 매년 징검다리 연차 신청 때마다 영업부가 제일 늦게까지 조율을 본다고. 평소 고객을 상대하는 스트레스와 실적에 대한 압박으로 연휴만큼은 확실하게 즐기고 싶은 모양이다. 쉬는 문제를 가지고 이렇게 들썩거리기는 회사 창립 이래 처음이라며 당황하시던 최 본부장님은 대표님께 말씀 드려 1일 단합대회를 진행하는 대신 2일 필수 근무인원을 대폭 줄이고 최대한 연차를 사용하도록 했다. 좋은 사람 뽑아 회사에 맞게 키우는 것도 물론이지만, 회사가 원하는 방향과 직원이 바라는 바를 조금이라도 조율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필요한 부서가 인사총무팀이라고 일전에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역시나 실천형 리더의 표본이다. 논란 많던 우리의 단합대회는 TV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을 흉내 낸 체육대회로 외곽 잔디구장에서 진행되었다. 약 200명의 임직원 중에 비상 근무자와 연차 사용자를 제외한 약 140명이 그 동안은 볼 수 없었던 편안한 옷차림으로 모여 마치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또 신나게 즐겼다. 불만 가득했던 사람들의 표정이이토록 달라질 수 있다니 사회생활이 이런 건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래, 또 막상 같이 어울리고 해보니 재미있지. 내 가족, 내 여가생활과는 또 다른 매력이 여기에도 분명 존재하는 거야’ 생각한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야외에서 먹는 도시락도 맛있었고 알게 모르게 솔로 남녀 간의 모호한 기류도 내 레이더에 잡혀서 흥미진진했다. 100kg에 육박하는 몸무게의 구매팀 승철씨가 바지를 찢어먹으며 이 날의 가장 큰 재미를 선사했고, 사내커플들만 참여한 이벤트에서는 여자친구가 던진 공을 잘못 맞아 병원으로 조기 퇴근한 에피소드도 생기는 등 우리가 준비한 것 이상으로 쏠쏠한 수확을 거두며 마무리됐다. 신나고 재미난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이렇게 보낼까 물으면 열에 아홉은 정색을 한다. 근로자의 날은 ‘근로’가 아니라 근로하는 ‘사람’에 그 핵심이 있고 그들이 원하는 건 일에서 벗어난 꿈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뚜렷한 정의 없이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휴일을 좀 더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 할 수있는 일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지 뭐. 회사 단합대회를 위한 법정휴일을 하나 더 만들면 되잖아. 이를테면 근로자 단합대회의 날이라던가, 야외 근로대회의 날이라던가...... 그럼 좀 공평하지 않나?” 빨간 날 하나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직장살이와 빨간 날에 상관없이 매일같이 일터를 지키는 사람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하루하루다. 올해 5월에 주워진 황금연휴가 시간의 쉼이 아닌 마음의 쉬어감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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