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현안을 일괄 타결하겠다며 지난 2월 출범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산하 노사정소위가 결국 아무런 소득 없이 막을 내렸다. 4월 17일 마지막 회의를 열고 최종담판을 벌였으나 노사정·여야 간의 입장차이만을 확인하고 종료되었다. 노동 현안에 대한 노사정합의가 실패한 가운데, 금속노조는 자동차업계의 올해 임금교섭에서 임금·노동시간 체계 개선, 통상임금 범위 확대를 쟁취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뿐 아니라 정기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복리후생비를 넣기로 해 통상임금 범위 확대가 올해 자동차업계 임단협의 최대쟁점이 될 것이다. 2012년 임금근로자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092시간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1,705시간보다 300시간 정도 많다. 우리와 비슷한 경제 및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본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765시간, 여러 방면에서 우리나라의 벤치마킹 국가가 되고 있는 독일 근로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1,317시간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법정 40+연장 12)인데, 1993년 대법원 판결에 근거한 고용노동부 지침으로 휴일근로 16시간이 가능해 현재는 최대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이후 서울고등법원에서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는지의 여부를 두고 재판부에서 엇갈린 판결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2013년 출범한 박근혜정부는 근로시간 단축을 국정과제로 정해 근로기준법 개정을 서둘러 왔다. 정부는 주당 60시간 법 개정 후 2년 유예기간을 거쳐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하며 4월 말 관련법의 국회 통과를 자신하였으나 성과가 없었다. 대법원 판결 이전에 노사정합의로 법을 개정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와는 달리 경영계가 자율시행에 초점을 맞추면서 시간벌기로 근로시간 단축 입법을 저지하겠는 전략을 세우면서 근로시간 단축에 관한 노사정 합의는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였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영배 부회장은 “대법원이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시키는 취지의 판결을 하면 당장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여야 하는 것으로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1991년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는 것인 만큼 통상임금처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 내용에따라 전원합의체 판단을 구해보고, 최악의 경우 경영계가 원하지 않는 판결 결과가 나온다 할지라도 최소 1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다. 노사정은 2010년 6월에 이미 연평균 근로시간을 2012년까지 1800시간대로 줄이자는 합의를 한 바 있기 때문에 이번 국회 논의에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것에는 공감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 산업현장의 충격 완화를 위해 노사 합의 시 8시간 추가 연장근로를 허용해야 한다는 경영계와 추가 연장근로 허용은 현행 근로기준법보다 대폭 후퇴하는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이 맞서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였다. 고용부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52시간 초과 근무자는 전체의 13%, 60시간 초과 근무자는 5%이다. 휴일근로를 하는 장시간 근로자 72%는 제조업, 휴일근로가 없는 장시간 근로자의 69%는 서비스업에 있다. 근로시간 단축이 시행되면, 특히 휴일근로를 포함하게 되면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야는 제조업이다. 과거의 기준근로시간 단축의 경험을 보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은 대체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번에도 휴일근로가 기준 근로시간에 포함되는 법 개정이 이루어지면 금전보전이 없는 근로 단축은, 특히 대기업에서는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근로시간 단축 논의는 제조업의 많은 중소기업들이 근로시간 단축과 이에 따른 임금보전을 견디어 낼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제조업체는 근로시간 단축법이 개정되면 인력난은 더욱 심하여질 것이고 대기업에 납품하는(전체 중소기업의 50% 정도인) 중소제조업체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 여력이 제한적일 것이다. 노사정소위에서 경제계는 “통상임금 확대, 정년 60세 연장 등으로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면서 결국 고용시장도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호봉제를 축소하고 직무와 성과에 연동한 임금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임금체계 개편을 주장하였다. 반면 노동계는 “정부와 기업이 합세해 연공급(호봉제)을 성과급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근로자들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이라며 “성과급은 평가의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근로자 간 위화감 조성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임금체계 개편은 지난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 중의 하나였다. 개방화되고 지속적인 경쟁 압력에 놓여 있는 글로벌 경제에는, 근속에 따라 급여가 자동적으로 올라가는 성과체계는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집단주의적 조직문화, 노동계의 반대 등으로 수행하는 역할이나 직무 혹은 역량에 의해 평가되는 직무급이나 직능급으로의 진전이 더뎠다. 고령화 추세 등을 고려하여 성과에 보다 연동되는 급여체계로의 개편은 반드시 이루어야 할 과제이다. 60세 정년이 법으로 강제되지만 노조에 의해 보호받은 일부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40대 말부터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들어왔던 곳을 떠나야 하는 것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현실이다. 근속연수에 따라 급여가 올라가는 성과체제하에서는 중고령 근로자가 보상받은 만큼 조직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판결 이후 정부가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통상임금 판결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격차는 더욱 심화될 우려가 크다. 통상임금 분쟁도 인건비 추가 부담의 여력이 큰 대기업에서는 노사 간에 어느 쪽이 더 큰 파이(pie)를 차지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난 해 우리 사회의 통상임금 논쟁의 출발점이 되었던 한국GM이 지난해 매출 감소에도 불구하고 올해 1조 원대의 영업이익을 냈다. 한국GM의 지난해 매출액은 15조6040억 원으로 전년보다 2.2% 줄었으나 (1만 명이 넘는 전현직 종업원과 통상임금 관련소송에서 패소할 것을 대비하여 3년치 소급분 지급에 대비해2012년에 쌓아 놓은) 7893억 원의 ‘통상임금 충당금’을 환입해 영업이익은 1조854억 원이었다. 한국GM 관계자는 대법원합의체 판결 이후 “정부가 발표한 ‘통상임금 노사 지침’도 소급분 지급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며 “법적 자문을 거쳐 소급분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해 감사보고서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2013년 6월 기준 표본사업체 3만1천663곳과 소속 정규직·비정규직 82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총액은 정규직의 64% 수준이고, 특히 용역근로자는 정규직보다 8시간 더 일하면서 급여는 절반 수준이었다. 초과급여는 14만9천 원으로 조사됐다. 고용형태별로는 정규직 17만6천 원, 비정규직 6만 원으로 집계됐다. 2012년 연간 특별급여는 고용형태에 따라 정규직은 502만2천 원, 비정규직은 38만 원으로 정규직이 비정규직보다 13배 이상 많은 특별급여를 받았다. 한국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통상임금 범위 확대 시 500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 연간 임금은 435만7천 원 증가하고 비정규직은 51만7천 원 증가하는데 이로 인해 임금격차는 384만원이 확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등 고임금 제조업종과 의복 등 저임금업종 간의 임금격차도 현 3617만 원에서 3893만 원으로 276만 원 가량 확대될 것으로 추정됐다. 결론적으로 중소기업의 인력난과 자금여력, 비정규직이 처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경영계는 근로시간 단축, 노동계는 임금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도식적 구도를 탈피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기업, 공공기관의 노사는 담합적 협력관계에서 그들만의 이익을 위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조금씩 양보하여 장시간 노동시간을 줄이고, 보다 성과지향적 임금체계가 산업현장에 커다란 충격 없이 도입되는 현실적인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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