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연애, 그 숨고 숨기는 이야기

미스 김 다이어리

2014-12-01     김소정 월간 인재경영 객원기자

겨울이 깊어갈수록 육체 못지않게 춥고 시린 건 마음이다. 친한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거나 주변에서 애인 없느냐고 물을 때 ‘나도 남친이 있으면 좋겠다’ 싶은 그런 스치는 아쉬움과는 달리, 겨울은 아주 특이하고 지독하게 없는 자의 고독을 부추긴다. 아침 출근길은 역시나 외롭고 점심은 밥을 배터지게 먹어도 허기지고, 저녁은…… 그래, 말하면 더 슬프니 입을 다물자.

SNS로 매일같이 수다를 떠는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지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이도 한 살씩 늘어가니 그저 과거의 무한 반복과 위로일 뿐, 내 일상의 공감대와는 점점 멀어진다. 나름의 대안이라면 회사에서 친하게 어울리는 동기와 상사 험담, 업무 이야기, 맛집 탐방 정도? 입사 이후 줄곧 붙어 다닌 CS팀 민이의 저녁 호출이다.


“신형, 있잖아. 영업팀에 한성수 대리님 알아?”
“응? 영업 2팀이던가? 알긴 알지. 근데 왜?”
“어떤 것 같아?”
“글쎄, 가끔 결제 때문에 뵙긴 했는데. 뭔 일 있어?”

무덤덤하게 답하고 또 묻기를 이어가면서 사실, 나는 짐작했다. 한성수 대리님에 대해서 그리고 민이가 내뱉을 기운 빠지는 말을. 한 대리님은 우리 회사 여직원들 사이에서는 훈남으로 이미 유명인사. 나랑 민이는 서로 자존심 탓인지 뭔지, 회사 남직원에 대해 얘기를 꺼낸 적이 거의 없는 터라 공유를 못했지만 다른 여직원들과는 종종 말이 오갔었다. 그런 남자를 예쁘장한 민이가 입에 올린 건 무슨 일이 생겼단 뜻임이 분명했다.

“우리, 지난달부터 사귀고 있어. 놀랐지? 시작이 좀 긴가민가해서 바로 말을 못했어. 너도 알잖아, 사내연애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거. 잘해도 여자한테는 마이너스 연애라고. 진짜 비밀이니까 너만 알고 있어!”
“비밀이라며 나한테 말하면 어쩌냐? 말은 세어나가기 마련인데. 난 책임 못 진다.”
 
호탕하게 웃으며 얘기했지만 진심이다. 비밀이라니, 홀로 외로이 겨울을 나는 친구에게 그것도 회사 최고의 훈남을 차지하고서는 비밀로 해달라니,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수틀리면 확, 다 불어버릴까 보다). 가끔 복도 오가면서 마주칠 때 살갑게 보내던 그분의 미소는 역시나 나만의 착각이었구나. 훈남훈녀 한 쌍의 탄생은 저출산 시대에 마땅히 축하할 일이지만 나에게는 좋은 친구가 떠나는 사건이자, 외로움의 무게가 늘어나는 고통이다.

사내연애를 시작해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은 우리 회사엔 아직 없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진행되었던 혹은 진행 중인 연애에 대한 소문은 무성하다. 본래 내 얘긴 어렵고 중해도 남 얘기는 풍선껌 불 듯 쉽고 재미나니, 놀다 버리면 그만 아닌가. 지하 주차장에서 누가 어쩌더라, 영화관에서 손잡고 가는 걸 봤다, 둘이 밥을 자주 먹는다 등등 출처 없는 소문은 여기저기 떠돌다가 금세 더 그럴싸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남자들끼리는 술자리에서 더한 얘기도 한다는데, 사정이 이러니 둘이 좋아 만나게 되어도 남들 눈치와 오해에 떠밀리다 보면 굳건한 관계를 지속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또 하나, 일터에서의 연애는 회사에서도 꺼린다. 우리 회사의 경우는 아니지만, 친구네는 공개연애 커플이 사내에서 손을 잡고 다녔다는 이유로 본부장 면담과 경고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회사는 연애하라고 오는 놀이터가 아니다’, ‘공사만 구분하면 크게 문제될 것 없다, 과민반응이다’ 등 직장동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의 짝이 있고 공무가 원활히 돌아가는 행복한 사회라면 남녀 간의 어여쁜 사랑이 왜 질타를 받겠는가. 문제는 직장은 그야말로 ‘일터’로서 업무에 충실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연애를 하다 보면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우려를 무시하기 힘들다는 점, 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없는 이들에게는 찢어지는 아픔과 질투, 시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제까지 비밀로 하게? 분명 눈치 채고 이야기 만들어내는 사람들 생길 텐데 그냥 공개연애가 맘 편하지 않아?”
“글쎄, 가능하면 끝까지 모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내가 평생 이 회사를 다닐 것도 아니고 괜히 남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스트레스받을 필요는 없잖아. 그야말로 연애는 온전히 개인적인 일인데, 회사 사람들하고는 사적인 얘기가 좋게 마무리되는 꼴을 못 봤어. 잘 만나면 모를까, 둘 관계가 어떻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특이한 회사문화, 복지제도 사례로 ‘사내연애 장려’, ‘자녀출산 1명당 500만 원 현금 지급’ 등에 관한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해당 기업 CEO의 말인 즉, ‘사랑이 멀리 있으면 그리운 시간이 늘고 오해도 생기기 마련이다. 그 시간과 오해를 줄이고 힘든 직장생활 의지할 수 있는 벗이 있으면 기업경영에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헤어지고 나서의 문제? 연인관계든 고용관계든 떠날 사람은 떠나지 않나’ 대충 그런 설명이었다.

그저 보도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한 소설의 일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기업이 임직원의 감정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득실을 따진다는 점은 흥미롭다. 누구에게 더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둘째 치고, 정작 당사자들은 둘 사이의 문제가 또 하나의 ‘일’이 되는 불상사를 원치 않는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사내연애 장려와 같은 복지는 서류용에 지나지 않겠지. 숨고 숨기고 싶은 것도 본인들 뜻이고, 아무리 숨기려 애써도 결국 들통나는 것이 남녀관계라 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두면 그뿐.

동기의 사내연애 시작으로 나는 때 아닌 비밀정보원 역할을 수행 중이다. 고민도 들어주고, 점심도 한두 번 껴서 같이 먹어주고, 소문의 낌새가 느껴질 찰나 이런저런 업무 이야기로 물 타기도 한다. 내 남자친구도 아닌데 크리스마스 선물을 같이 고민하는 모양새라니. 은근 그들이 몰래 하는 연애의 스릴을 즐기는 것 같기도하다. 아…… 알려질까 조마조마해도 좋으니 나도 사내연애란 것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신형 씨, 전략팀 동훈 과장님은 어때? 사람 괜찮은데 생각 있으면……”

사양할게요. 그냥 혼자가 편합니다(난 아직 외모가 중요한 20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