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밥 먹습니까?

2015-04-02     백기훈 코오롱인더스트리 인사담당 상무

황지우의 이 시는 1998년 발간된『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에 실려 있다.

이 시가 생각난 것은 얼마 전 우연히 TV 뉴스에서 이른바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내용을 보았기 때문이다. 뉴스의 내용은 대학의 취업준비생을 중심으로 촌음을 아껴서 취업준비를 하느라 혼자서 15분 이내에 빨리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뉴스에서 말하는 ‘혼밥족’과 황지우 시인이 얘기한 덩치 큰 사내가 같은 이유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아닐 게다. 시 속의 사내를 통해 뭔가 아련하고 묵직한 슬픔을 느꼈다면, 혼밥족의 젊은 취준생 이야기는 안타깝고 미안함이 앞선다.

몇 년 전 일본의 도쿄대·와세다대 등 일부 대학 화장실에 “화장실에서 식사를 하지 말라.”라는 쪽지가 붙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대학 교수가 학생들 대상으로 화장실에서 밥을 먹은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설문조사를 해보니 적지 않은 인원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단다.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이유는 “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다.”, “외톨이라는 인상을 주기 싫다.”라는 것이 주된 이유인 것으로 조사됐다.
혼자 점심 먹는 걸 두려워하는 심리를 정신과 의사인 마치자와 시즈오는 ‘런치메이트 증후군’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때만 해도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다. 우리나라처럼 동료의식이 강하고 모여서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그렇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취업준비생들은 혼밥족을 자청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어려서부터 맞벌이 부부 사이에서 자란 젊은이들이 혼자서 밥 먹는 것이 익숙해 굳이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식사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 다행이다. 여유 있게 생각도 정리하면서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면 홀로 식사하는 것이 한가롭게까지 느껴질 것이다.
그렇지만 2인 1닭이란 말까지 들었을 때에는 생각이 좀 달라졌다. 치킨을 시켜도 혼자선 다 먹기 힘든 싱글족들이 치킨을 같이 시킬 사람을 모집한 뒤에 2인 1닭, 사이좋게 반반씩 나눠간다는 것이다. 같이 먹는 것이 아니라 반반씩 나눈 뒤에 ‘쿨하게’ 헤어진다고 한다. 사회 전반을 휘감아 버린 개인화, 개별화가 어느새 이렇게까지 진행되었을까.

한 취업포털 업체가 2030 세대에게 질문을 했다.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 중 포기한 것이 있는가?” 열 명 중 여섯명의 젊은이가 그렇다고 대답했고(57.6%), 이 중 절반이 “결혼을 포기했다.”고 답했다.(50.2%) 이들의 궁핍한 생활은 통계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젊은 층의 가계부채 증가율이 눈에 띄게 늘고있는 것이다. 20~30대 2인 이상 가구의 작년 소득 증가율은 0.7%. 물가상승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제자리 혹은 마이너스라는 얘기다. 청년실업률은 9%. 임시직, 일용직과 취준생. 그리고 구직을 단념한 이들을 포함시키면 체감실업률은 21.8%에 달한다. 청년 다섯 중 한 명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이렇게 다급한 상황이라면 취업준비생들이 혼자서 후다닥 밥을 먹고 취업준비를 하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기성세대로서, 또 기업에서 인사업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미안하고 안타까운 심정을 억누를 수 없다.

혼자서 밥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렇다고 혼자 밥 먹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는 싫으니 서둘러 그야말로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아직 그 숫자가 많지는 않다고 하나 이런 추세라면 젊은 취업 준비생들의 퀭한 모습을 주변에서 만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키이스 페라지와 탈 라즈는『혼자 밥먹지 마라』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는 가난한 노동자 가정 출신의 한 소년이 마케팅 이노베이터이자 CEO로 자리 잡기까지 만나고 맺어왔던 인간관계를 축으로 인생에 힘이 되는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생생한 경험담이 그대로 녹아 있다.

개인적인 힘으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용기와 의지는 분명히 본받을 만하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아무리 애를 써도 풀어낼 수 없는 과제가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제도로, 사회시스템으로, 그리고 기성세대인 선배들이 도와주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들려오는 뉴스들은 정부도 청년실업문제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음을 전해준다. 정부의 노력, 사회의 인식전환, 기성세대의 너그러움, 이런 것들이 하나로 녹아들어 더 이상 젊은 이들이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사회로 진출할 날이 빨리 오기를 희망한다. 그래야 어느 날 우리가 황지우의 시처럼 혼자 어렵게 밥을 먹을 때 그 식사 한 끼가 정말로 임무를 마친 ‘거룩한 식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백기훈 코오롱인더스트리 인사담당 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