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인간의 박쥐리더십

2017-01-31     신경수 아인스파트너 대표이사

나는 박쥐다. 두 딸아이 사이에서 양쪽의 비유를 맞추기 위해 매일매일 고군분투하는 박쥐아빠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고등학생, 중학생 이들 두 아이 사이에 논쟁이 붙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팬클럽 사이에 상대방 연예인을 비난하는 논쟁이 붙었는데, 양쪽 팬들의 싸움이 방송에 보도되면서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전이가 된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아니라고 저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지!”하면서 상대방이 지지하는 아이돌그룹의 인간성에 대한 비난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각자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한 미묘한 라이벌구도가 형성되면서 큰 아이와 작은 아이의 싸움으로 옮겨 붙은 것이다. 문제는 이럴 때면 항상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며 자신의 편에 서달라는 눈빛의 질문이 나에게 날아온다는 것이다.

초보 아빠 시절에는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아이의 편에서 한쪽을 지지해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도 얼추 경험이 쌓이다 보니 누구 하나의 편을 들어준다는 것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의 경험을 통해서 터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둘 다 맞아!”라고도 하지 않는다. 줏대 없는 아빠로 몰리며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큰애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작은애 너의 말이 100% 맞아!”라고 말하고, 작은애가 없을 때는 “큰애 너의 말이 100% 맞아!”라고 말하며 따로따로 편을 들어 줘야 탈이 없다. 최대한 신속 하게 상대방이 눈치를 못 채도록 큰애가 옳다고, 작은애가 옳다고 편을 들어주는 박쥐아빠가 되어야 한다.

이런 박쥐생활은 다른 가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난 주말 오랜만에 처갓집 가족모임이 있어 다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마침 현 시국과 관련하여 TV에서 보수와 진보의 목숨을 건 토론방송이 보도되었고 이 논쟁이 우리 집에도 그대로 옮겨 붙는 사건이 발생했다. 80을 바라보는 장인어른은 안보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극보수주의자이고, 40을 조금 넘은 처남은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할 정도로 극 진보주의에 가깝다. “좌파들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다.”는 장인어른의 말에 처남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말씀은 법이요 진리’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겐 장인과 처남 두 부자지간의 한치 양보 없는 논쟁이 처음에는 참 신기했다. 적응하기 힘들었던 처갓 집의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아니 어떻게 아버지가 말씀하시는데 저렇게 대놓고 반박을 할 수 있지?”하는 생각을 하며 이런 논쟁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문제는 누구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중립을 지키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장인어른은 항상 나를 전쟁터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수정아빠야, 네 생각은 어떠냐?”라는 멘트와 함께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낸다. 나는 주저 없이 장인 편을 든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아버님 말씀이 맞으십니다. 안보가 최우선인데 지금 야당은 자기네들 이익을 위해서 국가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고 있습니다.”라는 말로 장인 편을 드는 것이다. 기분이 좋아지신 장인은 “역시 우리 수정아빠는 생각이 건전해서 좋아~”라고 말하며 행복한 얼굴로 술을 한 잔 들이켠다. 처남에게 미안한 눈빛을 보내며 그렇게 박쥐사위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이어간다.

이런 박쥐인생이 가정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회사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직의 수장으로 리더십을 발휘함에 있어서 어떤 때는 과감하고도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고, 동시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의견이 그대로 의사결정에 반영 되는 프로세스를 밟아야 할 때가 있다. 그야말로 박쥐사장의 박쥐리 더십이 아닐 수 없다.

오래 전 읽은「The Leadership Paradox: Balancing Logic and Artistry」라는 책이 있다. 저자는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의 Kent D. Peterson 교수로 “리더는 조직의 성공적인 변화관리를 위해 ‘상반되는 사안에 대한 밸런싱’이 필요하다.”라는 멘트와 함께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전형적인 박쥐리더의 행동강령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리더는 변화에 대한 강력한 추진력과 동시에 구성원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해야 하며,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신속한 결정을 해야 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또한, 변화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직시함과 더불어 변화 후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해야 하고, 변화에 대한 주도적 역할과 함께 구성 원이 자발적으로 변화에 나설 수 있는 환경조성에도 신경 써야 한다.”

어찌 보면, ‘언어의 미학’에 불과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성공하는 기업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에서 제시한 ‘AND 경영’을 떠올리며 책의 내용을 해석하면 이해가 훨씬 빨라진다. 책의 저자인 동시에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로 추앙 받는 짐콜린스 교수는 지속적 성장기업의 비밀로 ‘AND 경영’을 제시하였다. “지속적 성장기업의 비밀은 OR가 아닌 AND에 있다”라고 말하며, ‘Tyranny of OR’의 경영이 아닌 ‘Genius of AND’의 경영을 주장했던 것이다.

짐콜린스 교수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서, 기업은 “이윤추구를 초월한 목적 AND 실질적 이윤추구 / 변함없는 핵심이념 AND 변화와 개혁 / 명확한 비전과 방향 AND 운 좋게 잡은 기회 / 거칠고 무모해 보이는 목표 AND 점진적이고 진화적인 추진과정 / 장기적 안목에서의 투자 AND 단기실적에 대한 요구 / 철학적이며 미래지향적인 AND 현실적인 일상업무의 수행”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평론가들은 이를 가리켜 '상충적 이중성의 미학'이라고 표현했다.

가정이든 조직이든 오래가기 위해서는 내부의 평화가 중요한데, 내부의 평화를 위해서는 어느 한쪽에 서서 주장을 펴는 것보다는 상황과 환경에 맞추어 대응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말로 해석을 해보았다. 자칫 회색분자, 기회주의자로 몰릴 수 있는 박쥐인간의 처세술이 지속적 성장기업이 필요로 하는 리더십의 요체로 표현되는 현대적 해석이 마냥 신기할 뿐이다.

기왕이면 평범한 박쥐가 아닌 ‘황금박쥐’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어렸을 때 즐겨봤던 만화영화 황금박쥐가 생각이 나서다. “어디 선가 도움이 필요할 때 바람처럼 나타나 도와주고 사라지는 황금박쥐~”의 로고송처럼 '상충적 이중성의 미학'을 발휘하여 조직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소리소문 없이 해결해 주는 그런 '황금박쥐 리더십'도 경우에 따라서는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