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간 그리고 ‘기억’

2017-05-29     정인환 동부하이텍 인사담당 상무

"사람은 진정한 자신의 진가를 깨닫지 못하는 한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헤아릴 수 있는 것은 눈도 아니고, 지성도 아니거니와 오직 마음뿐이다.”
[Mark Twain (1835~1910)]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실력을 입증한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상대를 바꾸어 새로운 대국을 펼치고 있다. 상대는 세계랭킹 1위 커제 9단이다. 지난 5월 23일 열린 제1국에서 알파고는 단 한 차례도 승기를 놓치지 않고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커제는 알파고의 바둑 수준을 “인간보다 수천 년은 앞 선 것 같다”고 평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 대결하던 때와는 또 다르다. 오직 스스로 대국하고 학습하는 ‘강화 학습’만으로 나온 결과이다. AR, VR, AI, IoT, 5G…… 수십 년에 한 번씩 나올만한 기술들이 동시에 쏟아져 나와 지금껏 상상하지 못했던 위력들을 보여준다. 요즘 선보이는 새로운 기술들은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왜소하게 만들거나 불안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의 시작점은 인간이다. 인간 스스로의 편의와 욕망충족을 위하여 도구가 사용되고, 기계가 개발되고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 자신이 대체되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인간의 어떠한 특징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을까? 현대의 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억’이라는 독특한 메커니즘에서 그 답을 찾는다. 따지고 보면 세상만물은 어떤 형태로든 ‘기억’이라는 존재를 위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나무는 종에 따라 과거부터 이어온 저마다의 독특한 생장 패턴을 가지고 있다. 동물들은 보다 더 인간과 유사한 기억 메커니즘을 갖고 있다. 사회·인류학을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인간을 인간답게 구분짓는 차별점을 찾아 왔고 직립보행, 언어사용 등의 요인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장류는 일반적으로 직립보행이 가능하고 동물들의 울음소리를 저들 간의 언어가 아니라고 부정할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직립보행이나 언어사용만으로 오늘날의 인류를 특정해내기는 어렵다. 현대의 과학은 인간의 독특한 ‘뇌 구조’에서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차이’를 이해한다. 결국은 인간의 독특한 ‘뇌 구조’에서 기인한 인간만의 독특한 ‘기억’ 메커니즘이 오늘날의 인류를 있게 한 근본 시작점인 것이다. 인간의 뇌를 이용한 고차원적인 ‘기억’은 나무나 다른 동물들이 생존을 위하여 답습하는 행동패턴과는 완연히 다르다.

원래 자연에는 인간의 고차원적인 ‘기억’의 관점에서 ‘기억’이라는 현상이 없다. 모든 물리적 정보는 시간이 지나면 쇠퇴하거나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어떻게 ‘기억’이라는 현상이 생겨났을까?

생명의 기본 출발인 세포는 외부에서 에너지를 들여와 세포내부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가진 개체가 되었고, 그 항상성을 유지하고 에너지 대사를 잘 처리하기 위해서 세포는 외부자극에 반응해야 한다. 단세포 동물은 세포 하나로 외부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이때 그 반응이 적절한지 여부는 고려하지 못하고 단지 반응만 할뿐이다. 세포 간의 연결을 통하여 탄생한 다세포 동물은 식물과는 달리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지 못하고 다른 생명체의 에너지에 의존해서 항상성을 유지한다. 그 결과 외부자극에 적절한 반응을 해야만 생존 확률이 높아지고 이를 위해 외부자극을 입력 받는 세포와 반응을 출력하는 세포 간의 기능분화가 이루어졌다.

진화한 생명체는 다양한 운동 중에서 자극에 적절한 운동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진화의 정점에 있는 인간은 이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놀랍게도 자연의 법칙에서 벗어난 기능인 기억이라는 현상을 만드는 세포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신경세포가 바로 그것이다. 신경세포는 다른 세포와는 달리 세포막이 거의 무한히 변형되며, 세포막을 통해서 신경전달물질과 신경호르몬을 분비하면서 전압펄스를 만들어 정보를 저장하고 전달한다. 결국 외부의 자극이 뇌 안의 프로세스를 거쳐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기억이 저장 되는 현상은 신경세포의 가지가 자라나는 형태로 이루어지며, 신경세 포가 자라나지 못하고 있던 가지마저 말라 죽는 현상을 치매증상이 라고 부른다.

기억의 종류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나 크게 해마에서 만드는 일화기억과 대뇌피질에서 생성되는 의미기억이 대표적이다. 일화기억은 말그대로 한 장의 그림처럼 기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늘아침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해 보면 경험한 일들이 수많은 사진의 형태로 떠오를 것이다. 반면 의미기억은 수많은 일화기억에서 공통의 패턴을 추출하고 개념을 추출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범주화시킨 기억의 형태 이다. 인간은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질수록 의미기억이 많아지고 강해진다. 의미기억을 조성해내는 패턴이란 건 외부사물과 사건 사이의 상대적 관계를 말한다. 중요한 기억의 대부분은 패턴으로 되어있다. 우리가 맥락을 파악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도 기억이 패턴으로 되어 있고, 시간상 순서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패턴을 불러오는 어떤 단서가 주어지면 자신의 기억에 저장된 패턴을 꺼내서 다음번에 일어날 패턴이 무언지 예상하고, 그 예상에 따라 행동을 선택한다.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지만 미래를 향해 던져진 것이다. 사람에 따라 패턴분리가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정보가 분리되지 않은채 덩어리로 들어오고 패턴완성만 반복하게 된다. 그러한 현상이 바로 조현증이며, 정신분열증이라고도 한다. 전문가나 총명한 사람은 패턴 분리가 잘되는 사람이다. 패턴을 잘 분리하는 사람은 특정한 자극을 1,000가지로 분류해서 대화를 하고자 하는데 패턴분리가 안 되는 사람은 입력 정보가 한 개의 덩어리로 입력되고, 그것만을 가지고 패턴완성을 해 버리니까 새로운 학습이나 대화가 어려운 것이다. 모태신앙으로 시작하여 강한 신앙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맹목적인 신앙의 위험성이다.

기억에는 나이가 있다. 처음에 일화기억이었던 것이 점차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의미기억으로 변화한다. 완전하게 맥락에 맞고 정확했던 일화기억이 시간적 변화과정을 거쳐 맥락에서 멀어지고 부정확해지게 된다. 이렇게 문화적 정서적으로 탈맥락화 된 기억이 다시 기억에 재입력되면서 일화기억의 구체적인 내용은 사라지고 왜곡되어 앙상한 뼈대만 남게 된다. 이런 뼈대만 남은 기억을 우리는 의미기억이라 말하고, 의미기억으로만 가득한 사람을 사회적으로는 ‘꼰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꼰대는 나이 많은 보수층이 아니라, 새로운 학습이 안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기억’ 현상과 그 기본 메커니즘에 대해 장황하게 기술한 이유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독특한 존재인지를 자각해보기 위함이었다.

138억년의 우주 역사에서 참으로 독특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과 은하들 속에서 지구라는 신비한 환경을 만나, 눈부시게 진화하였고 막막한 우주 속에서 당당히 우주여행을 꿈꾸는 존재이다. 인류의 기술의 발전은 어찌 보면 인간을 닮아가는, 대체인간을 창조 해가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기획자이고 규칙을 만든다.

바둑이라는 게임(?)을 만든 것도 인간이라고 보면, 알파고 역시 바둑 이라는 게임영토의 일부일 뿐이다. 앞으로 포커전문, 술래잡기전문 알파고도 나올 수 있다. 미래에 강한 AI가 출현하여 인류를 위기에 빠뜨리게 되더라도, 그것은 AI의 탓이 아니고, 그 AI를 만든 사람의 책임이거나, 위기에 봉착하도록 대처하지 못한 인간들의 탓일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존중해야 할 것은 AI나 신기술이 아니고 여전히 우리 인간 자신인 것이다.

바야흐로, 자기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며, 타인을 이해 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인간만이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