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문화, 이렇게 달라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름 휴가철이 되면 대입 입시만큼 치열한 눈치작전을 펼쳐야 했다. 상급자의 휴가 일정에 일희일비해야 했고,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성실’을 최고 덕목으로 내세우며 휴가에 인색했던 한국 기업문화가 이러한 분위기 형성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 회사가 나서서 직원들의 휴가를 적극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제대로 쉬고 재충전을 한다면 업무 성과와 행복지수도 높아 지고 이직률도 낮아진다는 인식이 확산된 덕분이다. 직원 행복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기업들의 이색적인 휴가제도를 소개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현대카드는 업계에서는 선두적으로 2014년부터 ‘휴가 활성화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다. 임직원들이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전사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휴가를 독려하는 수준에서 멈추지 않고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는 문화를 조성했다. 이에 휴가 사용률이 제도 시행 전인 2013년 47%에서 2016년 70%까지 상승했다.
한화그룹은 올해부터 과장 이상 승진자(과장, 차장, 부장, 상무보)에게 안식월 휴가를 주고 있다. 유럽식으로 1개월 휴가를 파격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그룹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새로 부여된 직책과 역할을 준비하고 재충전할 시간을 주자는 취지에서다.
종합 안심 솔루션 기업 에스원은 지난해에 이어 ‘지사장 프리(Free) 주(週)’를 진행한다. 24시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 특성상 지사장은 주말은 물론 연휴 기간에도 자리를 비우기가 어렵다. 이번 ‘지사장 프리주(週)’를 통해 전국에 있는 지사장 전원이 7월 8일부터 14일까지 동시에 자리를 비웠다. 이 기간에는 전화는 물론 문자 메시지, SNS를 통한 업무 지시도 금지된다. 지사장이 없는 일주일 동안 임시 지사장이 모든 권한을 위임받아 지사를 운영하면서 자연스럽게 차기 관리자로서 역량을 키우는 훈련을 하게 된다. 특별 휴가를 마친 지사장들은 에스원 인재개발원에 모여 1박 2일간 워크숍을 진행한다. 지사장으로서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고, 하반기 경영전략에 대한 토의가 진행된다.
SE(Security Engineering) 사업부 임석우 부사장은 “상반기 목표 달성을 위해 수고한 지사장들에게 재충전의 시간을 부여하고 하반기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지사장 프리주를 마련했다. 앞으로도 임직원 들의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금융계도 직원들에게 휴가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국민은행은 여름 휴가 5일에 연차휴가 5일을 추가로 사용해 총 10일을 쉴 수 있다. 주말까지 포함하면 약 보름 동안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셈이다. 국민은행 임원들도 직원들의 장기 휴가 사용을 권고하는 내부 캠페인을 수시로 펼치고 있다. 다만 영업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해 직원 간 휴가 기간을 겹치지 않도록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연초에 확정한 휴가 일정은 무조건 떠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직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쉼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올해 장기 의무 휴가 기간을 10일에서 13일로 확대한 신한은행은 직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2010년 모든 직원이 열흘을 의무적 으로 쉬어야 하는 웰프로(WELL-PRO) 제도를 도입한 신한은행은 직원들의 호응에 올해 ‘웰프로2’를 시행하고 휴가 기간을 사흘 더 늘린 것이다. 주말 포함 최대 19일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직원들은 유럽이나 남미 등 장거리 여행도 시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자기계발휴직제’를 운영, 자기계발을 원하는 직원들은 해당 제도를 통해 1년간 무급 휴가를 다녀올 수 있다. 단, 휴가 기간은 근속 연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CJ그룹은 근속 연수가 5년을 초과한 임직원에게 6개월의 단기연수 기간을 보장하는 ‘글로벌 노크’ 제도를 마련했으며, SK텔레콤도 근속 연수에 따라 장기 휴가를 즐길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근속 연수 20년, 25년, 30년 중 선택해 5일 유급휴가와 함께 부부 동반 해외여행 혜택을 제공하며, LG전자도 5년 이상 근속 직원들을 대상으로 최대 5주까지 쉴 수 있는 안식 휴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당신의 휴가‘법’이 지켜줄게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7월 16일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한 휴가 사용 촉진 방안 및 휴가 확산의 기대효과’ 조사 결과를 발표 했다. 이번 조사는 만 20세부터 59세까지의 민간기업, 공공기관 근로자 중 재직기간이 1년 이상인 임금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와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 인사·복지 담당 중간관리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층 면접을 통해 이뤄졌다.
휴가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임금근로자의 연차휴가 부여일수는 평균 15.1일, 사용일수는 평균 7.9일로 52.3%의 사용률을 보였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평균 휴가 일수가 20.6일, 휴가 사용률 70% 이상인 것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다. 특히 전체 응답자중 휴가사용일이 5일 미만이라는 대답이 33.5%로 가장 많았으며 연차휴가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응답자도 11.3%로 나타났다. 휴가 사용 횟수는 연평균 5.85회, 최장 휴가사용일은 평균 3.08일로 나타나 대체로 연차휴가를 짧게 사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못한 장애 요인으로는 ‘직장 내 분위기’가 44.8%로 가장 높았고 그 뒤로는 ‘업무 과다 또는 대체 인력 부족’ (43.1%) ‘연차휴가 보상금 획득’(28.7%) 순이었다. 휴가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삶에 대한 만족감 하락(49.9%) △ 스트레스 누적으로 인한 업무 능률 저하(38.5%) △스트레스 및 피로 누적으로 인한 건강 문제(33.3%) 등을 꼽았다. 연령대별 응답을 살펴 보면 20대는 ‘이직 고려’, 30대는 ‘업무능률 저하’라는 응답 비율이 높은 반면, 50대 근로자의 경우 ‘휴가 사용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응답 비율이 22.5%로 높게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는 휴가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근로자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에 법적으로 직장인들이 열흘 치 연차휴가를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입법안이 추진됐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에게 10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게 보장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제노동기구(ILO) 연차유급휴가협약 제132호는 연차휴가가 단기 휴식으로 확보할 수 없는 여가로 활용되게 하기 위해 ‘중단되지 않는 2주일의 휴가’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5년 개정된 국가공무원복무규정에서 ‘10일 이상 연속된 연가 사용의 보장’ 규정이 신설된 것도 같은 취지에서다. 그러나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장기 연속 휴가를 위한 일정 기간 이상의 연차휴가에 대해 일괄사용 원칙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현행 근로기준법에서는 원칙적으로 휴가 시기에 제한을 두지 않고 근로자의 청구가 있는 시기에 발생한 휴가 일수 안에서 청구한 만큼 연차휴가를 주도록 하는 시기 지정권을 보장하고 있다. 다만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는 경우에 한하여 사용자가 시기 변경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상사 눈치 보기 등 휴가 사용을 꺼리는 직장 분위기 때문에 완전한 개인적 권리로서 휴가권을 파악하여서는 휴가 사용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
그 결과 연차휴가 소진율이 절반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불연속적 최소 휴식’에 그치고 있다. 글로벌 여행업체 익스피디아가 지난 2016년 총 28개국을 대상으로 휴가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평균 연차휴가 15일 중 8일만 사용해 조사 대상 국가 중 사용일수에서 6년 연속 꼴찌를 기록했다. 또한 휴가 사용일수가 10일 미만을 기록한 나라 역시 한국이 유일하다.
개정안은 10일의 연속휴가 사용 보장과 함께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를 통해 여름 휴가철이나 명절 또는 해당 기업이나 부서의 업무가 한가한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연차휴가를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계획휴가제와 집중휴가제 도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근로자의 연차휴가 청구 및 사용자의 시기 변경권 행사 시 서면 등의 방법을 이용하게 함으로써 휴가 관련 분쟁을 예방하거나 분쟁 발생 시 해결 근거로 활용될 수 있게 하였다.
김병욱 의원은 “열흘 치 연차휴가 연속 사용을 보장하고 그 시기를 노사합의로 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상사 눈치 보기 등 경직된 직장 문화 때문에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