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직원이 모여 빛나는 회사를 만든다
백진기 한독 부사장
약 500만 개. 국내에서 운영 중인 기업의 수다. 순수 한국 기업과 다국적기업, 제조업과 서비스업, 스타트업 등 국적과 형태도 다양 하다. 이 정도 되니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오히려 알고 있는 기업을 헤아리는 편이 더 빠르다. 이제는 어떤 회사가 무엇을 판매하고, 원하는 인재상이 무엇이고, 비전이 무엇인지 일일이 파악하기도 힘들다. 삼성, 현대, LG 등 몇몇 대기업이 국내 기업을 대표하던 20~30년 전과는 격세지감이다.
기업이 늘어난 만큼 구인기업 간 유능한 인재 채용, 양성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HR 분야가 기업 경영에 있어 비중이 커지는 이유다. 본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HR 트렌드를 살펴보고 HR 전문가들로부터 조언을 전해 듣는 ‘Special Talk’코너를 마련했다. 첫 번째 주자로 30여 년간 HRer로 경력을 쌓아온 백진기 한독 부사장을 서울 역삼동 한독 본사에서 만났다.
Smart Person이 만드는 Smart Company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그곳을 떠나는 직원이 있다. 사유를 살펴 보면 ‘사람’ 탓인 경우가 많다. 특히 상사와의 불화가 큰 영향을 미친다. 반대로 취업준비생들이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사, 직장인들이 이직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꼽는 배경에도 역시 ‘사람’이 있다. 회사 분위기가 좋다는 것은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좋은 사람이라는 방증이다.
회사 성장을 위한 인재 사냥법 『면접의 힘』을 발간한 바 있는 백 부사장은 “회사는 곧 사람이고, 동료”라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라며 “이름도 모르는 회사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내가 아는 스마트한 선배, 친구, 후배가 다니는 곳이라고 하면 그 회사가 스마트한 회사로 인식되고, 샤프한 직원이 있는 회사는 샤프한 회사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경영학의 큰 줄기로 과학적 경영관리법이라 일컬어지는 테일러리즘(Talyorism)과 타인의 관심으로 행동이 바뀌거나 작업 능률 및 생산 성이 향상된다고 보는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가 있다. 한독은 후자에 해당한다. 직원들이 출근해서 동료들과 친한 친구처럼 업무 외적인 담소를 즐길 정도로 편안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다. 백 부사장은 “사람들이 수다를 떨 수 없는 경직된 직장은 좋은 회사라고 할 수없다.”고 역설했다. 소통할 수 있는 채널도 다채롭다. 분기마다 타운홀 형식으로 진행되는 전 직원 조회에서 직원들의 회사에 궁금한 부분을 질문하고 CEO가 직접 답변한다. 비슷한 질문이 몇 번이고 게시 되기도 하지만 매번 답글을 올린다. 마지막 한 명의 직원까지 존중하자는 기업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독은 채용, 면접 과정에 대한 악플이 거의 없는 회사다. 또한, 직원들이 “우리 회사 좋아, 지원해봐”라고 지인들에게 추천하기도 한다.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정말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렇게 인연이 닿아 입사한 직원들도 있다. 오랫동안 인사를 담당해온 입장에서 자부심을 느낀다.”
옛말에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했다. HR에 적용해보자면 유능한 인재가 유능한 인재를 이끄는 지표가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한독의 인사 전략이기도 하다.
한독은 3.0시대
1954년 설립된 한독은 한국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한다. 한국전쟁 후 피폐해진 경제 여건을 딛고 제약업 재건을 주도했고, 60년대에는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독일 훽스트와 합작했다. 이후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와 제휴를 맺으며 제약 산업의 선진화를 선도해왔다. 하지만 6년간 파트너십을 이어왔던 사노피와의 합작 관계를 지난 2012년 정리하면서 한독은 한국을 대표하는 토탈헬스케어 기업이 되기 위한 변혁을 시작했다. 한독이 시작된 1.0시대와 글로벌 제약기업과의 합작을 발판으로 성장한 2.0시대를 지나 글로벌 경영을 향한 3.0시대를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백 부사장은 “HR에서도 큰 변화가 있다. 이전에는 다국적기업에서 세워놓은 인재상이 기준이었다면 일본 자회사까지 이끄는 지금은 우리만의 인재상을 만들고 자회사에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독은 주도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인재를 갈구한다. 새로운 길을 찾고 만들어야 하며, 대내외적으로 원활한 파트너십도 맺어야 한다. 인재상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백 부사장이 주목하는 것은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다. 한독은 직원들을 위한 복리후생이 좋기로 유명하다. 1980년대 업계 최초로 주5일 근무제를 도입했고, 자율 출퇴근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인정받아 백 부사장은 2013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남녀고용평등 유공자’ 국민훈장을 받았다.
“회사에 젊은 직원들이 많다. 역사가 63년이나 된 회사의 직원 평균령이 36세에 불과하다. 이들이 우리 회사를 선택한 이유를 들어보면 ‘일과 생활의 균형’ 때문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편한 회사라고 여길수 있겠지만 한독은 편한 회사가 아니다. 편한 회사가 되면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없고, 물이 고이면 썩듯이 좋은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직원들에게 항상 워라밸을 지향하되 ‘독한’ 사람이 되라고 강조 한다. 한독을 뒤집어서 읽으면 독한이 되기 때문이다(웃음).”
직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업계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은 인사 전문가인 백 부사장의 몫이다. 평균성과자와 저성과자를 고성과자 범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백 부사장이 직접 직원 들과의 면담을 통해 그들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 준다. 무엇보다 한독이 인사관리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교육’이다. 직원 1인당 한 해에 32시간 이상의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저성과자에게 핵심성과지표(KPI)를 작성하고 달성할 기회를 제공한다. 모든 직원이 고성과자가 될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지금까지 직원을 해고한 사례는 한번도 없다.
“운동선수만 프로가 아니다. 우리도 회사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한 프로다. 그렇다면 스스로를 시장에서 빛나는 스타로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빛나는 사람이 되면 그들이 모여 있는 우리 회사도 역시 빛나게 될 것이다.”
직원을 존중하고 동반자로 여기는 분위기는 경영 과정에서도 발견 된다. 한독은 경영 실적을 전 사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한다. 백 부사 장은 “사노피와의 결별 이후 투자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아직 성과가 크지 않다. 이러한 실적을 보고 오히려 노조가 회사 이익을 생각해야 한다며 하소연한다면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라고 전했다.
요즘 경영 일선에서 강조되고 있는 ‘가족친화경영’ 역시 한독에서는 낯설지 않다. 설립 50주년인 2004년 직원과 그들의 가족이 모두 모여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해마다 패밀리투어를 진행한다. 한독에게 가족은 직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려고 하면 가족들이 만류하고 나서는 기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의 최대 목표는 최대 이익을 내거나 회사 규모를 키우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에게 최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직원들끼리 터놓고 얘기할 수 있고, 직원들이 월요일에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다.”
HR도 맞춤형이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서 중 하나가 ‘인사’ 분야다. 밀레니얼 세대가 노동시장에 유입되고 있고, 인사 담당자들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사고, 생활 및 업무 패턴을 갖고 있는 이들과 회사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해야만 한다. 백 부사장은 그들의 동기 요인을 세밀하게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승진과 급여가 당근이 되는 시대는 지나갔다.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은 저마다 동기 요인이 다르다. 직원이 900명이면 900개의 사례가 나올 것이다. 그들의 세밀한 속마음까지 알기 위해서는 면담밖에 답이 없다. 임원이 이야기를 들어 주고 고충을 해결해주면 직원들은 ‘일할맛 나네!’라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복리후생인 셈이다.”
백 부사장은 또 노동시장도 몇 년 후면 지금과는 판도가 전혀 달라지 리라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지만, 점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경계가 허물 어질 거라는 설명이다. 그 징후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업무혁신을 통해서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도 업무 처리가 가능해졌고, 유연한 출퇴 근으로 시간 활용도가 높아졌다. 한독도 영업 직원의 경우 사무실이 따로 없다. 필요에 따라서 본사 사무실을 예약하고 회의를 진행한다.
“업무 완성도가 화두지 사무실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이제 큰 문제가 아니다. 재택근무하면서 온라인으로 업무를 완수하게 되면 투잡, 쓰리잡 등 부업을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날 것이다. 더불어 액티브 시니어 에게도 주목해야 한다. 초고령화 시대에 들어서면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한 영화 ‘인턴’처럼 액티브 시니어의 노동시장 진입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들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