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평가제도 동향과 특징

2017-09-28     장상수 아시아대학교 도시창조학부 교수

매년 1,000개 이상 늘어나는 장수(長壽)기업

기업의 궁극적 경영목적은 ‘지속적 성장’에 있다. 동경상공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일본에는 창업 1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이 3 만 3,069사가 있다. 이는 100개 기업 중 하나가 장수기업인 셈이다. 5년 전 조사와 비교하면, 5,628사가 증가하여 매년 1,100개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대다수 장수기업이 수명 연장에는 성공하였으나 지속적 성장에는 실패한 꼴이다. 종업원 수 20인 이하가 71%, 매출액 5억 엔 이하가 67%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장수기업은 564사로 전체의 1.7%에 불과하며, 일본의 전체 상장기업(3,647사)의 15.4%에 그친다.

100년 이상을 경영해오면서도 규모는 정체 상태에 머무는 장수기업은 대부분 가업(家業) 승계 형태로 이어져 오고 있다. 가족 중심의 경영이기 때문에 온정적 인사관리를 그 특징으로 보여준다. 일본적 경영의 세 가지 신기(神器) 중 하나로 거론되는 연공서열적 인사관행을 엿볼 수 있다.

상장한 장수기업은 성과와 가치 창출을 중시

한편, 상장한 장수기업들은 업태의 다양화와 비즈니스의 글로벌화에 적극적이며,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지속적 성장을 이루고자 인사관리 측면에서도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였다. 1945년 패전 이후의 경향을 보면,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70년대 중반 이후에 ‘연공주의’에서 ‘능력주의’로 이행하였고, 일본 경제의 버블붕괴와 더불어 ‘잃어버린 20년’이 진행된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능력주의’에서 ‘성과주의’로 이행하였다. 최근에는 제4차 산업시대의 도래를 내다본 새로운 가치의 창출을 중시하는 이른바 ‘가치주의’ 인사관리가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에도(江戶)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상가(商家)를 중심으로 널리 채용된 반토(番頭)경영을 살펴보면, 일본에서는 일찍부터 능력주의 인사 관리가 근간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즉, 데치(丁稚)-테 다이(手代)-반토(番頭)-오오반토(大番頭)는 오늘날의 사원-과장-부 장-임원에 상응하는 직급체계와 같은 것으로,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기초한 인사평가시스템이 작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경영후계자를 결정하는 데도 무능한 아들보다는 유능한 반토를 데릴사위로 맞이하여 물려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혈연관계보다 능력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3만 개 이상의 장수기업들이 배출되고 있다고 여겨 진다.

아베노믹스의 성과중시 인사제도개혁
90년대 초, 버블이 붕괴되기 시작한 이후 25년간, 일본 경제의 GDP는 500조 엔 전후에서 정체되어 왔었다. 2012년 말에 재집권한 아베 총리는 동경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까지 GDP 600조 엔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지난 5년간 국내외 환경변화와 경제성장 추이를 지켜보면서 다양한 보완조치를 거듭 취하여 왔다.

일본 정부는 경제성장의 실현 주체가 기업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주안점을 두고, 다기에 걸쳐 각종 규제완화와 제도개혁을 추진해오고 있다. 엔저(円低)와 법인세 인하, TPP 등 통상협정체결, 원자력 재가동, 노동개혁 등을 통하여 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강화해 오고 있다. 그러나 노동개혁은 야당이나 노동계의 반대, 관련법령 개정까지의 절차적 시간소요 등으로 가시적 성과를 내세우기에는 미흡한 실정이다.

최근의 ‘미래투자회의 2017’(2017년 6월)에서는 경제성장을 통한 소득증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즉, ‘비약적 생산성 제고를 위한 투자’ 와 ‘제4차 산업혁명 기술의 사회 정착’을 축으로 하여 창출된 경제성과를 바탕으로 근로자들의 ‘지속적 임금상승’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의 소득주도성장론과는 선후(先後)가 뒤바뀌어 있다고 하겠다.

근로자 임금이나 처우와 관련해서는, 노사 간 자율결정을 기본으로 하되, 정부로서는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해소에 주력하고 있다. 그 일례가 ‘동일노동·동일임금’의 가이드라인 제시다. 예컨대 기본급의 경우, 균등·균형대우의 확보를 강조하지만, 직무나 업무능력, 근속연수 등에 있어서 합당한 차이가 있고, 그러한 차이를 반영한 임금 차등은 인정하고 있다. 직무수행능력이나 목표 달성에 있어서의 개인차도 인정하여, 인사평가에 기초한 보너스나 인센티브의 차등지급 또한 인정하고 있다. 노사 간의 대화를 통한 합당한 결정기준이 선결된다면 수당이나 복리 후생, 교육훈련 등에 있어서도 차등 처우는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성과 중심의 인사관리에 대해서는 노동계를 비롯한 정계, 학계, 시민단체로부터의 반대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정부로서도 연공이 아닌 능력으로 평가하는 인사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에 대한 지원과 더불어, 다양한 일에서 요구되는 지식·능력·기술 등의 직업정보 제공, 기능검정이나 직무카드 등에 의한 직업능력평가제도 정비 등 관련 시책들과 연계하여 추진해 갈 계획이다.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는 인사평가제도나 임금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실현한 기업에 대한 조성(助成)제도도 창설하고자 한다.

인사평가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절반 수준

조사기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인사평가제도에 대한 근로자 만족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엔쟈판(En-Japan) 주식회사의 조사 (2017년)에 따르면, 퇴직이유 중에 ‘평가나 인사제도에 대한 불만’이 2번째로 꼽혔다. 1위는 ‘낮은 임금’, 3위는 ‘잦은 잔업이나 휴일출근’이다. 한참 일할 연령층인 30대 중반에서 약 4할의 종업원이 인사평가 제도에 대한 불만으로 회사를 떠나고 있다.

리쿠르트사의 조사(2016년)에서는 직장인의 약 8할이 인사고과를 중시하지만, 현행 인사평가제도에 대한 만족도는 5할에도 못 미친다. ‘평가대상의 모호’(54%), ‘평가기준의 모호’(47%), ‘평가와 보상이 연계되지 않음’(32%) 등이 불만 요소로 지적되었다. 노무행정연구소의 조사(2016년 11월)에서는, 지난 5년간 49%의 기업이 인사평가제도를 개선하였다. 평가체계, 제도운용의 룰, 평가 가중치, 평점분포 등이 그대상이었다.

산로(産勞)총합연구소의 ‘평가제도 운용에 관한 조사’(2016년)에서는, 응답 기업의 95%가 평가제도를 운용하고 있으며, 85%가 평가시스템을 공개하고 있다. 사후평가(99%)가 사전평가(인재어세스먼트: 23%)를 압도하는 가운데, 사후평가의 항목을 보면 일반직 계층에서는 직무수행능력(82%), 행동·태도·의욕(94%), 목표달성도(91%) 등이며, 관리직 계층에서는 각각 70%, 80%, 94%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세 가지 평가항목에 대해 각각 평가한 것을 종합하여 평가하는 기업이 전체의 9할에 달하였다. 종합평가의 기간은 6개월이 6할, 1년이 4할이 며, 평가단계는 5단계가 48%, 7단계가 17%, 8단계 이상이 15% 등의 순으로, 그리고 평가자는 2차 평가까지가 45%, 3차 평가까지가 41% 로 집계되었다.

평가의 납득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평가시스템의 공개(85%), 고과 자훈련의 실시(7할), 평가메모나 노트의 활용 등을 실시하고 있으며, 공개 내용은 기간(99%), 항목(96%), 단계수(93%), 기준(89%), 반영선 (83%), 항목 가중치(77%), 결과(66%)의 순이었다. 저(低)평가자에 대해서는 각 45% 정도가 배치전환을 검토하거나 강격(降格) 조치를 취하거나 능력개발(27%)을 하도록 하였다. 평가결과에 대한 이의제기제도나 상담시스템을 마련하고 있는 기업은 4할에 불과하였다. 평가결과의 활용이나 반영선을 보면 승급(昇給) 89%, 상여 87%, 승격/승진 84%, 배치 16% 등으로 집계되었다.

리더십 역량으로서의 지행용훈평(知行用訓評)

인사평가는 ‘조직의 지속적 성장에 기여’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목적 실현의 수단으로서 개인과 조직에 대한 역량(Competency)과 성과(Performance)의 평가는 불가결하다. 즉, 조직이 지향하는 비전과 경영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중장기 경영전략을 전개함에 있어서, 개인과 조직에게 요구되는 역량의 기대수준과 보유수준 사이의 갭은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기적 역량평가와 인재육성이 불가피하다. 역량평가의 결과는 보상보다는 승진, 적재적소의 배치이동 등에 반영됨이 바람직하다. 물론, 일본에서는 복잡한 기본급체계의 일부를 구성하는 능력급 결정에 반영하는 기업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생산함수로 볼 때, 인풋에 해당하는 개인과 조직의 역량 차이는 아웃풋에 해당하는 성과의 차이로 직결된다. 일정 기간의 직무수행이나 경영활동의 결과를 평가하여 보상과 승진 등에서 차등을 두는 것은 대다수 글로벌 기업들의 공통점이다. 물론, 승진의 경우는 자리의 제한이 있으므로, 역량평가와 성과평가, 나아가 리더십평가 등을 종합하여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먼 훗날까지 이름을 남길 정도의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또 목표달성이나 성과창출을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의 동기부여와 구심력의 극대화가 필요하다. 어리석은 상사는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는 스타일이다. 슬기로운 상사라면, 자질과 능력을 갖춘 부하에게 각각 북과 장구를 맡기고, 자신은 조직의 비전을 향한 방향타를 맡는 것이다. 필자가 대기업 집단의 임원으로 재직할 당시, 리더십 역량으로서 지행훈용평(知行訓用評)이 라는 키워드를 접한 적이 있다. 리더는, 스스로 배워서 알아야 하고(知), 알게 된 것은 행동으로 옮기고(行), 널리 조직 구성원들을 가르쳐야 하며(訓), 가르쳐서 키운 사람은 적재적소에 쓸 줄 알아야 하고(用), 마지막으로 자신과 조직 구성원의 실행에 대해서는 평가할 줄알아야 한다(評)는 것이다.

개인과 조직은 역량과 성과에 있어서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누구나 평등하다는 식으로, 평가를 경시하고 처우를 동등하게 가져간다면, 저성과자에게는 단기적으로 유리할지 모르나, 고성과자에게는 일할 동기와 의욕을 상실케 만들 것이다. 결국 일류인재는 자신의 역량과 성과를 인정해주는 외국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가고, 국내 기업에는 능력부진자나 무임승차자만 남게 되어, 장기적으 로는 국제경쟁력 약화, 기업 도산,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공산이 커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