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est Plan is No Plan

럭키 방송인 겸 인디아그로 대표

2017-12-05     이지연 수석기자

인도는 ‘양파’같은 나라다. 까도 까도 새로운 모습이 나온다. 종잡을 수 없는 매력 덕분에 인도는 여행지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곳이기도 하다. 다시는 인도에 가지 않겠다며 두 손발을 절레절레 흔드는 여행객이 있는 반면,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그곳만의 매력에 매료되어 인도에 가고 또 가는 이들도 있다.

최근에는 한국을 방문한 인도 친구 3인방이 또 다른 인도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에서 21년간 생활한 방송인이자 무역회사 인디아그로 대표 럭키 씨의 친구인 비크람과 샤산크, 카사프가 그들이다. 케이블 프로그램인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해 한국의 곳곳을 여행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그동안 잘 몰랐던 ‘요즘’ 인도에 대해 궁금해하고 새롭게 알게 되었다. 인도 친구들도 북한과 남한, 핵폭탄 등으로 대표되 었던 한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

모두 한국과 인도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럭키 씨가 계획했던 대로였다.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의 인기 주역이자 방송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럭키 씨를 <인재경영>에서 만났다.

Oye, Lucky! Lucky, Oye!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럭키 씨를 만났다.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방송 직후여서인지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럭키 씨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개중에는 친근하게 인사를 건네는 팬도 있었다. 그 인사를 친근하게 받아주며 인사하는 럭키 씨의 모습에서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낯선 사람에게도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모습을 보이는 그에게서 한국생활 21년 차의 공력이 느껴졌다.

럭키 씨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강연 및 방송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인도에 다녀온 지 채 일주일도 안 되어서 사업 때문에 다시 인도에 가야한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도 럭키 씨의 핸드폰은 ‘열일’을 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메시지와 전화가 들어왔다.

“나는 대기만성형 인간인 것 같다. 한국에 온 지 20여 년 만에 빛을 발한 듯하다. 이것이 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목표는 인기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체험할 기회가 많이 생긴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1996년 3월 24일. 럭키 씨는 한국에 처음 왔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공직에 계셨던 아버지가 그와 그의 형에게 한국에서 공부할 것을 제안했고, 형제는 함께 낯설고도 낯선 이곳으로 오게 됐다. 그는 서울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익히면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첫 직업은 ‘여행 가이드’였다. 방학 때마다 인도, 스리랑카, 네팔 등을 안내하는 가이드를 했다. 한 번에 적게는 30명, 많게는 150명을 통솔해야만 했다. 4년 정도 지나고 보니 약 3만 명의 한국인들을 만남 셈이었다. 그는 그때 소통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됐다고 했다. 수많은 여행객들의 불만불평을 관리하면서 사람마다 가진 생각이 다르고, 원하는 것도 다르다는 사실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방송 일은 그 다음부터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외국인 리포터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방송국으로부터 리포터 추천 요청을 받은 어학당에서 사교적이면서 한국말도 잘 하는 럭키 씨를 추천 했다. 그렇게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이 KBS ‘생방송 세상의 아침’이었다. 1년 반간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지역 음식을 먹고 소개했다. 2003 년에는 SBS 인기드라마 ‘야인시대’에 워태커 소령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형과 함께 농수산물 무역회사를 차려 사업에 매진하면서 자연스럽게 방송활동이 뜸해졌다. 그가 다시 TV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15년이다. 이전 방송에서 동고동락했던 작가가 tvN ‘수요미식회’ 인도 카레 특집에 그를 섭외한 것이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JTBC ‘비정상회담’ 시즌2에 인도 대표로 고정 출연하게 되었고 호응을 얻었다.

“이름은 럭키이지만 항상 운이 좋았던 건 아니다. ‘생방송 세상의 아침’에는 내정된 외국인 리포터가 따로 있었는데, 그분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못하게 되면서 촬영 하루 전에 내게 연락이 왔다. 비정상회담에도 시즌1이 아니라 시즌2부터 참여했다. 이러한 기회들이 처음부터 나를 찾아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렇지?’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Everything has its time).’는 말이 맞는 것 같다(웃음).”

소통쟁이 럭키형

럭키 씨는 자칭, 타칭 ‘소통왕’이다. 비정상회담 멤버들도 그에게 “럭키형이 사람들과 친해지기까지 5분이면 된다.”고 말할 정도다. 소통의 대상은 말과 생각이 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면 누구든 가리지 않는다.

“소통의 가치는 경험과 생각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비정상회담 그리스 대표 출신 안드레아스, 조승연 작가 등과 자주 만나서 각자의 나라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사는 이야기, 생각들을 나눈다.”

그가 강연을 선호하는 것도 ‘소통’이 주된 이유다. 지난 10월에는 CNH Studio(씨엔에이치스튜디오)가 개최한 ‘여전히 진로 고민을 하는 나, 비정상인가요?’에 참여했고, 오는 1월에는 코리아헤럴드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외교아카데미’ 강연자로 나설 예정이다. 말로 하는 버스킹쇼 JTBC ‘말하는 대로’에 유일하게 출연한 외국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전하기에 충분한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사람보다도 더 한국말을 잘하는 그에게 한국어 공부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언어를 배우는 건 운동과 비교할 수 있다. 헬스장에 일주일에 한 번가는 사람과 매일 가는 사람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언어도 같은 원리다. 처음 3개월간은 3~4일 동안 시간을 투자해서 집중해야 한다. 기초가 다져지고 난 후에야 셀프 티칭(Self-Teaching)이 가능하다.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보면 모두 기역, 니은부터 차근차근 배웠다. 또 하나, 그 나라 사람이 아니면 당연히 언어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그렇다고 멈추면 안 된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이 ‘유창한 한국어’ 덕분 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힘겨웠던 시절이 있다. 그가 한국에 왔던 90년대 말만 해도 외국인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아시아인에게는 더욱 심했다.

“식당에 들어가면 주인한테 거절당해 다시 나오는 일이 많았다. 당시에는 한국어도 잘 몰랐고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6개월이 정말 힘들 었다.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더 나았을텐데 왜 한국이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한국생활이 익숙해졌고 또 이해가 됐다. 식당 주인들도 외국인들에 대해 잘 모르고 언어도 안 통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글로벌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 오면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동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생활과 사업을 이어가는지 궁금해졌다. 영어도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그에게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이더 많은 기회를 선사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유럽과 미국에는 인도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택시운전사부터 대기업 CEO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오히려 한국에서할 일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국과 인도는 역사적으로도 깊은 인연이 있다. 가야국 김수로 왕의 왕비가 인도 사람이다. 많은 인도 사람들이 이러한 내용을 잘 모른다. 나도 1999년도 김종필 전 총리가 인도를 방문해 개최한 행사의 통역을 맡아서 알게 됐다(웃음).”

그가 생각한 ‘많은 일’ 중 하나가 한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가교 역할 이었다. 방송을 통해, 사업을 통해 그는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의 한국과 인도를 각 나라에 보여주고 싶었다. 연장 선상에서 인도 친구 3인방을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초대했다. 그것이 한국의 시청자들은 물론 인도 친구들에게 서로의 나라의 매력을 알아가는 자극제가 됐다.

한국과 인도를 잇는 플랫폼 되고파

“인도 친구들이 오기 전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한국은 1950년대에 멈춰있었는데 업데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인도에 가서 친구들을 만났는데, 방송 이후 한국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너무 좋아한다. 인스타그램에 한국어로 포스팅하고, 다시 한국에 가고 싶어한다. 많은 한국 분들도 인도에 대해 새롭게 알았다며 여행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친구들과 시청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럭키 씨는 두 나라를 잇는 플랫폼으로서의 역할을 더욱 정확하게 인지하게 됐다고 했다. 특히 공기 업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10년 넘게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인도 농업인들과 거래하면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한국의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문화와 인도의 수용과 용서의 문화가 어우러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한 그는 그 일환으로 12월~1월 즈음 합정동에 인도레스토랑 ‘Oye Lucky! Lucky Oye!’를 오픈한다. 전통적인 인도 장식이 아닌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한국 문화와도 조화를 이룬 모던 인도레스토랑이다. 내년에는 그의 이야기가 담긴 책도 출간될 예정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바람이다. 가끔 직접 요리도 할 생각이다. 주변에서는 식당 내는 일을 반대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거다. 안 되면 여행 가이드하면서 인도를 더 널리 알리면 되지 않을까?”

럭키 씨의 생활신조인 ‘The Best Plan is No Plan’이 잘 드러나는 말이 었다. 그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이렇게 방송에 출연하고, 참깨 무역 사업을 하고 있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은 현실이 되어 있다. 그는 만약 자신에게 계획이 있었다면 원하는 때에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아 더 힘겹고 고통 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이 언제 어떻게 벌어질지 모른다. 그래서 늘 주문처럼 ‘The Best Plan is No Plan’을 읊조린다.

헌데 재미있게도 럭키 씨에게는 계획이 딱 하나 있다. 45살이 되면 은퇴한 후에 그림을 그리며 사는 것이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언젠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 혹은 카페를 마련하고 싶다. 아마도 경기도 양평 쪽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그쪽 지역을 좋아하기 때문이다(웃음).”

한국에서 본국으로 보내지 않는 이상 언제까지나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럭키 씨.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엔 언제나 한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