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에 기간만료는 없다

2017-12-29     신경수 아인스파트너 대표이사

분주한 월요일 오전, 미국에 거주하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신 사장, 오랜만이야! 잘 지내지?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는데, 도쿄 시내에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좋은 곳으로 호텔 예약 좀 부탁할 수 있을까?”
“갑자기 웬 호텔?”
“응, 연말에 가족들하고 일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일본은 처음이라 지역상황도 잘 모르겠고, 내가 예약하는 것보다 자네한테 부탁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아서, 아무래도 일본 하면 또 신경수 아니겠 어(^^!)” “…… ……” “아, 참 그리고 호텔 예약한 김에 가볼 만한 관광지도 미리미리 예약해 주면 더 좋고, 오케이?”

고객들 전화에 분주하게 응대하는 여행사 직원 이미지가 갑자기 떠올랐다. 졸지에 가족여행 주문을 받는 여행사 직원이 되어 버린 기분 이었다.

그렇다고 그 친구가 여행사를 이용할 돈이 없어서 나에게 전화한 건결코 아니다. 10여 년 전에 빈주먹으로 도미(渡美)하여 지금은 LA에서 수십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다. 무엇보다도 그 친구의 장점은, 곤경에 처한 친구들이나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을 그냥 모른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선천적인 정의감 때문에 학교 다닐 때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꽤나 인기가 좋았다.

물론 오랜만에 친구의 목소리를 듣게 되어 기쁘긴 했지만, 뜬금없이 “호텔 예약하고 관광지 알아봐 달라”는 주문에는 조금 당황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알고 지내는 여행사가 없을 리가 없고, 게다가 동창생 중에는 여행사를 하는 친구도 있는지라 본인이 알아볼 경황이 없으면 차라리 그 친구에게 전화해서 부탁하는 것이 번지수가 맞을 텐데, 내가 백수도 아니고 굳이 나에게 전화해서 이런 부탁을!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이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살짝 불쾌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불쾌감도 아주 잠시, 왜 나를 택했는지를 알기 때문에 “O.K! 알아보고 전화 줄게!”라는 대답과 함께, 우리는 평소처럼 어떻게 지내는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다른 친구들의 근황을 공유하면서 한참이나 수다를 떨었다. 그렇다면, 그 친구는 왜 전문여행사를 놔두고 구태여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친구의 머릿속에는 ‘日本=신경수’가 마치 공식처럼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비슷한 경우가 이맘때쯤이면 연례행사처럼 반복이 된다. 아는 친구나 선배들로부터 “우리 아이가 이번에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데 어디가 좋아? 시험은 어떻게 준비하고 면접은 어떤 질문들이 나와?” 이런 질문을 던지는 전화를 심심치 않게 받는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치안도 좋고 월세도 비싸지 않은 지역은 어디야?”와 같은 지역 복덕 방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아주 세부적인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이런 분들의 머릿속 구조도 미국에서 전화한 친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日本=신경수’의 공식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에 관한 문제라면 무조건 나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정말로 일본의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곳을 떠나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 되었다. 설령, 거기서 아직 생활하고 있다 하더라도, 정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이 요청하는 내용의 정보는 단 1%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나도 몰라!”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 봐야,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또 나한테 전화해서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 것이란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하느냐고? 나는 단지 그 분야를 잘 아는 전문가를 소개시켜 줄 뿐이다. 그게 나의 역할이다.

이렇듯 사람의 머릿속에 최초로 박힌 이미지는 여간해선 바뀌지 않는다. 일종의 앵커링효과(Anchoring Effect)와도 같은 것인데, 처음 느꼈던 인상 깊은 그 무엇이 기준점이 되어 이후의 사고 판단에도 큰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니가 작은아버지를 대하는 모습도 이와 비슷하다. 젊은 시절 한전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우리 작은아버지는 아직도 어머니에게 있어서는 만능기술자로 통한다. 오랜 교편생활로 타지에서 관사 생활이 많았던 아버지를 대신해서 신혼 초기에 작은아버지가 집안의 모든 전기제품을 고쳐드린 모양이었다. 그 당시 전기제품이라 해 봐야 천장에 매달린 백열전구가 전부였을 텐데, 어쨌든 우리 작은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있어 만능엔지니어로 통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베란다에 빨래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고 “아니 어머니 세탁기 고장 났어요? 빨랫감이 산더미네요!”라는 말을 던진 적이 있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것은 우리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내일모레 작은아버지가 와서 고쳐주실 거야!”라고 말씀하시며, 내 얼굴은 보지도 않고 자동 응답하시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작은아버지가 직접 세탁기를 수리하는 건 아니다. 작은아버지도 서비스센 터에 연락해서 수리를 받는다. 하지만 어머니는 작은아버지께서 고치 셨다고 믿는다. 어머니에게 있어서 작은아버지는 맥가이버 그 이상의 존재이다.

이렇듯이 초기에 형성된 뭔가의 강력한 이미지가 고착화되어 그 사람의 인간관계에 큰 장애요인이 되는 케이스도 적지가 않다. 후배가 얼마 전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너무나 훌륭하신 목사님이라고 칭찬이 입에서 끊이지가 않는데,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분의 이미지는 여전히 건달이네요, 어떡하죠? 이러면 안되는데, 바뀌지가 않아요!”

새로 이사한 동네에서 알게 된 목사님이 수십 년 전에 같은 학교에 다녔던 선배라고 하는데, 그 목사님이 학창시절 동네 건달이었던 모양이 다. 후배들을 괴롭히고 사기폭행으로 교도소도 다녀오고 동네에서 악명 높은 주먹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서울 외곽의 작은 동네에서 개척교회의 목사님이 되어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나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말하며 과거 자신의 행적에 대해서도 용서를 구했다고 하는데,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동네 건달의 이미지가 가시 지가 않았다고 한다. 어떡하면 좋겠느냐고 나를 붙잡고 하소연을 한적이 있는데 나 또한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날 갑자기 출세해서 모임에서 사라진 친구들이 몇있는데, 감추고 싶은 이미지가 있거나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져서는 곤란한 비밀을 안고 있는 친구들이 대개 그런 경우에 해당이 된다. 언젠가 선거철에 TV를 보며 “저 친구 저기 나와서 저런 말할 자격이 되나? 맨날 거짓말만 하면서 신용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친구가 정치 인이 되겠다고 또 사기를 치네!”라고 말하며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들린 소문에 의하면 “사람이 많이 변했더라, 많이 진실해지고, 한번 약속한 것은 꼭 지키려고 무지 노력하더라!”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그 친구의 과거 위선적인 행동이 하나둘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농담 삼아 ‘출세하면 과거에 알았던 사람들은 숙청대상 1호가 된다’라는 말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심지어 이런 경우도 있다. 일명 ‘스폰서검사’ 사건인데, 큰 사업체를 경영하는 친구의 스폰으로 화류계 생활을 마음껏 즐기다가 결국 그 친구의 고소고발로 검사가 뇌물죄로 입건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학창시절 공부를 정말 잘한 검사와 그의 눈에는 하찮은 존재로 보였던 사업가 친구의 보이지 않는 주종관계가 작용한다. 공부를 잘해서 검사가 된 친구의 눈에는 사업가 친구가 아무리 크게 성공을 했다고 해도 그건 다른 사람들 눈에 그렇게 비치는 것일 뿐, 자신의 눈에는 ‘하찮은 친구’라는 공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새벽 1시고 2시고 시간 가리지 않고 전화해서 “돈 가지고 나와서 술값 계산해!”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이유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을 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글의 서두에 등장하는 친구처럼 아주 오래전 부터 알고 지낸 친한 知人들의 머릿속에서는 ‘신경수=日本’이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신경수=조직전문가’라는 말이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여기저기 기고하는 원고나 다양한 강연, 집필활동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는 10년이 걸린다고 하던데, 조직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CEO로서 듣고 싶은 말을 듣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한 느낌이다.

혹시나 ‘거짓말쟁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신용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괴로워서 잠을 못 잘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주장해도 주변 사람들이 “너는 그런 사람이야!”라고 우긴다면,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본모습이기 때문이다. 항상 주변사람들을 통해 나는 어떤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는가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계발에 나이제한이 있을 수 없고, 기간만료가 있을 수 없다. 듣고 싶은 이미지가 형성될 때까지 절대 중단해서는 안된다. 일생을 통해서 반드시 풀어야 하는 숙제라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