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역할·직무급 인사관리 동향

2018-02-05     허동한 일본 후쿠오카현립대학 공공사회학과 교수

일본의 ‘역할·직무급’은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이후 도입이 시작되어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성과주의 임금제도’로 불리며 확산되었다.
현재 일본 기업의 기본임금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임금항목으로서는 ‘역할·직무급’과 ‘직능급’ 그리고 ‘연령·근속급’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뒤부터 일본에서는 크게 두 번에 걸친 임금 제도의 개편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70년대의 오일쇼크를 계기로 고도경제 성장기에서 저성장 경제체제로의 이행이라는 경제 환경의 변화, 그에 따른 ‘능력주의 임금제도’로서의 개편을 들 수 있다. 이때부터 ‘직능급’이 확산된다. 그리고 두 번째가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에 따른 장기간의 경기침체라는 경제 환경의 변화, 그에 따른 ‘성과주의 임금제도’로의 개편이다. ‘역할급’과 ‘직무급’이 확산되는 시기이다.

1. 고도경제성장에서 저성장경제로 이행‘, 직능급’의 확산

‘직능자격제도’에 의한 ‘직능급’은 종업원이 가지고 있는 능력, 즉 업무수행상의 능력에 따라 임금액등 처우수준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보다 높은 능력(직무수행능력)을 가진 종업원은 보다 높은 상위 직능 자격이 주어지며 높은 임금이 지급된다. 만약 똑같은 업무(일, 또는 직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보다 높은 ‘능력’(상위의 직능자격)을 가진 종업원은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직무에 따라 임금액이 결정되는 ‘직 무급’과 다른 점이다. 따라서 ‘직능급’에서는 같은 일을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보다 높은 능력을 가진 종업원의 업무처리나 공헌도가 그렇지 못한 종업원과 비교하면 훨씬 높기 때문에 능력이 높은 종업원에게 높은 임금의 지급이 정당성을 가진다. 즉, 직능자격제도의 ‘직능급’ 에서는 업무수행능력, 보유능력에 따라 처우가 결정되도록 설계되어져 있다.
직능자격제도는 1960년대 후반부터 일본 기업에 도입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 2차에 걸친 오일쇼크를 계기로 일본 기업에 빠르게 확산되 었다. 즉, 오일쇼크에 따른 불황, 그리고 고도경제성장이 끝나고 저성 장경제체제로의 이행, 이에 따른 기업경영의 효율화, 간소화 등 조직 개혁의 필요성이 직능자격제도가 도입, 확산된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이는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후 장기간 경제침체에 따른 기업경 영의 효율화, 간소화 등 조직개혁의 필요성에 따라 성과주의 임금이 도입된 배경과 동일하다. 즉,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기업에 있어서의 임금제도 개편은 ‘경제환경의 변화’에 따른 기업경영의 대응방안으로서 도입이 확산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2. 버블경제 붕괴에 따른 경기침체기‘, 역할·직무급’의 확산

버블경제 붕괴에 따른 장기간의 경기침체기에 두 번째의 임금제도의 개편이 이루어지게 된다. 기존의 ‘어느 정도의 직무수행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와 함께 ‘어떠한 역할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어떠한 직무 (일)를 수행하는가’가 임금결정의 기준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소위 ‘성과주의 임금제도’로 불리며 ‘역할급’과 ‘직무급’이 도입,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역할·직무급’이 도입, 확산된 배경에는 기업의 ‘인건비 절감’의 원인이 크게 작용한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후의 장기간 경제침체기 때에 일본 기업들은 도산의 위험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경영재구 축과 조직개혁을 추진하게 된다. 이때 ‘인건비 절감’을 골자로 하는 인사제도의 개혁도 동시에 추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인으로서 ‘유동적 노동시장’을 꼽을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버블경제에 따른 호경기 때부터 시작된 노동시장의 유동화가 버블경제가 붕괴한 뒤에도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고용 형태가 다양화하며 노동이동율(이직율과 입직율)이 지속적으로 상승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특히 단기간 고용형태인 비정규직이 늘어나게 되며, 이에 따른 임금배분의 공정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종래의 ‘능력주의 임금제도’의 ‘직능급’이 가지고 있는 ‘기업내부에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나가는 기능보다는 ‘성과주의 임금제도’의 ‘역할급’과 ‘직무급’이 가지고 있는 ‘주어진 역할과 맡은 직무’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기능이 더욱 효율적이라는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
역할·직무급’의 확산하게 된 시기는 일본생산성본부의 조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도표 1] 관리직의 도입상황과 [도표 2] 비관리직의 도입상황을 보면, 1999년의 조사 시점부터 시작하여 ‘역할·직무급’의 비율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관리직에서는 1999년에 21.1%였던 ‘역할·직무급’의 비율이 2007년까지 급격하게 상승하여 2012년에는 79.2%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관리직에서도 마찬가지로 ‘역할·직무급’의 비율이 1999년 17.7%에서 2007년까지 급격하게 상승하여 2012년에는 58.4%의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3. 역할·직무급’과‘직능급’의 보완관계

‘역할·직무급’이 도입되었다고 하여 ‘직능급’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일본 기업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기본급 임금항목으로 기본임금을 결정하는 ‘병존형 임금체계’를 채택하고 있다. 만약 하나의 임금항목으로 기본임금이 결정되는 ‘단일형 임금체계’라면 ‘역할급’ 이나 ‘직무급’의 도입에 따라 ‘직능급’이 폐지되는 ‘대체관계’에 있을 것이지만, 이와는 달리 ‘병존형 임금체계’이기 때문에 상호 ‘보완관계’ 에 있다.
이러한 상호 보완관계가 의미하는 것은 여전히 일본 기업들이 기업내 교육훈련을 통한 인재양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달리 말하면, 성과주의 임금제도로 개편되었다고 해서 기업내부에서의 교육과 훈련을 통한 ‘인재양성’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에도 대부분의 일본 기업의 경우, 입사 후 일정한 연령대 까지는 기능양성의 기간으로 두고, 근속연수와 기능양성에 따라 임금 액이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 이러한 사실은 일본 기업의 기술력, 특히 제조업의 높은 생산수준과 품질을 지탱하는 ‘기업특수기능’의 중요성이 아직까지 강하게 남아있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기본급 임금항목의 비중을 ‘관리직’과 ‘비관리직’으로 나누어 조사한 일본생산성본부의 조사결과를 보자. 최근 조사인 2016년 결과를 보면, ‘관리직’은 ‘역할·직무급’이 74.4%로 가장 높고, 다음이 ‘직능급’ 66.9%, ‘연령·근속급’ 24.8%의 순으로 집계되고 있다. 반면에 ‘비관리 직’은 ‘직능급’이 82.7%로 가장 높고, 다음이 ‘역할·직무급’ 56.4%, ‘연 령·근속급’ 49.6%의 순이다. 연령이 상대적으로 낮은 ‘비관리직’은 ‘직 능급’의 비중이 가장 높은 점, 그리고 ‘연령·근속급’의 비중도 상대적 으로 높은 점으로 볼 때, 입사 후 일정기간은 기능양성 기간으로 두고 기업내부에서 인재를 양성해 나가는 일본적 고용관행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역할·직무급’의 비율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2005년까지는 ‘직 능급’의 비율이 하락하였으나, 그 이후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관찰되고 있다. ‘직능급’의 비율이 관리직에서는 60% 후반 으로, 비관리직에서는 80% 전반 수준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역 할·직무급’이 도입되면서 직능급이 폐지되는 ‘대체효과’가 없으며, 상호 ‘보완관계’에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직능급’과 함께 ‘역할·직무 급’이 함께 병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즉, ‘성과 주의 임금제도’로의 개편이라고 하더라도, ‘직능급’의 기존 임금체계 에서 ‘역할·직무급’이 새롭게 추가된 형태를 띨 뿐이다.

4. '역할·직무급’에서 임금결정, 승급관리

일본 기업 임금제도에서 임금액을 결정짓는 요소로서는 ‘자격등급’과 ‘임금표’, 그리고 ‘승급기준(평가제도)’의 세 가지가 있다. ‘자격등급’은 종업원들을 특정한 기준으로 서열을 매기는 것이며, 어떠한 기준인가에 따라 ‘직능급’, ‘역할급’, ‘직무급’ 등으로 나누어진다. 이러한 자격등
급별로 기준임금액을 표시한 것이 ‘임금표’이다. ‘직능급’에서는 ‘직무 수행능력’이라는 기준에 따라 ‘직능자격등급’이 정해지며, 각 직능자 격등급별 기준임금액이 표기된 ‘임금표’에 따라 직능급의 임금이 정해진다. ‘역할급’에서는 종업원 개개인이 맡은 ‘역할’을 기준으로 ‘역 할자격등급’이 정해지며, ‘직무급’에서는 수행하는 ‘직무’에 따라 ‘직무 자격등급’이 정해져, 각각의 자격등급별 기준임금액이 표시된 ‘임금 표’에 근거하여 ‘역할급’, ‘직무급’의 임금이 정해진다. 자격등급별 기준임금의 결정은 ‘역할·직무급’과 ‘직능급’에서 운용상의 차이가 없지 만, 종업원 개개인의 평가결과를 임금액에 반영하는 ‘승급제도’에서는 운용상의 차이가 있다.
성과주의 임금제도인 ‘역할·직무급’에서도, 능력주의 임금제도인 ‘직 능급’에서도 임금결정에 있어서 사원개개인의 능력이나 성과, 공헌도를 평가하여 그 결과를 승급(임금인상분)에 반영하여 왔다. 단지, 성과주의 임금제도와 이전의 능력주의 임금제도와의 차이점은 ‘임금표’ 상에서 평가결과에 따른 승급방식에 차이를 두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직능급’에 있어서는 ‘평가결과에 따라 누적 승급되는 방식(積上 型: 츠미아게)’이었다면, ‘역할·직무급’에서는 ‘평가결과에 따라 새롭게 승급액과 강급액이 정해지는 방식(洗替型: 아라이카에)’으로 바뀌 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능급’에서는 평가결과가 아무리 좋지 않더 라도 이전보다 임금액의 감소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지만, ‘역 할·직무급’에서는 그때그때의 평가결과에 따라 승급액이 새롭게 결정되기 때문에 이전보다 평가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에는 임금하락 (강급)도 가능해진다. 즉, ‘역할·직무급’에서는 안정적인 임금상승(승 급)의 역할이 약해진 것이다.

5. 시사점

이상에서 ‘역할·직무급’을 중심으로 일본 기업의 임금제도를 살펴보 았다.
첫째, 임금액과 처우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이 ‘직능급’의 ‘직무수행능 력’ 기준과 함께 ‘역할·직무급’의 ‘역할’과 ‘직무’ 기준이 추가되었다는 점이다. 주로 관리직을 중심으로 ‘역할·직무급’의 비중이 높으며, 비관리직에서는 ‘직능급’의 비중이 아직까지도 높다.
둘째, 평가결과에 따른 승급관리에 변화가 있다. 종래의 ‘직능급’ 임금 제도에서의 ‘평가결과에 따라 누적 승급되는 방식(積上型: 츠미아게)’ 에서, ‘역할·직무급’에서의 ‘평가결과에 따라 새롭게 승급액과 강급액이 정해지는 방식(洗替型: 아라이카에)’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역할·직무급’에서는 평가결과에 따라서 임금액이 하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셋째, 하위직과 상위직(비관리직과 관리직) 간에는 제도적으로 운영 의 차이를 두고 있다. 즉, 하위직에는 인재육성의 기간이라는 인식이 아직까지도 강하게 작용하며 ‘직능급’의 비중이 높지만 상위직으로 갈수록 ‘역할·직무급’의 비중이 높아진다.

최근 몇 년간 엔저에 따른 수출산업의 호황과 동경올림픽의 특수효 과에 힘입어 일본의 경제상황은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대다수의 기업이 고용을 늘리다보니 ‘안정적인 노동력의 확보’가 일본 기업의 가장 큰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노동공급이 부족하고 노동수요가 늘어나면 임금수준이 증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임금수준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기업 측에 임금을 인상하도록 강하게 주문하고 있으나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의 추가적인 부담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사회보장의 부문에서 사회보험금의 기업부담 금이 매년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인 인건비 부담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임금제도는 기업 구성원(종업원)들의 관리의 수단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동력을 가진 종업원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자칫 공정하지 않은 임금제도에 불만이 있다면 사기가 저하되어 기업 손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임금에 대하여 종업원들이 만족하면 사기가 향상되어 기업수익도 늘어날 것이다. 타 회사보다 높은 임금을 지급하게 되면 종업원들의 사기가 향상되겠지만, 기업 측이 지불하는 인건비 수준을 무작정 높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기업의 전 구성원 대다수가 만족하는 임금을 지불할 것인가. 결국 임금제도의 중요한 논점은 ‘정 해진 인건비의 공정한 배분방안’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