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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확산되는 #ME TOO,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2018-03-05     월간 인재경영

현직 검사로 재직 중인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1월 29일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사건을 조사하는 검사의 입장이 아니라 성추행 피해자의 입장이었다. 그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8년 전 검찰 간부로부터 성추행 당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서 검사는 이 자리에서 “검찰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하지만 피해자가 직접 나가서 얘기해야 진실성에 무게를 실어줄 수 있다고 주변에서 용기를 줬다.”고 전했다.

그녀의 용기 있는 발언은 한국 사회 곳곳에 잠재되어 있는 성차별적 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성폭력으로 상처를 받고도 ‘악’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여성들이 서서히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직 검사의 성추행 폭로, Me Too 운동 확산으로 이어져

서 검사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2010년 10월에 장례식장에 참석했는데 모 검찰 간부가 동석했다. 나는 옆자리에 앉았고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떠올리기 힘든 기억”이라며 “그 간부가 옆자리에 앉아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여러 차례 했다. 그 간부는 법무 부에 근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몸을 피하려고 노력을 했지만 대놓고 항의를 하지는 못했다. 그때는 지금과 분위기가 또 달랐다. 개인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공론화하는 것이 몸담고 있는 검찰 조직에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고, 사회적으로도 피해자에게 문제가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이후 해당 검사로부터 어떠한 연락이나 사과를 받지 못했고 오히려 2014년 사무감사에서 검찰총장 경고를 받은 뒤 2015년 원치 않는 지방 발령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사진: JTBC뉴스룸 캡쳐

이 같은 내용이 보도된 이후 대검찰청은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을 수사단장으로 한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구성하고, 검찰 조직 내에 만연해 있는 성차별, 성희롱, 성폭력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서 검사의 대학 동문인 이화여대 출신 법조인과 이대 법대·법학전문대학원 동창들은 서 검사에 대한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는 이대 법조인 일동’은 “이 사건의 본질은 성폭력 피해를 입은 현직 검사가 조직 내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인사상 불이익까지 받았음을 주장하는 사안”이라며 “검찰 조직 내에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나, 이 사건의 본질을 훼손하는 수군거림으로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2차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 조직은 그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은 조직 내의 성폭력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며 “왜 검사의 신분을 가진 피해자가 피해 발생 직후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는지, 피해자의 목소리가 조직 내에서 묻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송 직후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나도 당했다’는 의미의 ‘#Me Too(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미투 게시판을 운영하는 익명 애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는 하루 만에 100여 개의 폭로 글이 올라왔을 정도다. 회사 회식 자리에서나 업무 관련 회의 등 조직 내에서 경험한 성희롱 발언들이 주를 이뤘다. 블라인드는 회사 메일로 인증을 거친 후 사용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가입자 수는 2만 5,000여 개의 회사 130만 명 이상이다.

시민단체들도 ‘미투 운동’을 ‘위드유 운동’으로 확산시켜 이번 기회에 성희롱 관행을 근절시키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전국 50여 개 여성인권단체는 2월 1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과 도봉구 서울북부지검 등 전국 15곳의 검찰청 앞에서 동시다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손에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반(反) 성폭력 운동에 대한 지지를 상징하는 흰 장미를 들고 있었다.

문학계, 예술계도 #Me Too

미투 운동은 미국에서 촉발되었다. 배우 애슐리 쥬드가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전적을 폭로하자, 영화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Me Too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하면서 본격화됐다.

밀라노가 트위터에 캠페인을 제안하자 24시간 만에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리트윗하며 지지를 표했고, 8만여 명의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달며 자신의 성폭행 경험담을 고백했다. 지난 1월에 열린 제75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여배우들은 검은색 드레스를, 남자 배우들은 ‘Times up(때가 되었다)’이라고 적힌 배지를 차고 성희롱 문제 퇴치에 적극 나설 움직임을 보였다.

국내에서도 서 검사의 폭로 이후 문학계, 예술계 등에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김기덕 감독은 2013년 개봉한 영화 ‘뫼비우스’ 촬영장에서 출연 여배우 C 씨에게 대본에도 없는 베드신을 강요하고 폭행해 파문을 일으켰다. 연극 연출가 이자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 이윤택의 습관적 성추행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윤택은 배우 김수희, 이승비, 김지현 등 4명의 여배우들이 그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입었다고 폭로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18년 넘게 상습적으로 자신의 극단 배우들에게 안마 시중을 시키고 성추행했다고 알려졌다. 이윤택은 2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 사과했지만 성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또 한 번 피해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 이에 김지현은 자신이 배우로 활동할 당시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했고 낙태까지 했다는 사실을 밝혀 대중에게 충격을 줬다.

이윤택과 함께 밀양연극촌에서 촌장으로 활동하는 하용부도 성폭행 논란에 휩싸였으며, 연극계 대부라 불리는 오태석도 피해자들의 폭로로 인해 성추행 파문에 이름을 올렸다. 피해자는 오태석이 공연 뒤풀이에서 허벅지와 사타구니 부근을 주무르고 쓰다듬는 행위를 번갈아 했다고 주장했다. 배우 이명행 역시 과거 공연 스태프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피해자의 폭로로 알려졌으며, 유명 음악감독 변희석은 성추행 폭로글이 이어지자 자신의 SNS에 사과글을 남겼다.

배우 조민기도 청주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재임하던 중 학생들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다수의 피해자 증언을 다룬 신문은 제보한 이들이 2009~2013년에 입학한 재학·졸업생이라고 보도했다. 특히 이들은 조민기가 2010년 청주대에 부교수로 임용된 이후 그가 거주한 학교 인근 오피스텔 등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했다.

최영미 시인은 최근 발표한 풍자시 ‘괴물’을 통해 한국 문단 성폭력 문제를 비판하고 나섰다. 계간지 ‘황해문화’의 겨울 특집호에 게재된 이 시에는 노벨상 후보로 매년 거론되는 유명 작가 ‘En’이 명시되어 있다. 최 시인는 2월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 ‘괴물’의 모티브인 사람은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벌였다. 심지어 문학계에는 이러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고 밝혔다.

미투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대중의 관심과 참여도 높아지고 있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미투 운동에 대한 국민 여론 조사 결과, 지지하는 의견은 74.8%, 반대한다는 의견은 13.1%로 나타났다. 의견 중 ‘적극 지지’가 54.8%로 전체의 절반을 넘었다. 연령별로는 40대에서 90.1%의 지지를 보내 압도적 다수가 미투 운동을 지지했다. 30대는 82.2%, 50 대는 74.4%, 20대는 73.9%의 지지를 보내 10명 중 7~8명이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여론을 반영하듯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이윤택 등의 구속 수사를 요구하는 청원, 성폭력 공소시효 폐지 청원, 사실적시시 명예훼손죄 폐지 청원 등의 국민청원이 등록됐다. 특히 초·중·고등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은 20만 명넘는 지지를 받았다. 청와대는 국민청원게시판을 열면서 20만 명 넘는 청원에 대해서는 관계부처의 공식 답변을 내놓겠다고 약속한 바있다. 이에 따라 청와대는 이번 청원에 대해서도 답변 준비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