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와쿠오 가케루나!(폐 끼치지 마라!)

2018-07-01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창가냐, 통로냐?

야호~! 여름이다. 무더위 시작과 더불어 휴가철이 시작된다. 요즘엔 휴가하면 국내보단 해외를 더 많이 떠올린다. 한국관광공사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한 해 내국인 출국자 수는 무려 2,649만 명을 기록했다. 국민 절반이 1년에 한 번은 해외로 나갔다는 수치다.
일과 삶의 균형을 지칭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사회 화두가 되면서 실제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내국인들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금년엔 출국자 수가 3,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국민이 해외로 나갈라 치면 거의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의식 (?)이 하나 있다. 바로 ‘비행기 예약’이다. 살고 있는 이곳을 가리켜 ‘한 반도’라 칭하지만, 실제는 ‘섬나라’인 탓이다. 이 땅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대륙으로 나아가는 육로가 막혀있으니 바다를 건너야 한다. 바다는 대한민국이 외국과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다.
그런 까닭에 해외로 나아가는 교통수단은 딱 둘 밖에 없다. 하나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항구에서 배를 타야한다. 다른 나라처럼 철도나 버스, 자가용을 타고 가는 해외여행은 언감생심이다.그러고 보면 매번 우리가 ‘섬나라 근성을 가진 나라’ 운운하며 폄하하는 일본과 딱히 다를 게 없다. 정작 안타까운 건 해외로 나가면서 어째서 비행기를 타야하는지 이젠 그런 의문조차 떠올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김광희,『미친 발상법』에서) 그대는 직장 근무 십 수 년 만에 2주간의 어마어마한 포상 휴가를 받았다. 그동안 가고 싶어도 일정상 쉽게 갈 수 없었던 유럽 6개국 10박 12일 여행에 나서기로 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독일 프랑 크푸르트까지 꼬박 11시간 30분을 날아가야 한다. 길고 지루한 시간이다.
탑승할 항공사와 기종 선택, 그 가운데 뭣보다 중요한 건 바로 ‘좌석 선택’이다. 특히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비행이 불가피하다면 좌석 선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중대사다. 세 명이 앉는 배열의 중간 좌석에서 받들어 총 자세를 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 라. 그건 악몽이다. 그래서 묻는다. 장거리 여행을 눈앞에 둔 그대에게 아래처럼 세 종류의 좌석 선택권이 주어졌다.

① 창가 쪽 좌석(window seat)
② 통로 쪽 좌석(aisle seat)
③ 비상구 열 좌석(emergency exit seat)
자, 어느 좌석을 고르겠는가? 신중에 신중을 기해 결정해보라.

 

명당 좌석은 여기?

필시 그대는 ③번 ‘비상구 열 좌석’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잘 안다. 어떤 위치의 기내 좌석이건 장단점이 존재하지만, 분명 ‘명 당’이라고 불리며 승객들로부터 선호되는 좌석은 있다. 그게 바로 비상구 열 좌석이다.
이곳은 앞 공간이 넓어 발을 뻗기도 편하고 화장실을 가거나 이동할 때도 옆 사람에게 신세질 일이 없다. 다만 이 좌석에 앉기 위해선 ‘15 세 이상에다 신체 건강하고 영어 가능’이라는 전제조건을 충족할 수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그대는 조건 가운데 딱 한 가지 영어 소통능력이 절대 부족해 비상구 열 좌석에 앉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 ①번 창가와 ②번 통로 좌석 가운데 어느 한 쪽을 고를 수밖에 없다. 이미 충분히 숙지하고 있을 테지만, 선택의 편의를 위해 두 좌석의 장단점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보자.

먼저 ‘창가 쪽 좌석’이다. 비행기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상공에서 펼쳐지는 멋진 풍경 감상이다. 그러자면 창가 쪽 좌석에 앉는 게 상책이다. 게다가 깊은 잠에 곯아 떨어져도 아무도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이게 다가 아니다. 애리조나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창가 쪽승객이 통로 쪽 승객보다 기내의 각종 병균에 감염될 가능성이 낮다고 한다. 이처럼 창가 쪽 좌석엔 장점이 많다. 반면에 화장실을 가거나 이동할 시엔 옆 좌석 승객의 양해를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단점이 라면 가장 큰 단점이다. 경우에 따라선 약간 추울 수도 있다.
다음으로 ‘통로 쪽 좌석’이다. 통로 좌우에 위치한 곳으로 화장실을 가거나 이동할 때는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어 심적으로 매우 여유 롭다. 다만, 승무원을 시작으로 다양한 승객이 수시로 오가면서 좀 시끄럽고 옷깃이 스치는 등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두 좌석에 관해 충분한 설명이 됐다고 생각된다. 이제 그대는 둘 가운데 어느 좌석을 선택하겠는가? 그래도 역시 비행기 좌석은 창가 쪽이라고?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Expedia)가 조사한 비행(Flight)에 관한 국가별 의식(패턴) 비교를 보면 자못 흥미롭다. 어쩌면 타인의 여행을 엿보는 일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 조사는 2018년 2 월 22일~3월 19일에 걸쳐 이뤄진 온라인 설문조사다. 그 대상은 1년 이내에 비행기를 이용한 적이 있는 사람으로 무려 23개국 남녀 1만 8,229명이 응답했다. 이들에게도 ‘창가 쪽 좌석’과 ‘통로 쪽 좌석’ 가운데 어느 걸 선호하느 냐는 질문이 던져졌다. 국가별로 과연 어떤 대답이 나왔을까?
흥미롭게도 딱 1개국을 제외한 나머지 22개국 승객들은 통로 쪽 좌석 보다는 창가 쪽 좌석을 선호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모두의 예상대로 다. 헌데 ‘통로 쪽 좌석’을 선호한다고 답한 유일한 국가는 어디였을 까? 혹시 대한민국이 아니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인의 60%는 창가 쪽 좌석을 선호했다. 그럼, 한 덩치의 미국인? 그들도 40%만이 통로 쪽 좌석을 선호했다. 실은 그 나라가 바로 ‘일본’이었다. 통로 쪽 좌석을 선호한 일본인의 비율은 과반수에 달한 53%로 당당 1위였다.([그림 1] 참조) 일본인의 특이 심리를 파헤칠 수 있는 장면이다.

 

제발 폐 끼치지 마!

그럼 왜 일본인은 통로 쪽 좌석을 더 좋아하는 걸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선 창가 쪽 좌석의 단점을 다시 한 번 복기해보자.
장거리 여행 시 누구건 한 번쯤은 화장실을 가거나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통로로 나가게 된다. 그럴 경우 옆 좌석 승객에게 (나갈 수 있게 좀 비켜달라는) 양해를 구하고서 통로로 나가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창가 쪽 좌석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일본인은 어려서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 하나 있다. 아마 많은 한국인이 들어본 것이다.

“人に迷惑を掛けるな.”

즉, 남에게 폐(迷惑)를 끼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워낙 이 말이 강조 되다 보니 행동은 물론, 사적인 의사나 주장을 드러내는 것마저 남에게 폐를 끼치는 걸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일본 사회에는 존재한다. 한마디로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해선 안 된다는 가정과 학교 교육이 성인이 돼서도 일상에서 고스란히 표출되곤 한다.
아무튼 상대방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하거나 뭔가를 부탁해야 하는 상황, 이른바 민폐 끼치는 행위를 일본인은 꺼려하고 조심스러워 한다.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자신이 이동할 때마다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는 상황은 일본인에게 부담과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인의 통로 쪽 좌석 선호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일본인이 가진 민폐 의식에 대해 조금 더 짚어본다. 지난 2015년에 터진 ‘유카와 하루나’ 사건! 이슬람국가(IS)는 일본인 유카와 하루나를 인질로 잡곤 72시간 내에 2억 달러를 내놓으라는 협박을 일본 정부에 해왔다. 일본 정부가 이에 응하지 않자 인질을 무참히 살해한 다음 그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온오프라인에 ‘정부 (대통령)가 정말 무능했다’라거나 ‘책임자 처벌하고 손해 배상하라’고 소란(촛불 집회)을 떨었을 법한 상황이다. 그런데 하루나의 아버지는 언론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큰 폐를 끼쳤다. 정말 죄송하다. 정부와 전력을 쏟은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아들을 잃어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 속에서도 마치 가족이 잘못한 것처럼 고개 숙여 사죄했다. 즉, 아들 문제로 일본 국민들의 심기를 불편 하게 만드는 폐를 끼쳤으니 죄송하다는 거다. 아무튼 우리와는 사뭇 다른 감각이요 표현이다.
한편, 창가나 중간 좌석을 배정 받았는데 화장실 등을 가기 위해 불가 피하게 통로로 나가야 하는 경우 일본인의 행동은 이랬다.

◇ 자는 사람을 등지고서 넘어 나온다 38%
◇ 자는 사람을 깨워 (비켜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24%
◇ 그 사람이 깰 때까지 기다린다 20%
◇ 자는 사람을 마주 보며 넘어간다 19%

이처럼 일본인의 80% 가량이 중간이나 통로 쪽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깨지 않도록 극도로 신경을 쓰면서 출입한다는 얘기다. 특히 “자고 있는 승객을 깨워(비켜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는 비율이 가장 낮은 국가가 바로 일본이었다. 친구와 가족, 연인과 나란히 앉아갈 수있도록 이웃 승객과 자리 협상을 한 적이 있다는 사람의 비율도 일본이 최하위였다. 성격이 내성적이거나 모나서 그런 게 아니라,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상대에 대한 배려 의식이 작용한 결과다.
이상과 같은 익스피디아의 조사 결과는 일본인의 민폐 의식이 기내 좌석 선택과 행동에도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늘날 일본인의 이런 의식은 구성원 간의 갈등 지수를 최대한 줄여 불필 요한 거래비용(사회적 비용)을 낮추고 성숙한 사회통합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역발상 전략!

이왕 비행기 좌석 얘기가 나온 김에 아주 기발한 좌석 선택의 팁 하나를 알려줄까 한다. 주목해 읽어 보길 바란다.
홀로 장시간 유럽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비행기 좌석은 3-4-3 배열의 기종이었다. 그대가 선호하는 창가 쪽 좌석이나 비상구 열 좌석은 이미 다 찬 상태다. 남은 건 모두 통로 쪽과 그 외 좌석뿐이다. 그래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대는 어느 쪽을 골라야 편안한 출장길이 될까?

① □□■(통로)□□□□(통로)□□□
② □□□(통로)■□□□(통로)□□□

정답은 ②번이다. 어째서 그럴까?
①번을 선택하는 경우, 그 열 창가에 사람이 앉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또 창가와 중간 좌석이 모두 찼을 경우, 승객 두 명이 통로로 나올때 마다 자리에서 일어서거나 몸을 움츠려 길을 터주어야 한다. 하지만 ②번의 경우엔 그대에게 양해를 구하고서 화장실로 향하는 승객은 설령 만석이라 할지라도 오로지 한 명뿐이다. 이처럼 통로 쪽 좌석이라 할지라도 창가로 이어지는 통로 쪽과 양쪽에 통로를 낀 통로 쪽 좌석의 조건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또 다른 질문을 하나 더 던지고 글을 맺는다. 그대는 아내와 오랜 만에 장거리 여행길에 올랐다. 다음 네 가지 좌석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해야 안락한 여행이 될까?
예시가 비슷비슷한 배열이라 선택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역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아래 네 가지 배열 가운데 부부 좌석으론 적절치 않아 가장 먼저 제외시켜야 할 것은?

① ■■□(통로)□□□□(통로)□□□
② □□□(통로)■■□□(통로)□□□

③ □□□(통로)□□□□(통로)■■□
④ □□□(통로)■□□■(통로)□□□


좀 까다로운 질문인가? 물론 아닐 게다. 그 까닭은 큰 고민 없이 응답자 모두 ④번을 선택한 때문이다. 부부가 여행을 가면서 통상 ④번과 같은 조합의 배열을 선택할리 만무해서다.
그럼 가장 이상적인 좌석 배열은 몇 번일까? 평소 창가 쪽을 원했다면 ①번을 골랐을 테고, 오가기 편한 쪽을 원했다면 ②번이나 ③번 좌석을 선택했을 게다.
근데 이건 아는가? 그런 상식적인 선택이라면 필자는 굳이 위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실은 부부가 선택해야 할 가장 이상적인 배열은, 맨 먼저 선택지에서 제외시킨 ④번이다. 즉, 중간에 위치한 네 좌석 가운데 통로 쪽 두 좌석이다.
헐~ 무더위로 머리가 좀 이상해진 게 아니냐고? 부부가 오랜 만에 장거리 여행길에 올랐는데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맨날 붙어 다녔으니 비행기 안에서만큼은 서로 떨어져 자유를 만끽하겠다고? 이별 여행 이라도 할 셈인가! 그런 의문과 푸념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허나 그런 배열을 선택해야 하는 데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어서 다. 앞서 살펴봤듯 비상구 열 좌석이 불가하다면 많은 사람이 창가 쪽좌석 혹은 통로 쪽 좌석을 희망한다. 때문에 가운데 좌석은 마지막까지 잘 채워지지 않는다.
가령 비행기가 만석이 아니라면, 가운데 두 좌석이 빌 가능성이 높아 4인분 좌석을 부부 둘이서 차지할 수도 있다. 옆으로 두 다리 쭉 뻗고 누워 여행할 수 있다. “저 두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봐!”라거나 “어쩜 저럴 수가!”라며 비행 내내 주변 사람의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다.
만에 하나 비행기 만석으로 중간 좌석을 선택한 승객이 다가온다면 부부 둘 가운데 한 명이 그 사람에 통로 쪽 자리를 양보하는 선택지도 있다. 그 승객도 통로 쪽 좌석이라면 내심 희색을 띄며 흔쾌히 받아들일 게다.
프랑스 사상가 사르트르는 읊었다. “삶은 B와 D 사이의 C다.” 즉, 태어 나서(Birth) 죽음(Death)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한시도 선택(Choice)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경구다. 필자는 그런 C가 ‘창의적 선택(Creative Choice)’이라면 더없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