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혁명적 변화에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2018-08-30     이승철 이노파이안(주) 대표

경기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4차 산업혁명이 새로운 패러 다임으로 부상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인공지능(혹은 인공신경망)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기계(Machine)의 엄청난 능력에 기대어 인간의 두뇌로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감이나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인공지능의 도입을 검토하거나 준비하고자 하는 경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인공지능 모델이 기본적으로 인간의 인지적 모델을 모방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 인공지능(혹은 기계 학습) 분야의 유망한 기술 중의 하나인 딥 러닝(Deep Learning)은 인간이 학습하는 인지 구조를 본떠 기계적으로 학습을 수행하는 신경망을 구현하는 방법이다.

경영학과 인지과학 분야의 대가인 사이먼(Herbert Simon) 교수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이라는 인간 이성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는데, 이는 완전한 합리성의 가정에 갇혀있던 학문들의 이론적 지평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행위자)은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하여 모호한 목표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목표에 대한 대안들을 완벽히 평가하지 못한다. 따라서 인간은 ‘만족과 희생(Satisficing)’을 병행하는 탐색(Search)의 과정을 거쳐 대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탐색은 반복을 통해 규칙화(Rules/Routines)된다(이무원, 2015).

인공지능이 구현하는 알고리즘은 탐색의 반복을 통해 규칙화된 과정을 기계적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인지 모델을 알고리즘으로 구현하는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최적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구심을 갖는 것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관련 기술이 비약 적으로 발전하여 인간의 인지적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 도래할 때까지 투자를 유보하기 보다는, 기업들은 성공에 대한 확신은 차치 하고라도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선제적 투자의 필요성에 대해 전반적으로 동의하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수준에서는 인간의 인지능력과 인공지능이 유사한 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인공지능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통하여 인간의 많은 활동을 대체하도록 하는 유인은 무엇일까?

현재 수준에서는 인공지능 모형이 인간의 인지적 과정과 유사하다는 점에 동의할지라도,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인공지능과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통제 가능 여부이다.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도입할 경우 기계의 연산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수집된 데이터의 마이닝, 지속적인 연산 알고리즘의 개선 등을 통하여 제거될 수 있고, 또한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업의 인간의 동기에 대한 통제는 굳이 철학적인 논의나 윤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더라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완전한 합리성에 대한 가정과 달리 인간의 동기는 매우 다양하고 그작동 메커니즘이 복잡하며, 다양한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집단 수준에서는 목표의 일치나 합의된 의사결정의 도출이 집단 역학이나 조직의 정치의 개입으로 인하여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들이 일하는 인간들의 집합, 즉 ‘조직 (Organization)’보다는 인공지능에 대한 투자를 선호하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일 수 있다.

인간의 활동은 데이터, 예측, 판단, 행동, 결과의 다섯 가지로 단순 화할 수 있는데, 현재 개발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본질은 예측 기술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이 가진 예측 기술의 가치는 전반적으로 하락할 것이지만, 인간이 지닌 판단력의 가치는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측된다(Ajay Agrawal, Joshua Gans, Avi Goldfarb, 2016). 알리바바 그룹의 마윈(馬雲) 회장은 “인공지능은 인류의 대체재가 아닌 협력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인공지능과 인간의 노동은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이며, 기업이 인공지능의 도입과 활용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적자원과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의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들이 인공지능의 도입을 통하여 추구하는 경쟁우위는 다름아닌 환경 변화에 대한 유연하면서도 신속한 대응 능력인데, 최근 주목 받는 ‘애자일(Agile)조직’ 역시 기업들이 직면한 효율성과 유연 성의 균형 추구라는 점에서 동일한 지향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애자일은 마이크로소프트가 프로그램 개발 조직의 운영 기법으로 개발하여 IE3의 개발에 최초로 적용한 방식이다.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등장한 애자일이 다양한 산업 분야의 조직운영 원리로 확산된 이유는 애자일이 기업들의 오랜 고민거리인 유연성과 효율성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애자일이 글로벌 기업들의 조직운영 원리로 소개 되면서 많은 국내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애자일 조직이란 조직 구조적 관점에서 정의되는 특이한 형태의 조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까지 논의된 다양한 차원의 조직 혁신을 총망라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회사 목표의 지속적인 Rolling Forecasting, 신속한 의사결정에 적합한 조직구조, 조직 내 협업의 활성화, 위계적 문화를 탈피하기 위한 리더십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요구, 인력 운영의 유연성 등 기존의 혁신을 현실 적으로 구현하고 운영하는 매뉴얼 혹은 노하우에 가깝다.

모든 기업은 기본적으로 협업 조직이다. 전통적인 위계적 조직 또한 이전의 수공업시대에서 대량생산 방식으로 생산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인 협업의 방식으로 출현하였던 것이다. 즉 현대적 기업에서 협업은 위계적 조직 구조와 이를 뒷받침 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도래에 따라 기업들은 기존의 협업 방식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였으며, 따라서 조직 내외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어떻게 협업하고 소통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단초를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애자일 조직의 여러가지 혁신들은 이미 전통적 기업조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지난 세기 말부터 시도되어 온 노력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간과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은 무엇일까?

자포스(Zappos.com)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중요한 점은 직급, 절차 등 형식과 구조에 매몰되지 않고 조직이 직원들의 ‘자율 의사결정 절차를 통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핵심은 바로 ‘자율성(Autonomy)’이며, 자포스의 조직을 ‘홀라크라시(Holacracy: 보스 없는 조직체제)’라고 부르는 이유도 혁신의 핵심이 바로 직원 들의 자율성에 기반한 자발적 참여라는 사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율성의 이슈가 중요하다는 점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의 연구를 통해서도 실증적으로 확인되었다. 국내 대기업과 국내 진출한 글로벌 기업의 지사 등을 포함한 17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를 통해서 혁신은 회사 주도의 활동보다는 개인의 직무 자율성이 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유연근무제, 스마트 오피스의 도입 등과 같은 ‘일 하는 방식의 혁신’에 있어서 회사 주도의 개입(ICT 도입과 지원)보다는 직원들의 직무 자율성이 혁신의 성공에 기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기업에 조직혁신이 실패했던 맥락에 비추어 애자일 조직의 도입과정을 간단히 예측해 보자. 기업에서 대부분의 혁신들은 외부의 자극에서 비롯되는데, 애자일의 도입 역시 주로 회사의 최고 경영 층의 지시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의 대표가 외부의 CEO 조찬모임에서 애자일 조직에 대한 사례발표를 듣고 감명한 대표가 이를 자기 회사에 도입하기 위하여 실무자를 불러서 검토 및도입방안 마련을 지시하면서 시작된다. 이처럼 CEO의 지시에 의해서 시작된 혁신은 신경망 모델에서 외부 인풋이 특정 채널에 집중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수용범위의 문제). 이러한 지시에 따라 실무진은 내부 실행과정에서 불충분한 정보의 보완을 위해서 다양한 외부채널을 통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가장 보편적인 행태가 애자일 조직 도입을 위하여 외부 전문가 조직으로부터 컨 설팅을 받는 것이다). 이 과정에 잠재한 가장 큰 위험은 정보 편재 (Bias), 정보 비대칭(CEO vs. 실무진, 혁신 TFT vs. 일반 조직 직원 등), 의도적 정보 왜곡 가능성 등이며, 이에 기인한 최초 기대한 결과와 실제 Output의 불일치를 은폐하기 위한 추가적 기망 행위들이 표출될 위험이 존재한다.

위험들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지 못할 경우 혁신과 관련된 외부의 정보가 내부적으로 처리되는 과정이 전형적으로 위계적 조직구조의 선형적 지식 재생산과정에 의존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계층형 인공지능망에서 퍼셉트론 학습법(Perceptron Learning Rule)과 같이 오차 수정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조직학습 프로세스에서 탐험이 지나치게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우 새로운 지식요소의 도입에 다양성이 기여할 여지를 좁히고, 직원들이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는데 있어서 경직된 태도를 낳기 쉽다. 이러한 경직성은 결국 새로운 지식이 조직 내 기존의 지식과 통합되면서 창의성이 발현될 여지를 감소시키며, 조직 내 새로운 루틴의 발현을 저해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애자일 조직의 도입이라는 혁신이 기존의 위계적 조직 특성을 강화하는 모순적 악순환을 창출한다. 이처럼 기업들이 구성원의 직무 자율성을 외면한 채 구조적 측면이나 제도적인 측면에서만 혁신을 추구한다면 위계적 조직문화를 확대 재생산하거나 기망적(deceptive) 위계적 조직의 변종을 낳을 위험이 커진다.

협업을 통한 성과 향상을 위하여 기업들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다른 한가지 요인은 분권화이다. 분권화된 조직은 외부 환경에 대한 적응성과 유연성의 측면에서 장점이 있으며, 조직 민주화의 관점에서 볼 때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집권적 조직에 비해 잘 보장할 수 있다. 다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비용이 상승할 위험이나 목표의 일치를 이루기 어려운 단점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탈중심화 된 구조에서 구성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와 신뢰 구축에서 구성원들을 집결하는 아교(Glue)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중요한 요인인 개인의 정서지능 (EI: Emotional Intelligence)을 잘 활용하는 것이다

앞서 진행한 저자의 연구에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지식 네트워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특정한 역할이 중요한데, 기업 내 지식 확대 재생산 과정에서 직원 개개인이 수행하는 역할은 개인의 정서지능에 따라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기업 내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에서 개인이 수행하는 역할은 [그림 2]와 같이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수 있는데, 여기서 정보의 수용과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브로커는 정서 지능에 있어서 다른 직원들과 구별되는 점이 발견 되었다. 이들은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대응하는 능력(OthersEmotion Appraisal Emotional Intelligence)이 높은 사람들로서, 이들이 기업의 조직학습 프로세스에서 지식 탐험과 활용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정서지능은 면대면 상황에서만 중요 하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조직과 같은 비면대면 상황에서도 개인의 역할 행동을 구분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ICT의 활용도가 확산되는 기업 환경을 고려할 경우 이에 대한 기업의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

결국 기업의 인공지능 활용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오프라인 조직에서의 조직 운영이 변화되어야 하며, 오프라인 조직의 운영이 혁신적인 기업들만이 인공지능의 도입을 통해서 조직의 효율 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무원, “조직학습이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인사조직연구], 2015.
*Ajay Agrawal, Joshua Gans, Avi Goldfarb, “The Simple Economics of Machine Intelligence,” HBR , November 17,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