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로 엿보는 초고령사회

글로벌 리포트 - 일본

2018-10-29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연상 여인이 / 내 취향이었건만 / 이제는 없어.”
“일어섰는데 / 이유가 생각 안나 / 다시 앉았다.”
“구십 넘겨도 / 신경 쓰이는 것은 / 중국산이네.”

좋아서 나이든 게 아니다!

답해보라. 대한민국이 당면(할)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두 가지만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답한다. 첫째는 저출산, 둘째는 고령화라고. 이 둘은 우리 사회가 직면하게 될 모든 문제의 출발점이 될 게 틀림없다. 본 칼럼에선 ‘고령화’에 초점을 맞춰 얘기를 진행한다.

근래 참 많이 들어본 개념 정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1% 이상이면 초(超)고령 사회로 정의한다. 일본은 이미 국민 4분의 1 이상이 노인 인구인 초고령 사회에 들어섰다. 평균 수명 83.8세에다 1억 2,671만 명의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3,514만 명이나 된다.

일본만 그런 게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외국인 포함)는 금년 7월 1일 기준으로 5,163만 5,000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가 738만 1,000명 으로 전체의 14.3%를 차지했다. 고령사회를 넘어 이제 초고령 사회의 길목에 서 있다는 뜻이다. 오는 2060년엔 전체 인구의 41%가 65 세 이상 고령자로 채워질 거라는 통계청 전망은 한마디로 악몽이다.

초고령 사회는 또 다른 문화도 양산하고 있다. 일본에서 만화(漫畫)는 그간 문화를 지탱하는 큰 골격의 일부로 평가받아 왔다. 최근 이런 만화에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다. 그 대표 격이 바로 「팔순 마리코(傘寿まり子)」라는 만화책인데, 그 주인공은 80세 여성이다. 주거 문제로 소외감을 느낀 그녀는 4대가 동거해오던 비좁은 집을 탈출 해 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PC방에서 잠을 청하기도 하고 젊은 시절 동경했던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위 책은 지난 2016년 중순에 발간돼 현재까지 시리즈 7권이 나왔다. 누계 발행부 수도 30만 권을 넘어섰다. 시리즈 1권에 등장하는 마리코 할머니의 독백은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우리가 좋아서 나이든 건 아니지만, 좋아서 장수하는 건 사실일지도.”

지금까지 만화는 스포츠를 시작으로 요리, 전쟁, 역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소재를 다뤄왔다. 그 속에 등장하는 고령자는 언제나 조연 으로 사랑받는 할머니와 간호가 필요한 나약한 노인 혹은 존경받는 성인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팔순 마리코」에선 새로운 인생을 구가하고 모험에 적극 도전하는 고령자상이 그려지면서 중장 년층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는? 다름 아닌 ‘?’만 적은 프랑스 작가 ‘빅 토르 위고’의 편지다. 자신이 출간한 책이 잘 팔리고 있는지 궁금해 출판사에 그렇게 물은 거다. 이에 출판사 담당자는 ‘!’만 적어 답장을 해왔다. 책이 잘 팔리고 있다는 담당자의 재치 있는 답변이었다. 그럼 또 하나 물어보자.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詩)라면? 일본 문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바로 답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난해한 물음이다. 정답은 ‘하이쿠(俳句)’와 ‘센류(川柳)’다.

전통적 시 형식인 하이쿠에서 파생된 센류는 5·7·5의 3구 17음으로 이뤄진 단시(短詩)로 세상사를 풍자하고 해학과 익살, 애환이 가득한 게 그 특징이다. 하이쿠가 문어체라면 센류는 구어체가 일반 적이다. 뭣보다 계절언어(季語)가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하이쿠와 달리 센류는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이다. 톡톡 튀면서 감칠맛마저 흐른다. 그런 까닭에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공모나 콘테스트가 수시로 이뤄지고 인터넷을 포함 각종 매체에 그내용이 소개된다. 한마디로 일상에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짓는 짤막한 시가 센류인데, 그 시가 촌철살인의 유머로 넘쳐난다.

글 첫머리에 소개한 세 개의 작품이 바로 센류다. 맨 위 것은, 오사 카의 한 상점가에 전시된 것으로 ‘실버 센류’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이다. 이 센류를 쓴 야마다 요우(山田橫)는 그 나이가 92세라고 한다. 100세에 가까운 나이가 되다보니 아무리 고령사회라고 해도 이제 자신의 취향인 연상(年上)의 여인을 만나 연애하기 어렵다는 걸한탄하면서도 정겹게 표현해 절로 미소 짓게 한다.

두 번째 작품은, 두 손을 바닥에다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는데 정작 자신이 왜 일어났는지 그 까닭이 떠오르지 않는다. 일어서 는데 정력을 쏟다보니 일어선 이유를 그만 까먹어버린 거다. 냉장고 문은 열었는데 자신이 뭘 꺼내려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 이다. 그래 할 수 없이 털썩 다시 앉았다는, 깜빡깜빡하는 자신을 노골적으로 풍자할 만큼 시크하기도 한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여전한 불신감을 재치 있게 그려주고 있다. 더 이상 건강을 따지지 않아도 될 나이(?)인 90을 넘어서도 중국산인지 여부를 따지게 되는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나이가 들면 들수록 건강에 더욱 신경이 쓰인다는 얘기를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 센류는 모두 60대 이상 고령자들의 작품이다. 일본 내에서 개최 되는 각종 센류 공모에 고령자의 응모 비율이 나날이 늘고 있다. 이또한 초고령 사회가 파생시킨 새로운 문화요 트렌드라 하겠다.

웃고 있어도 눈물 나는 이유

올해 9월 ‘경로의 날’을 맞아 ‘전국유료노인홈협회’는 ‘실버 센류 입선작’ 20작품을 발표했다. 참고로 이 협회는 지난 2001년부터 매년 실버 센류를 공모해 오고 있으며 이번이 18회째로 입선작은 매년 일본 국내에 큰 화제를 뿌린다. 여기엔 총 7,872작품이 출품되었는 데, 응모자의 평균 나이는 무려 69.2세였으며 그 가운데는 105세 여성도 포함돼 있었다.

일본말과 문화, 역사, 트렌드 등을 잘 관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센류를 통해 큰 웃음과 감동, 애환을 느낄 수 있다. 허나 센류를 우리말 5·7·5의 3구 17음으로 억지(?) 번역을 하면 그 순간 본연의 맛이 사라진다. 그럼에도 20개 입선작 가운데 그 느낌을 일정 부분 공유할 수 있는 10개 작품을 골라 우리말로 바꿨다.

“납득 때까지 / 몇 번이고 반복해 / 혈압을 잰다.” (69세 여성)

“맛이 좋았다 / 무엇을 먹었는지 / 잊었다마는.” (52세 여성)

“아침 일어나 / 몸 컨디션 좋으니 / 병원에 간다.” (77세 남성)

“고희(古稀)를 지나 / 거울 속에 비치는 / 엄마의 모습.” (76세 여성)

“서서 신발을 / 신는 것이야 말로 / 초(超)고난이도.” (56세 여성)

“‘그만두었다’ / 검사만 받다보니 / 병만 늘었네.” (85세 여성)

“벤츠 타다가 / 바꾸어 탄 차량은 / 휠체어였지.” (65세 여성)

“가사 도우미 / 방문하기 이전에 / 청소를 한다.” (82세 여성)

“과거 무종교 / 현재 모든 것들을 / 신에게 의지.” (72세 남성)

“보폭이 줄어 / 걸음 수가 늘어난 / 만보기 숫자.” (77세 여성)

필자의 능력 문제로 원작의 미묘한 감정을 그대로 살리진 못했다. 그럼에도 초고령 사회의 주역들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익살과 풍자)는 충분히 공감했으리라 믿는다. 그 가운덴 생생한 현실감 혹은 현장감 때문에 읽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작품도 눈에 띈다. 고령자의 체념과 냉소도 함께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맨 위 작품을 보자. “납득 때까지 / 몇 번이고 반복해 / 혈압을 잰다.” 조금씩 나이 들면서 가장 먼저 찾아오는 몸의 변화 라면 고혈압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65세 이상 연령대가 앓는 질병 가운데 가장 많은 게 고혈압이다. 이런 고혈압은 자각증상이 없다 보니 그냥 방치하는 경우도 많아 침묵의 살인자로도 불린다. 알다시피 스트레스나 몸의 움직임, 기온 등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게 혈압이다. 그러다보니 수치의 오르내림이 심해 혈압을 잴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온다. 이 작품은 정상수치에 이를 때까지 몇 번이고 재면서 자신의 몸 상태가 온전하다는 걸 확인하고자 발버둥치는 고령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잘 대변해 준다.

하나 더 보자. 맨 아래 센류다. “보폭이 줄어 / 걸음 수가 늘어난 / 만보기 숫자.” 젊은 시절엔 정말 많이 걸은 것 같은데도 만보기 숫자는 만 단위를 쉽게 뛰어넘지 못했다. 허나 이젠 조금만 걸은 것같은데도 만보가 찍혀 나온다. 이유는 안다. 걸음 폭이 작다보니 과거와 동일한 거리임에도 발걸음 횟수가 많아서 그렇다. 나이 들었음을 만보기 하나로도 확인할 수 있어 마음이 짠하다.

후반기 삶을 읽다

우울한 분위기에 대한 최고의 처방전은, 자신의 삶을 엉뚱하게 뒤집어 반전을 꾀하는 풍자와 유머가 아닐까! 센류가 바로 그렇다. 그런 센류엔 하나같이 인생 후반기에서 직면하는 리얼리티를 고스 란히 담고 있어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도 또한 많다. 이왕 시작한 김에 과거 입선한 것 가운데 몇 작품을 더 골라 소개한다.

“우리 인생도 / 야구도 마지막은 / 역시 홈일세.”

“아직 고희냐 / 올해 미수(米壽)인 형이 / 툭 던져온다.”

“안경 쓰고서 / 안경 어디 있냐고 / 아내를 본다.”

“코골이 보다 / 고요함 쪽이 훨씬 / 신경 쓰인다.”

“백화점 가서 / 물건 고르기보단 / 의자 봐두기.”

“만보기 달고 / 돌아오는 길에는 / 택시 불렀네.”

“내용보다는 / 글씨 크기에 맞춰 / 선택하는 책.”

“‘연명은 불요’ / 유언을 남기고는 / 병원 출퇴근.”

“삶의 보람은 / 뭔가 하고 물으면 / ‘살아가는 것’”

“마지막 날은 / 언제든지 좋지만 / 오늘은 싫어.”

“혈압, 만보기, 망각, 고희, 미수, 휠체어, 건강검진, 병원, 의자, 가사 도우미, 활자(책), 연명, 유언, 삶의 보람, 마지막 날!” 고령자가 쓴 센류의 주요 소재다. 이들 소재를 통해서도 조만간 맞 이하게 될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대응책(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겠다. 고령인구의 급속한 증가는 필연적으로 사회 의료와 복지 문제로 귀결될 게 분명하다. 더해 주거와 가족제도 등을 포함한 사회구 조의 변화도 예측된다.

젊은 한 시절 돈도 벌고 권력도 쟁취하고 명예까지 누려보겠다며 노심초사하던 나날들! 입신양명의 꿈도 어느 순간 나이와 함께 병원 문턱을 수시로 들락거리며 후반기 삶은 누구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조금씩 깨닫는다. 어디 일본 사람들이라고 우리네와 크게 다르겠는가.

현재 일본의 경험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가까운 미래 우리사회가 예외 없이 직면하게 될 문제들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 화가 진행되는 대한민국은 앞으로 고령자 진료비 증가와 건강보험 재정 부담 등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될 게다. 각종 사회보장 제도가 일본에 여러모로 뒤쳐진 우리에게 초고령 사회는 저출산과 더불어 핵폭탄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

2060년부터는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연금을 타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제대로 받아보기도 전에 고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 출생아수는 감소했지만, 1회용 기저귀 사용량은 늘었다. 고령 인구의 급증이 원인이다. 그래도 아직 일본보단 낫다. 그 까닭은 우리가 일본 대비 고령화에선 후발주자여서다. 어떡하든 선발주자 일본의 경험을 배우고 모방해 최적의 방향성을 도출하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정부나 사회, 기업은 일본의 움직임에서 한시도 눈을 떼어선 안 된다. 고령자의 ‘건강’을 주제로 한 센류 작품 하나로 끝맺음을 대신한다.

“더 많이 걷고 / 항상 미소 지으며 / 식사는 8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