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 팀장이 더 위험하다
신경수의 인싸이트
호기심
구글의 인재채용 방식은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해마다 기괴하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이유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특별한 인재를 채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서인데, 이런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2004년 미국 101번 고속도로 실리콘밸리 구간에 이상한 옥외광고판 하나가 설치됐다. 광고판에는 ‘{e의 첫 10자리 소수}.com’이라고 적힌,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문구 하나가 적혀 있었는데, 광고판 하단에는 ‘7427466391.com’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 사이트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람들이 인터넷 주소창에 주소를 입력해 보았다. 그러자 화면에 새로운 방정식 문제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방정식을 풀기 위해 아이디 패스워드를 만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 중에 어떤 이는 방정식을 푸는데 성공을 했고, 어떤 이는 풀다가 도중에 그만두고 사이트를 나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방정식에 대한 풀이는 여기서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궁금증을 참지 못해 사이트를 방문하고 방정식을 풀기 시작한 오지랖 넓은 사람들, 그 자체가 중요했다. 구글은 호기심에 못 이겨 자사의 사이트를 방문하고 문제를 풀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이력서를 보내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그들의 ‘호기심’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구글뿐만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들은 이렇게 호기심 많은 친구들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그들의 왕성한 탐구노력이 제품개 발이나 조직성장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 지노(Francesca Gino) 하버드경영대학원 교수는 HBR(Harvard Business Review) 2018년 8월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불을 피우는 부싯돌에서 자율주행차에 이르기까지 유사 이래 거의 모든 획기적 발견과 놀라운 발명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인류의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정보와 경험을 추구하고, 참신한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덧붙여 그는 호기심과 비즈니스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호기심은 기업 성과에 생각보다 매우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 조직이 전 계층에서 호기 심을 함양하면 경영진과 직원들이 불확실한 시장상황과 외부압력에 잘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호기심이 발동하면 의사결 정을 내리기 전에 더 깊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며 훨씬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내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호기심 많은 리더는 부하직 원들에게 더 많이 존경 받고, 직원들 간에 신뢰와 협동심을 고취 시킨다”라는 말을 통해 조직을 호기심 많은 직원들로 채우고, 호기심에 대한 탐구가 끊임없이 솟아오르게끔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성장하는 조직의 회의문화
그렇다면 우리 조직에 과연 호기심이라는 유전자는 어느 정도 흐르고 있으며, 그 정도에 대한 기준은 어떤 잣대로 파악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직의 회의문화가 바로미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호기심이 없으면 질문 그 자체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무관심의 연속이며 이는 침체된 조직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장하는 조직에서는 부서장이나 팀장이 던진 아젠다에 대해 부서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이어지지만 성장이 멎은 조직에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똑똑한 팀원들이라 하더라도 팀장이 던진 메시지의 내용이 바로 수용될 정도의 높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 당연할 텐데, 침체된 조직에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그 누구도 질문을 던지는 이가 없다. 부서장이나 팀장의 의견에 대해 어느 누구도 궁금증을 표하는 이가 없이 일사천리로 회의가 진행이 된다. 설령 그것이 팀원들의 의견을 구하는,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안건이라 하더라도 “팀장님 마음대로 하세요”라는 뉘앙스를 담은 회의 진행이 이어진다. 팀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모든 것들이 ‘OK’의 연속인 것이다.
반면, 성장하는 조직의 회의문화는 사뭇 다르다. 우선 팀원들의 질문공세가 회의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팀장이 발언 기회를 얻어 말하는 시간은 회의시간의 10%도 되지 않는다. 팀장이 던진 의견에 대한 팀원들의 질문이나 자신들의 의견 발표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이 채워진다. 그들은 팀장이 던진 아젠다에 대해 이해 하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토론하면서 회의시간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자신의 과제로 인식하고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이미지를 가장 잘 그려주는 장면이 바로, ‘픽사(Pixar)’의 회의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토이스토리> <니모를 찾아서> <겨울왕국> 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애니메이션의 제작사로 유명한 픽사의 회의 문화는 팀원들의 자유롭고도 활발한 의견교환으로 초기 설정한 영화의 콘셉트가 거의 90% 뒤집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오래 전에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업 벤치마킹을 위해 구글과 픽사 본사를 시찰하고 온 친구가 있었는데, “그들의 일하는 방식은 무엇이 다른가?”에 대한 질문에 “회의문화가 다르더라”라고 간단명료하게 답을 한 적이 있다. 무슨 말인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나에게 “자유롭게 오가는 토론 문화가 너무 부러웠다”라는 말을 하면서 일례로 픽사에서 들여다 본 회의문화의 일부분을 소개해줬다.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을 두고 내부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는데, 감독의 역할은 그저 화두를 던지는 것이고 대부분은 팀원들이 결정하더라. 어떤 이미지로 캐릭터 설정을 한 것인지에 대해 그림이나 제스처를 섞어가며 동료들을 설득하는 장면이 정말 부러웠 다”는 말을 전해 주면서, “예를 들면, 영화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주인공 ‘우디’의 캐릭터도 원래는 터프가이의 보안관 이미지였으나 팀원들의 토론을 거쳐 상냥하고 코믹한 바보오빠의 이미지로 바뀌게 되었다”는 후일담도 들려줬다.
집단지성의 힘
그렇다면, 왕성한 질문공세가 이어지는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물론 기나긴 시간 암묵적으로 구축된 침묵의 조직문화를 뜯어 고치는 일이 결코 간단한 작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작은 변화부터 시작한다는 취지에서 간단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회의문화에 있어서 부서장이나 팀장은 아젠다나 화두만 던지고 의견을 말하는 것은 부서원이나 팀 멤버에 한정한다는 룰을 만드는 것이다. 굳이 룰까지 만들 필요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겠지만 말이 많은 부서장들의 한결 같은 공통점은 자신들이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굳이 멤버들의 의견을 구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굳이 멤버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수순을 갖는 행동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개중에는 전문 지식도 없이 말만 많은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지식이 풍부한 전문가 집단에서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다. 학력이 높거나 박식하고 존경할 만한 스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내가 너희들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자만이나 오기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전혀 모르는 일반인보다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는 것이 문제해결을 위한 바람직한 수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보다도더 좋은 의견이 나올 수도 있으니 전적으로 전문가의 의견에만 의존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서장이나 팀장의 의견 금지’라는 말의 뉘앙스는, 어차피 그들의 지식이나 지혜주머니는 이미 확보된 것이니 별도로 다른 의견이 나올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떻겠느냐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실제로도 새로운 아이디어의 많은 사례가 소위 그 분야의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이 아닌 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온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집단지성의 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집단지성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보여주는 실험 하나가 있었는데, 2009 년 10월 미국에서 있었던 일명 ‘빨간 풍선 프로젝트’ 실험이다.
빨간 풍선 프로젝트
미국 국방성 산하의 핵심연구개발 조직인 방위고등연구계획국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이 주도한 실험인데, 참고로 DARPA는 미국 군대의 전략 강화를 위해 미래기 술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위성항법 장치와 음성언어 소프트웨어, 탄도미사일 방어시스템, 인터넷 등 많은 기술혁신을 주도한 방위기관이다. 프로젝트의 내용은 미국 전역에 무작위로 10개의 빨간 풍선을 날리고 떨어진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DARPA는 빨간 풍선 프로젝트를 발표하기 5주 전에 10개의 풍선을 정확히 찾아내는 첫 그룹에게 4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고했다. 세계지도에서 우리나라를 보고 미국을 본다면 이 프로젝트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가능에 가까운 실험이었다. 성공하는 게 이상하다고 모두가 말을 했으며, 미국국립 지리정보국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공식석상이나 자신들의 블로그에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일찌감치 선언을 해 두었다.
‘빨간 풍선 프로젝트’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지원을 했는데, 지원자는 대부분 전문가 집단에서 이루어졌다. 위성을 이용한 위치추적에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사람들, 지리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보유한 사람들, 열공학이나 기류변화에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IT엔지니어 등 대부분 전문가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는데, 우승은 MIT에 재학 중인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MIT의 학생들은 뒤늦게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집단지성의 힘’에 의해 문제를 풀어보기로 하고 이런 공고를 올리게 된다.
“MIT팀에 가입하시는 분들은 초대 링크를 받게 됩니다. 링크를 활용해 당신의 친구를 초대하세요. 당신이 초대하는 친구, 그 친구가 초대하는 친구 그리고 그 친구가 다시 초대하는 친구는 돈을 벌게 됩니다. 물론 당신도 예외가 아닙니다. 빨간 풍선을 어떻 게 찾을 지에 대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보내주는 지원자에게 2,000 달러가 지급됩니다.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초대한 친구 에게는 1,000달러, 그 친구를 초대한 다른 친구에게는 500달러, 그다른 친구를 초대한 또 다른 친구에게는 250달러가 지급됩니다.”
그리고 풍선을 날린 지 8시간 52분 41초만에 그들은 4,665명의 도움을 받아 풍선 10개를 찾는데 성공하게 된다. 촉박하게 진행된 원시적이고 조악한 방법이 우수한 장비를 갖춘 전문가 집단을 이긴 것이다.(*출처 - 빨간풍선 프로젝트의 교훈, 대니얼 코일)
아무리 전문가라 하더라도 항상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보다는 다수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오히려 생각지도 않은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는 경우는 비단 ‘빨간 풍선 프로젝트’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똑똑한 사람일 수록 ‘자기지식의 함정’에 빠져 좁은 공간에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집단지성의 힘이 더 좋은 결과를 낳는 상황도 여러 번 경험했다. 어떤 때는 똑똑한 부서장보다는 이런 집단의 힘을 활용하는 부서장이 진정한 승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
이제 일체의 발언을 멈추고 아젠다만 던져 보는 팀장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막혔던 입이 뚫리는 팀원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전에 각자의 생각을 의무적으로 말해야 한다는 공지를 해 둔다면(사전공지는 매우 중요하다),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의견을 말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질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호기심이 생길 것이고 이런 호기심의 탄생은 조직의 창의력 개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변화는 여기서 시작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