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랏차차! 힘내라 HR!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부원장

2018-12-27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부원장

새해라지만 온통 잿빛 공포에 희망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은 공포를 에너지로 삼아 돌아 가는 사회인지도 모르겠다. 농담이 아니다. 그 동안 우리를 누렸던 공포의 리스트를 한번 돌아보자. 실리콘밸리 판 어벤져스라는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휘발 문제, 미중 간의 갈등으로 인한 수출 문제, 저출산으로 인한 한민족의 종말론, 거품이 꺼지면서 다시 다가 오는 세계적인 Recession, 핵미사일과 전쟁의 가능성…. 쇼트트랙 선수들처럼 위치를 바꿔가면서 우리를 지배해온 두려움의 레퍼토리는 끝이 없다. 그 중에 압권은 기술이 일자리를 없앤다는 고민과 일자리를 채울 인구가 줄어든다는 상반되는 고민인 것 같다.

사실 호모 사피엔스 20만 년 동안 공포는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오랜 수렵채집의 시절 동안 두려워하고 불안에 민감한 자만이 후손을 남길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으니까. 그런 ‘쫄보’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우리가 늘 걱정하고 고민하는 건 당연지사겠지만 역사를 발전시켜 온 건 두려움을 넘어 객관적 실체를 인지한 소수의 용자(勇者)였다. 그들 덕분에 역사가 발전해왔다. 더구나 지금은 수렵채집과는 전혀 다른 사회다. 두려움에 휘둘려서 정신줄 놓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두려움은 위축을 가져오고, 위축은 생존본 능을 불러오고, 생존본능은 위험할 수 있는 변화나 도전을 회피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도전에 대한 회피가 결국 사회의 몰락을 불러온다. 지금처럼 변화가 많은 시대에는 ‘조심스러운 낙천주의자’ 가 되어야 한다.

잘 하고 있다, HR만 빼고. 그러니 이번엔 제대로 해보자

신기원을 열어 줄 5G를 우리가 맨 처음 시작했다. 정말 대단하다. 4G가 1위 국가보다 2년이나 늦게(2011년) 도입된 전례에 비교하 면 그렇다는 말이다. 이러다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망한다는 ‘겁박’은 1998년 외환위기 이래로 우리 사회에 상존하고 있다. 이제 그런 ‘겁박’이 지겨워질 만도 하다. 유럽연합에서 28개 회원국과 선진국 8개를 합해서 평가하는 ‘혁신지수 평가’에서 대한민국이 1위를 했다. 놀라우신가? 아직 멀었다. 2013년 이후로 6년째 연속 1위란다. 우리 꽤 잘 하고 있다.


그런데 HR만은 좀 아닌 것 같다. 이 평가에서도 산학연 협력은 EU 평균의 24%밖에 안 되는 걸로 나왔다. 고용의 경직성과 신뢰의 문제는 계속 우리의 발을 묶고 있고, 구태의연한 보상제도도 그렇다. 연령과 근속에 따른 보상의 증가율은 전 세계에서 단연 1위일 만큼 인사제도의 경직성과 속인성이 높다. 매일 낯선 기술담론과 공포에 눈이 흔들렸으니 아무 것도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HR 부서를 보는 CEO의 눈이 예전 같지 않다.

전문가들은 직무급이 해결책인양 ‘선언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만 ‘그게 되는지 한번 해보라지!’ 경로의존성이 절대적인 HR분야에서 혁명적 전환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미국을 보고 베끼는 건 좀 식상 하지 않나? 우리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10년 계획을 세우고 한 걸음씩 다가가야 할 일이다. 합의가 가능한 방식으로, 속인성에서 직책이든, 특수 직무든 되는 것부터 시장가치 기반으로 하나씩 전환 해야 한다. 그런 장기적 행보가 안 되는 것이 공포담론으로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래를 예측 가능한 걸로 보지 않으니 노동조합도 장기적인 관점을 수용하지 않고 현재의 이익만 극대화하려 드는 거다. 외환위기 이후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굴곡도 어려움도 있었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성장했고 1인당 3만 불의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르다’라는 말에 현혹 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술을 수용하고 인력 부족에 대비하자

‘드론이 택배 아저씨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 그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공포를 팔아왔었다. 우리보다 변화를 빨리 겪고 있는 일본의 택배업체 ‘야마토 운수’는 택배 기사를 구할 수 없어서 난리라고 한다. 그러니까 진작에 드론 택배 연구 좀 하지 그랬을까?! 300명 이하 중소기업의 유효구인배율 1) 은 무려 9.91이고그 때문에 사람을 못 구해 문을 닫은 회사가 금년 10월까지 324개 라고 한다. 일본의 여성 고용률 2) 은 2012년에 60%였는데 2018년에 70%까지 올라갔다. 이게 1947년부터 폭발적으로 태어난 단카이 (團塊)세대가 65세 정년을 맞아 2012년부터 은퇴를 시작했기 때문 이다.

우리는 어떤가? 한국판 베이비부머인 ‘58년 개띠’들이 60세 정년을 맞아 2018년부터 은퇴를 시작했다. 우리 앞날도 불 보듯이 뻔하 다. 최저임금이 올랐다고 난리인데 정부가 안 나서도 노동시장에 공급이 줄어들면 가격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최저임금 정책이 뒤에서 밀고 인구감소가 앞에서 끌게 되어 있다. 그래서 신기술이 대체할 수 있는 직무를 빨리 찾아서 자동화해야 한다. 지루하고 단순해서 인간이 싫어하는 일부터 없애야 한다. 불필요한 관행도 제거해야 한다. 한국의 계층조직과 강력한 조직문화는 우리가 후진국일 때 임직원들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도장을 6~7개씩 찍어대는 품의문화도 일본을 제외하면 우리 밖에 없다. 그게 다 그 놈의 ‘불신’ 때문에 생긴 일이다. ICT가 발전 하면서 점점 투명해지는 세상에서 그런 제도를 부둥켜안고 가는 것은 직원들에게 종이 출퇴근카드를 요구하는 꼴과 같다. 당장 기술발전과 자동화 가능성을 놓고 ICT가 대신할 직무의 중장기 로드 맵을 만드는 작업부터 시작하자. 그리고 앞으로도 기술로 대체가 불가능한 ‘인간만의 영역’을 찾아내고 그 직무에서 모방 불가능한 경쟁력을 갖추자.

더 나아가 앞으로 인공지능과 인간이 협업을 하는 사례가 늘어날 거다. 분명히 ‘기계+인간’의 다양한 역할조합이 나타날 것인데 HR 의 역할이 경영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관리해야 하는 탈렌트는 그 조합에서 기계를 뺀 단순히 인간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HR부서인지 IT부서인지 헛갈릴 정도까지 진도를 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추가적인 정년 연장에 대비해 문화와 시스템을 바꾸자

일본은 2013년부터 65세로 정년을 연장했다. 그런데 최근에 67세나 70세까지 다시 연장하는 안을 만지작거리고 있다고 한다. 일하는 사람은 사라지고 연금 문제가 심각해지니 그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프랑스는 2010년에 법정 최저 퇴직연령을 62세로, 독일은 2013년에 정년을 67세로 연장하기로 했다. 스웨덴은 법적으로 67세까지 정년을 보장한다. 세계가 이러니 고령화되는 추세가 가장 빠른 우리도 그냥 넘어갈것 같지는 않다. 물론 60세 정년이라고 한국에서 60세까지 근무하는 게 가당하냐고 반문을 하겠지만 주요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나이가 점점 밀리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구가 50만 명대로 떨어지는 5년 이후에 정년으로 은퇴하는 인구가 100만 명으로 늘어난다. 매년 50만 명씩 노동시장에서 사라지면? 버텨내는 기업이 없을 거다. 청년을 어디서 갑자기 만들어낼 수 없으니 결국 나가는 사람을 붙잡아야 하는 국면이 올 것이다. 예전 일본의 공인노무사들은 부당해고에 대항해서 싸웠지만 요즘은 사표를 수리해주지 않는 회사에 대항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과거에 법적인 정년을 연장하면서 연공형 보상제도를 그대로 두는 실수를 했다. 정말 어리석은 처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법적인 제약이 아니라 노동력이 부족해서 기업이 나서서 정년을 연장해야 할 날이 다가온다. 그러면 지금부터라도 나이가 들어 인지적, 육체적인 기능이 떨어 져도 일 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고, 연공형에서 벗어난 보상 시스템도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근무 연장을 요청할 대상자를 선별하는 시스템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있다.

직장 선후배 문화도 없애야 한다. 원래 기업은 군대조직으로부터 많은 것을 차용했다. 최초의 주식회사라는 동인도회사가 산하에 군대까지 보유했으니 오죽했겠나. 그래도 서구기업은 그런 문화를 진즉 탈피했다. 우리만 그 잔재를 부둥켜안고 있다. 사실 조선시대에 과거시험 합격 기수란 것이 없었다. 후배가 더 높은 자리에 앉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친구라는 오성과 한음은 5살이나 차이가 났다. 지금의 선후배 문화는 일본 식민통치가 남긴 것이다. 육사기 수나 그것을 모방한 기업의 공채기수에 의해 선후배 문화란 게 생겼지만 일본은 전쟁이 끝난 이후로 병영사회에서 탈피하려고 몸부림을 쳤고 멀찍이 벗어나 있다. 후배나 나이 어린 사람 밑에서 일하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털어야 한다. 그렇게 나이가 많다고 사직을 해야 한다면 끝까지 올라간 1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가 후배 때문에 그만두는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후배 중에 천재가 나오지 말란 법이 있나? 후배 중에 스티브 잡스가 있으면 그를 CEO로 모시고 근무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런 걸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젊은 나이에 명예퇴직을 하게 되는 이유가 된다. 빨리 그런 문화와 가치관을 털어야 한다. 차장이나 부장으로 맡겨진 역할 다 하면서 정년까지 일하는 게 자연스러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DT = f(DT*DT)의 함수를 활용하자. 디지털판 주경야독의 시대가 열린다

주 52시간 근무 상한제가 도입되고 나서 백화점의 문화센터가 북적인다고 한다. 정시퇴근도 그렇지만 회식 문화가 극적으로 바뀌 면서 직장인들에게 ‘저녁시간’이란 낯선 게 주어져서 그렇다고 한다. 우리 젊은 직원들이 배우고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기쁘다.

그러면 디지털 전환기(Digital Transformation)에는 어떤 인재와 어떤 ASK(Attitude, Skill, Knowledge)가 필요할까? DT 전환기는 2개의 DT로 극복해야 한다. 하나는 끊임없이 생겨나는 지식(Knowledge)과 기술(Skill)을 학습(Develop)하고 익히는 (Training) 삶이다. 디지털판 주경야독의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이제 HRD를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분주해져야 한다. 그렇다고 퇴근 하는 직원들을 몽땅 강의실에 붙잡아 두는 고리타분한 술수는 좀졸업했으면 좋겠다. 슬기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가는 태도(Attitude)도 바뀌어야 한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역할을 하기 위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디자이너의 태도(Design Thinking)가 필요하다. 어차피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디자인은 크던 작던 모방의 결과물이다. 그렇다고 남의 디자인을 있는 그대로 카피해서 자기 작품이라고 자랑하는 디자이너는 세상에 없다. 최소한의 자존심 문제이다. 모방을 하더라도 환경과 맥락에 맞도록 작게라도 수정을 한다. 그게 디자이너의 자존심이다. 일반 직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급격히 바뀌는 환경에서는 어제 했던 방식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프로로서의 ‘자존심 문제’라는 혁신 강박감이 필요하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선진 기술은 인터넷처럼 공개기술로 움직이고 있다.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이 없어서 뭘 못하는 사람도 없어지고 있다. SNS 덕분에 돈이 없어 마케팅 못한다는 이야기도 할 수 없다. 결국 남는 변수는 ‘사람’뿐이다. 바로 그 ‘사람’의 질에서 경쟁력이 결정될 것이다. ‘사람’을 바꾸는(People Transformation) 걸 우리가 해야 한다. 이제부터 HR이 끌고 가는 한국기업의 세상을 열자. 아니 그 정도는 아니라 해도 모처럼 밥값 좀 하는 HR 프로페 셔널들이 되자.

---------------------------------------------------------------------------------------

1) 구직자 1명당 주어지는 일자리의 숫자 2) 고용인원 ÷ 생산가능인구(15~65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