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의 확보와 육성이 국제경쟁력의 원천

2019-07-31     장상수 아시아대학교 도시창조학부 교수

불통(不通)이 공멸(共滅)의 우려로

지난 2년여 동안, 한일관계는 꼬일대로 꼬인 것 같다. 행적을 돌이켜보면 양국 지도자는 애당초 문제를 풀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대화와 타협의 어깃장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마침내, 싸움판이 정치외교에서 경제사회로 확산되었다. 서로가 경제적 피해는 물론, 국민들 마음에까지 깊은 감정의 골을 파놓고 말았다. 그 후유증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정치판이 진흙탕이면 민간이라도 말리는 쪽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떤 묘수로 해결할지는 모르겠으나, 필자가 느끼기로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이미 양국 모두가 넘어선 것 같다.

그 원인으로 무엇보다 두 지도자의 리더십이나 통치 스타일이 지적된다. 두 사람 모두 정치이념이 한쪽으로 크게 쏠려 있고, 성격 또한 옹고집으로 상대방에 대한 겸양지덕(謙讓之德)이 부족하다. 화합과 통합보다는 분열과 대립으로 지지기반을 넓히려는 성향도 비슷하다. 위안부나 징용노동자 문제도 양쪽 지지세력들의 생각이 너무나 상반되어서 이제는 어느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내몰려 있다. 솔직히 집권욕이 자초한 결과라 본다.

또한 두 사람은 모두 국가의 발전과 안녕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적 성향마저 강하다. 장·차관 이외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은 그 어느 정권 때보다 강하게 행사하고 있다. 따라서 공직자들의 알아서 기기(일본의 忖度손타쿠), 혹은 부화뇌동(附和雷同)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양국의 공영·공생(共榮·共生)을 말할 공직자는 물론 없을 것이며, 그런 대안을 받아들일 만한 지도자나 중재할 집권층 인물도 없어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과 국가의 운명은 인재 풀과 용인술에 좌우

지난 4월, 카고시마현에 있는 심수관요(窯)를 다녀왔다. 15대손의 안내를 받으면서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 420년 전(1598년)에 이들을 일본으로 끌고 온 시마즈(島津義弘)라는 장수 후손들과 마주 쳤다. 양가 후손이 원수가 아닌 절친처럼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강제로 끌려온 조상을 떠올린다면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했지만, 심수관씨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내다본다’는 가치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 오늘의 일본 도자기산업이 글로벌산업으로 발전한 데는, 일본의 지도자들이 옛날부터 기술을 중시하고, 기술자 확보에 대한 욕망이 컸었기 때문이라는 생각 또한 가져보았다.

실제, 메이지유신(1868년) 즈음하여 일본은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등으로부터 기술자를 국가차원에서도 적극 고용하여 산업의 고도화를 앞당겼다. 1874년 한 해에 약 850명의 외국인을 고용하였고, 금속기계 부문에서는 관민 합쳐서 60명까지 고용한 해도 있었다. 국가재정을 압박할 정도로 다들 고액의 인재들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도입과 축적이 국부 창출은 물론 군사력 증강으로 이어졌고, 수십 년 후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든 힘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외교적 수완은 한순간 국가간 충돌이나 위기 해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국가경쟁력의 원천마저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국력의 우열(優劣)은 경제력의 우열에 달려있고, 경제력은 그 나라 기업들의 역량에 달렸다. 기업이 지속적 확대성장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국가 또한 국부의 지속적 확대가 불가능하다.

한국의 저출산·고령화라는 국가적 과제까지 생각한다면, 기업들에게는 비교우위보다 절대우위의 경쟁력 확보가 절실하다. 경쟁사가 붐비는 시장의 제품이나 서비스, 즉 레드오션에서 만들어 팔아봐야 이익은 점점 얇아지고 몸만 고생하게 된다. 어차피 중국이나 베트남, 인도 등 신흥국들에게 밀려나기 십상이다. 그렇다면, 외국이나 경쟁회사가 모방의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파는 독점적 시장, 즉 블루오션을 만들어가야 한다. 독점적 이윤, 즉 고부가가치를 창출함으로써 노사정 모두가 해피해질수 있다.

물론 이런 경영전략은 누구나 지향하고 있겠지만, 블루오션을 실현하는 기업은 극히 소수에 그치고 있다. 혁신적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닌 탤런트(핵심인재)가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고 대체 가능한 보통 수준 인재는 넉넉히 공급될지 모르나, 일당백(一當百), 한 사람이 1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인재, 예컨대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재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재가 없는 가운데서 투자규모가 크고, 리스크가 엄청난 파괴적 이노베이션을 감당할 기업가는 더더욱 나타나기 어렵다. 그마저 이들 기업가를 사리사욕의 화신인 것처럼 몰아세우는 사회라면, 언제까지 레드오션에 머물게 될 것이며, 낮은 부가가치로 야기되는 저임금 등을 둘러싼 노사분쟁으로 핏빛은 더욱 짙어지게 될 뿐이다.

오늘날 한일간 경제마찰 근원도 따져보면 인재의 질적, 양적 격차 에서 비롯된 문제이다. 일본에서는 만드는 것을 한국에서는 왜 만들지 못하는가? 하물며 그 부족물량을 중국에서 수입하겠다는 뉴스를 보면, 중국한테도 기술력이 뒤쳐진다는 것이 아닌가. 각종 규제를 탓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규제밖에 생각이 못 미치는 정치가 들의 역량 결핍 때문이다. 결국 인재가 없다는 이야기다.

아시아에서도 밀리는 인재경쟁력

그렇다면 한국은 얼마나 더 세월이 흐르면, 핵심적 부품소재의 해외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지난 70여 년 동안 극일(克日)을 외쳐왔지만, 여전히 핵심소재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현주소이다. 극일은 정치적 구호에 그치고, 힘의 원천인 인재육성과 역량 배양을 소홀히 해왔다는 반증일 것이다. INSEAD의 「인재경쟁력조사보고서」(Global Talent Competitiveness Index)에 따르면, 2019년의 경우 일본은 22위, 한국은 30위이다. “어떻게 인재를 육성하고 성장시키며, 또 인재를 불러들이는 매력이 있는가” 등 6가지 지표로 평가하는데, 이 가운데 한국은 글로벌 지식에서만 일본을 앞선다. 전체 순위에서는 말레이시아보다 뒤지고, 중국과의 격차는 급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인재, 즉 핵심인재의 육성과 확보를 틈날 때마다 경영진들에게 강조하였다.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재화나 서비스를 창출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인재가 필요하다. 없다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는다. 5천만 국민을 평범한 인재, 보통사람으로 키우게 된다면, 제4차 산업시대에는 더욱 외국 기업 하청업체 노동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 교육계는 뛰어난 인재를 육성하겠다는 수월성(秀越性) 교육은 뿌리까지 걷어내고, 평범한 보통사람만 육성하겠다는 식의 평준화(平準化) 교육에 올인하고 있다. 인재는 그야말로 국가의 백년대계이다. 지금이라도, 국내에 없다면 해외에 나가서라도 삼고초려해야 한다.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미래사회가 필요로 하는 리더와 핵심인재의 체계적 육성을 위하여 산관학 모두가 진지하게 임하여야 한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정권에 따라 국내에서 공급되는 인재의 양과 질이 들쑥날쑥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자구책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글로벌 인재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어 미래의 블루오션을 창출해 줄 글로벌 탤런트를 모셔오거나, 자체적으로 육성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