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따지기 시작한 일본 정부

2019-10-30     이승환 기자

디플레탈출 선언을 못하는 일본

일본이 1990년대 초반 버블붕괴와 함께 디플레에 빠지면서 저성장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다시 한 번 주지하자면 약 30년간 평균 1% 성장에 그쳤다. 물론 성장 친화적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베노믹스로 경기 회복세가 이어지고, 고용시장도 호황 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대에서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소비자물가가 조금씩 상승해서 플러스로 전환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도 2년 연속으로 말이다. 그래서, 안팎에서 일본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이쯤 해서 디플레탈출 선언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예측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 있게 디플레탈출을 선언하면서 자신들의 성과를 알리고, 이를 기반으로 생명 연장을 보장받아야 할 일본 정부는 왜 자신 있게 디플레탈출 선언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 복잡다양한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플러스를 보이지만, GDP 디플레이터는 여전히 마이너스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과거 2번에 걸친 일본은행의 디플레탈출 선언 이후 경기가 재침체 되고 물가도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디플 레탈출 선언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지난 10월 1일 인상된 소비세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버블붕괴 후 2차례 있었던 소비세 인상이 경기 재침체와 물가 하락을 초래한 것처럼 이번에도 그와 유사한 현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행복을 따지기 시작한 이유

이처럼 여전히 일본경제는 어려운 상황인데,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장기 경기침체가 가져온 각종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산적해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고, 대내적으로도 국부가 축소되고 가계소득이 악화되는 등 경제적인 피해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 또, 지금까지 사회보장정책이나 조세로 소득분배의 악화를 최대한 억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빈곤층이 다시 축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낮다.

이뿐이 아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자살 등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버블붕괴 전의 2배 가까운 수준이고, 대규모 노숙인도 좀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도 가지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추세일지도 모른다. 급증하고 있는 고독사에서 보는 것처럼 사회적 관계망의 단절 또한 심각한 문제다. 이외에도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1)

그러다 보니 일본에서는 아베노믹스에 대해 초기부터 장기 경기침체와 디플레탈출은커녕 오히려 기업 또는 자산가들 배만 불리는 정책으로 사회 양극화는 물론 버블붕괴 후 나타난 각종 사회적 문제 들을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정면으로 비판하는 전문가 들이 많았다. 물론, 기업 활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고용시장의 호황을 이끈 바에 대해서는 칭찬해야겠지만, 아베노믹스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이제 접어야 한다는 것이 대세로 굳어가고 있다고 봐야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최근 느닷없이 일본 정부가 행복을 따지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만족도(well-being)와 생활의 질’이지만, 갑자기 왜라는 의문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짐작건대 가장큰 원인은 장기 경기침체와 디플레에서 탈출하기 위한 경기 활성화 정책에만 집중하기에는 그 결과를 자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각종 비판에 시달려야 하니 조금이나마 국민 생활에 가까운 정책들로 피해가려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유야 어찌 됐든 일본 정부가 ‘만족도와 생활의 질’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크게 다음과 같은 2가지다. 첫째, 근래 들어 OECD 등 국제 사회에서는 GDP만으로 파악할 수 없는 행복이나 만족에 대한 전체상을 규명하여 정책 개선에 활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서 일본도 이러한 추세에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만족도’라는 질적 주관적 관점을 기준으로 경제사회의 구조를 보다 다면적으로 가시화하여, 정책운영에 활용하기 위한 검토 작업을 추진하기 위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하려는 것들

그래서 최근 일본 정부(내각부)가 내놓은 자료가 ‘만족도·생활의 질에 관한 조사에 관한 제2차 보고서’다. 2) 앞으로도 많은 수정과 보완이 이루어지겠지만, 이 보고서에는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의 현상과 추이를 파악하기 위한 지표들이 포함되어 있다(표 1 참조). 또, 이 지표들이 생활 전반의 주관적인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증분석 결과도 제시되어 있는데,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3) 첫째, 주관적인 생활만족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가계와 자산, 주택, 고용환경과 임금, 교육수준 및 교육환경 등의 4가지 지표로 나타났다. 둘째, 나머지 사회와의 연계, 일과 생활, 신변의 안전, 육아하기 쉬운 정도, 간병하고 받기 쉬운 정도, 자연환경 등 6가지 지표는 생활의 즐거움과 재미를 통해 주관적인 생활만 족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셋째, 유의해야 할 점은 건강상태는 주관적인 생활만족도뿐 아니라 생활의 즐거움과 재미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지표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향후 이 결과가 일본의 연례 경제재정 운영지침인 ‘호네부토(骨太, 뼈대가 굵고 체격이 좋은 모양)방침’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하는데,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지금 일고 있는 아베노믹스에 대한 비판을 다소나마 비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아베내각 출범 이후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주요 정책들의 방향이 크게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하기 어려워 보인다.

우선, 주관적인 생활만족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은 기존 GDP 또는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잘 살고 못 살고, 또는 행복하고 그렇지 않고를 따지던 흐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정 수준의 소득과 자산, 좋은 일자리, 적절한 주택의 이용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볼 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교육 투자 등은 지금까지 논의됐던 인간의 행복 추구를 위한 기본 요건과 같다. 또, 주관적인 생활만족 도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이나 치안, 보건과 같은 요소들 또한 이전에도 상당한 정책 배려가 있었던 부분이다. 더군다나, 육아나 간병과 같은 요인들도 최근의 이슈가 아니라, 상당히 오랫 동안 논의됐었고 관련 대책들도 과거 수십 년에 걸쳐 추진됐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별 내용도 없어 보인다. 다만, 일본 정부가 이렇 게까지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이 보고서와 관련된 다양한 정책들이 추진됐었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타나질 않아서 좀 더 정치적인 폴리시믹스(정책조합)를 통해 작금의 현실을 바꿔보려는 데 있다고 생각해 본다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도 조금은 달라질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 우리 국민은 행복한지?

요즘 들어 자주 듣지는 못하지만, 이따금 들려오는 질문이 생각난다. ‘국민 여러분 지금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질문이다. 기억하기에 1990년대 후반에 IMF 사태를 겪으 면서 황폐해진 국민의 삶을 두고 자조 섞인 표현으로 많이들 사용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이 질문을 듣기가 어려워졌는데, 아마도 그만큼 우리의 삶이 나아졌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최근 이 질문이 다시 많은 사람으로부터 회자되는 것이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대내외 환경 악화가 지속되면서, 우리 경제가 L자형 또는 일본형 장기불황에 빠지는 것이 아닌지하는 걱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일본보다 기초체력이 약한 우리가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경제사회적으로 일본보다 훨씬 심각한 폐해를 경험하게 될 것이며, 매일같이 국민의 안녕을 물어봐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르겠다. 딱히 이전과 다를 것도 없고, 큰 성과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일본 정부의 행복에 대한 고민이 그나마 부러워 보여 소개한 연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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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상은 이부형, ‘일본 사례로 본 저성장의 의미’, VIP리포트, 현대경제연구원, 2019년 9월 11일을 참조할 것.
2) 이하는 日本 内閣府, ‘「満足度·生活の質に関する調査」に関する第2次報告書 - 満 足度·生活の質に関する指標群(ダッシュボード)試案’, 2019年 7月 30日의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
3) 생활 전반의 주관적 만족도는 10점 척도로 이루어진 설문조사를 통해 집계되었음.
자세한 내용은 日本 内閣府, ‘「満足度·生活の質に関する調査」に関する第1次報告 書’, 2019年 5月 24日의 내용을 참조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