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이주민이 디지털 원주민과 함께 살아가려면?

김미진 HSG 휴먼솔루션그룹 전문연구원

2020-02-05     김미진 HSG 휴먼솔루션그룹 전문연구원

신입사원이 자신의 업무 관련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정리하던 것을 간단한 코딩 작업을 통해 쉽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팀 회의를 잡을 때마다 팀원들 일정 맞추는 일이 쉽지 않은데 온라인으로 팀원 일정을 공유하면 회의 어랜지에 드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자, 팀장인 당신의 결정은?

‘나 때는 어떤 업무가 주어지던 묵묵히 했는데 요즘 애들은 일을 가려서 하려는 것 같아. 신입사원이면 그에 걸맞게 겸손한 마인드로 일을 대해야 하는데, 본인이 잘났다 이거지. 이전 선배들은 바보라서 그렇게 일했겠나. 아무튼 뺀질이들이라니까.’

혹시 이런 생각을 했다면 불행히도 당신은 앞으로 마음고생이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일컬어 ‘요즘 애들’이라고 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이미 많은 조직에서 50%를 넘나들고 있으며 2025년이면 전세계 노동력의 75%가 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지혜로운 대처법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할 지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먼저, 신입사원의 앞선 두 가지 제안을 ‘있는 그대로’ 해석해 보자. 왜 그는 주어진 방식대로 업무를 하지 않고 굳이 시키지도 않은 코딩 작업을 시도해 보겠다고 하는 걸까? 왜 다른 팀원들이 싫어할 지도 모를 새로운 공유 시스템을 쓰자고 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교육 학자인 마크 프렌스키(Marc Prensky)가 처음 사용한 용어인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은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마치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와 1990년대 휴대전화 및 인터넷의 확산에 따라 이뤄진 디지털 혁명기. 그 한복판에서 성장기를 보낸 세대, 바 로 밀레니얼 세대를 지칭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디지털 이주민(Digital Immigrants)’이 있다. 후천적으로 디지털 기술에 적응해 간 기성세대를 일컫는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디지털 신기술에 대해 디지털 원주민과 이주민의 반응은 다를 수밖에 없다. 디지털 원주민에게는 공기와도 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반면, 디지털 이주민에게는 매번 스트레스를 받으며 학습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시 앞선 신입사원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디지털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은 그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생활 모두 디지털로 연결돼 있다. 친구와 만나기 위해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자신을 찾아올 수 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대화 중이던 모바일 메신저에서 ‘나의 위치정보’를 친구에게 보내고그 친구는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친구의 위치로 가는 최적의 길과 이동 방법을 안내 받는다. 원할 경우 택시도 바로 부를 수 있다. 친구 결혼식도 모바일 청첩장을 받고 움직인다. 대면이든 SNS든 모두 소통수단일 뿐, 바쁜 직장인에게 효율적인 방법을 쓰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효율성을 높이는 일’은 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밥 먹듯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일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일을 하기 싫어서도 아니고 겸손하지 못해서도 아니며 잘난 체하는 것도 아니다. 자, 여기까지 따라왔다면 앞서 신입사원이 만들 어낸 상황을 곡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다음 단계는 팀장으로서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하는 것이다.

첫째, 나와 다름을 쿨하게 인정하자.

디지털 원주민은 이주민과 태생이 다르다. 자꾸 내 기준에서 해석 하고 판단하려 들면 갈등은 끝이 없다.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화합하려면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기존에 해오던 방식과 다른 방식을 주장하더라도 그것은 나와 우리 기성세대에 대한 도전이 아니다. 그저 디지털 원주민에게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되는 방식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 다. 머리로는 다 이해하는데 자꾸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고? 모든 행동에는 나름의 ‘긍정의도’가 있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계속 되뇌자. 어쩌면 효율성 측면에서만큼은 그는 나보다 ‘능력자’일수 있다라는 사실도 쿨하게 받아들이자. 그러면, 새로운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제안하는 신입사원이 얄밉기보다는 기특하게 보일 것이다.

둘째, 즉각적으로 피드백하자.

모바일 메시지와 인스턴트 메신저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의사소통을 해온 디지털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신속하게 반응하는 만큼 상대 방에게도 즉각적인 피드백을 요구한다. 팀장에게 뭔가를 제안했다면 빠른 의사결정 결과를 원한다. 팀장인 나는 곧바로 의사결정을 해줄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코딩 작업을 언제부터 시작하면 좋을지 팀 내 업무를 종합해서 결정해야 하고, 일정 공유 시스템에 대해 다른 팀원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고? 팀장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문제는 의사결정을 신중하게 하려는 것이 나쁘 다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피드백을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세대 구성원들을 답답하게 할 수 있다는 거다. 지금 당장 가부를 결정해줄 수 없다면 언제까지 답을 주겠다는 것만이라도 알려주자.

셋째, 공유에 너그러워지자.

팀원 여러 명이 공동으로 문서 작업을 하는 경우를 떠올려 보자. 디지털 이주민은 USB를 주고 받으며 일을 진행시켰던 시절을 기억할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클라우드를 통한 동시 작업으로 훨씬 효율 적으로 변했다. 디지털 세상은 공유를 통해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고 그래서 디지털 원주민은 공유가 효율 적인 세상을 만든다고 확신한다. 회의 일정을 잡기 위해 일일이 참석자들에게 묻는 일은 디지털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다. 누구라도 일정 변경이 생긴다면 또다시 같은 과정을 거쳐 회의 시간을 잡아야 한다. 하지만 구글 캘린더와 같은 간단한 툴을 이용해 사람들의 일정이 공유되면 회의 어랜지는 단 1분만에 끝날 수 있다. 부가적인 효과는 또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자원이 눈에 보이게 되면서 그 유한성과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되는 것. 따라서 회의가 여러 사람의 시간을 잡아먹는 활동인 만큼 별 생각 없이 남발하는 일이 줄어들게 되고 참석자 또한 꼭 필요한 사람 으로만 한정 짓게 된다. 겨우 툴 하나 새로 썼을 뿐인데 회의의 생산성으로까지 연결되는 거다. 디지털 원주민이라면 이 좋은 툴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엄근진, 세젤귀, 생선, 자만추, #G 등을 듣고 이게 다 무슨 외계어냐며 어리둥절하는 당신. 디지털 원주민들이 나고 자란 디지털 세상 에서 쓰는 줄임말들(엄근진: 엄격근엄진지, 세젤귀: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생선: 생일선물, 자만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G: 시아 버지)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들의 DNA가 드러난다. 이를 두고 별걸 다 줄이고 있다(이 말까지도 ‘별다줄’이란 줄임말이 있다)며 국어의 파괴라고 한심해 한다면 당신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디지털 이주민에게 아날로그적 습성과 취향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를 두고 비난할 수 없는 것처럼, 디지털 원주민들이 생득(生得)한 디지털 습성을 두고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있는 그대로 쿨하게 받아들여야 공존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