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원의 감정을 챙겨라!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정신과 전문의

2020-04-27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랩 대표/정신과 전문의

『사피엔스』 저자로 널리 알려진 유발 하라리는 3월 20일 파이낸 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비상 상황에서 역사 전개는 빠르게 진행되며 일반적으로 논의 과정만 몇 년이 걸릴 결정이 하룻밤 사이에 이뤄진다”라고 하였다. 실제로 원격근무, 디지털 혁신(Digital Transformation), 언택트(Untact) 환경 구축 등이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다. 산업 전반의 환경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높다. 기업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달라질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포스트 코로나’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HR은 이 변화의 시대에 어떤 역할을 감당하여야 할까?

HR 본연의 여러 역할이 계속 중요하겠지만 구성원들의 정서를 관리하는 역할이 포스트 코로나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정서 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지각은 코로나 이전에도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교수인 로자베스 모스 캔터 교수는 그녀의 저서 『Confidence』를 통해 구성원들의 감정은 결근율, 노력의 강도,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런 감정은 전염성이 강하여 조직 분위 기나 주위 구성원들의 성과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 바 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팬데믹 시대에는 급격한 변화와 불확실성으로 인해 구성원들의 감정의 폭이 평상시보다 매우 크고 작은 자극에도 쉽게 부정적으로 흐르게 된다. 그리고 임직원 개개인의 부정적 감정은 협업하는 다른 동료와 직원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확대 재생산될 수 있다. 그러므로 조직 차원에서 구성원들의 정서와 경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은 성과 창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과거에는 구성원들의 감정이나 경험에 대해 조직에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감성적인 영역은 개인의 책임이고 감정이야 어떻든지 간에 조직에서는 이성적으로 일에 몰두하는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많은 연구 결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인간은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이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다. 감정에 따라 우리는 상황을 다르게 지각한다. 긍정적 기분일 때는 조직의 모든 일에 대해 우호적으로 반응하고 일에 몰입하는 시간도 증가한다. 그러나 불안, 공포,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일 때는 일에 대한 집중력, 판단력, 협업 능력 및 소통 역량 등 업무 역량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구성원의 감정을 긍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은 업무 성과를 증진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여기에 더하여 평생직장이던 시절에는 조직에서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간에 조직을 믿고 끝까지 충성하던 구성원들이 많았다. 그러나 평생직장보다는 평생직업의 개념이 확산되고 종신고용보다는 경력을 위한 이직이 활발해지고 있는 요즈음에는 조직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정서적으로 어떤 경험을 하게 하는지에 따라 조직에 더 stay할 것인지, 이직할 것인지 등을 결정하는 구성원들이 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이 내부고객으로서 조직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가 인재 유지(retention)에 중요하다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고 그런 개념을 반영하여 HR 부서의 이름을 Employee Experience로 바꾼 조직들도 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 동안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어떤 정서적 경험을 하게 하는지에 따라 코로나 이후에 조직에 대한 신뢰, 헌신, 몰입 등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과거보다 정보가 수평으로 흐르고 매우 빠르게 조직 내외부로 확산 되는 현재에 코로나 시기 동안 이루어진 HR과 조직의 활동이 구성원들에게 각기 다른 조직을 비교하는 틀이 될 수 있다. 한 예로 어떤 조직은 매일 마스크를 지급하고, 재택근무체제로의 전환을 선제적으로 결정하여 구성원들의 불안을 감소시킨 데 비해 다른 조직은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라고 사내 방송은 하지만 개인 방어용품을 전혀 지급하지 않고 근무를 진행시키며, 감염의 우려가 확실해진 상황에서도 재택근무를 결정하지 않아 구성원들의 빈축을 사기도 하였다. 이처럼 구성원들의 정서관리는 조직 분위기와 구성원들의 성과에 영향을 미치고, 조직에 대한 충성도와 인재유치(retention)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는 만큼 포스트 코로나를 대비하기 위해 HR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역할이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을 가지고 구성원들의 정서를 관리하여야 할까?

첫 번째로 감정에 대해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흔히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쉽게 이야기한다. “우리 회사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이래야 한다. 리더라면 두려워도 의연해야 한다.” 등 이러한 당위적 진술에 어긋나는 감정은 조직 내에서 있어도 못 본 척하거나 회피한다. 이를테면 재택근무로 인한 불안, 두려움, 낯선 근무환경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 급하기보다는 으레 개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장애물로 생각하고 조직에서 어떠한 정서적 언급도 없이 일만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진짜 모습보다 조직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고,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조직에 보여야 하는 감정 사이의 괴리로 인해 조직에 대한 신뢰나 애정이 증가하지 못한다. 반면에 구성원들이 현재 느끼고 있는 불편한 감정에 대해 직접 물어봐 주고, 조언하거나 평가하려 하기 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HR이 있는 회사라면, 구성원들은 조직에 대해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말과 행동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구성원들의 행복을 평소에 주창하던 HR이나 리더가 위기에 직면하여 구성원들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구조조정을 계획하는 경우 구성원들의 실망과 불신은 매우 클 것이다. 평소 주창하던 조직의 가치를 위기의 상황에서도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는지, 말에 행동을 일치시키는 작업이 구성원의 정서관리에 필수적이다. 상황상 불가피하게 임금삭감이나 구조조정 등의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에도 직전까지 아무 말없이 있다가 작전을 펼치듯 갑자기 통보하는 방식보다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어느 정도까지 매출이 감소하면 몇 단계에 걸쳐 임금삭감 혹은 구조조정을 할 예정인지 등을 미리 알리는 편이 좋다. 부정적인 뉴스일수록 사전에 충분히 구성원들에게 맥락과 진행사항을 공유하여 주어 구성원들이 상황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러면 보다 구체적으로 HR은 구성원들의 정서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은 리더나 HR에서 구성원들에게 정기적 으로 상황을 공유하는 메시지를 자주 전달하는 것이다. 상황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불안은 많이 희석된다. 불확실성이 가장 큰 불안의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복하여 조직의 상황과 전략에 대해 자주, 그리고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구성원들이 자기 일에 대해 좀 더 통제감을 갖고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리더가 구성원들의 심리적 어려움에 대해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메시지를 자주 전달하면 구성원들에게 큰 위로와 의지가 될 것이다.

정서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정신과에 진료 온 환자들은 처음에는 자신만 이런 고통 속에 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 모든 사람은 각자의 고통을 짊어지고 있다는 ‘불행의 보편성’을 깨달으며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감정에 대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 통로를 HR이 제공한다면 구성원들은 그 통로를 통해 나만이 이런 심리적 불편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위로와 연대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통로는 화상으로 진행되는 가벼운 회의형태일 수도 있고, 온라인 사이트에 익명으로 올릴 수 있는 게시판 형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형태이건 간에 우리가 현재 느끼는 감정에 대해 센 척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면 구성원들의 심리적 안전감도 회복될 것이다. 최근 온라인 강의를 하면서 채팅창에 현재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자 많은 참가자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표현을 해보니 나만 이렇게 힘든 것 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그런 시간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고 하였다.

세 번째로 보다 직접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다. 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와 같은 전문적 서비스를 도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구성원들에 대해 상담이나 워크숍 등으로 전문가를 만나 직접 도움을 받게 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는 이런 시기에 전사적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검사를 진행하여 다른 부서 대비 스트레스가 심한 부서를 확인하고 근인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전 직원 대상으로 스트레스 및 회복 탄력성에 대한 검사를 진행해 보면 한회사라 하더라도 부서나 부문별로 매우 상이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런 경우 개인적 요인보다는 구조적, 조직적 요인에 대한 접근을 통해 구성원의 전반적인 만족도와 몰입(engagement) 을 제고할 수 있다.

어려운 시기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시기가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 부서라는 외국 회사들의 이름처럼 HR이 구성원들이 내적 경험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거창한 약속, 큰 경제적 보상이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는 작은 제스처, 작은 말들이 구성원으로 하여금 HR에 대해 그리고 조직에 대해 감사와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