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묻는 아베 리더십

2020-04-28     이승환 기자

리더십 부재로 앓고 있는 세계 각국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리더십(leadership)의 사전적 의미는 ‘무리를 다스리거나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의 능력’으로 정의되는데, 학술적으로는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다. 관련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워렌 베니스(Warren Bennis) 남가주대 교수에 따르면 이미 1990년대 후반에만도 리더십에 대한 800개 이상의 정의가 있었다고 하니, 가히 관련 연구자 수만큼이나 많은 정의가 있을 것이라고 해도 허언은 아닐 것이다. 1) 더욱이 리더십은 그 자체의 의미도 제각각이지만, 위기나 변화, 혁신 등 수많은 수식어를 앞에 달면 그 정의에서 특성에 이르기까지 전부 달라져 전반적으로 이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요즘 리더십을 두고 말들이 많다. 코로나19 사태로 100만명 이상의 감염자와 수많은 사상자가 세계 각국에서 확인되면서 각국 지도자들의 위기 시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마스크 사용에 관한 정책의사결정에서부터 진단, 사회적 거리 두기, 지역 또는 국가 봉쇄, 경제적 악영향에 대한 대책 등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온전방위적인 영향에 대한 대처능력이 의심 또는 비판의 표적이 되고 있다.

코로나19의 진원지인 중국에 대해서는 중앙정부 차원의 은폐로 팬데믹(pandemic, 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을 가져왔다는 의혹과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고, 이탈리아 정부에 대해서는 관광 수입의 대가로 1만명 이상의 국민이 희생을 치렀다는 맹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가 팬데믹 상황으로 진전되는 것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괜찮다는 안일한 대응이 이어졌고, 급기야는 확진자 수만 수십만명을 훌쩍 넘어 대혼돈의 상황을 초래하고야 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비판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오는 11월에 있을 선거에서 연임에 실패하게 된다면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쓸 수 있는 위기에 처했다.

흔들리는 아베총리의 리더십

이런 상황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의료계는 물론이고 코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를 필두로 한 정치 지도자들의 수차례에 걸친 비상사태선언 요구에도 불구하고 버티던 아베총리는 결국 2020 도쿄올림픽 개최 1년 연기 결정 이후에야 정부 차원의 코로나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코로나 검진자 규모를 늘리는 등 방역 측면 에서 본격 대응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과는 우려했던 바 그대로였다. 감염자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은 물론 도쿄를 포함한 7개 광역지자체에 신형코로나바이러스대책 특별조치법에 근거한 긴급사태를 선언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2)

당연히 일본 내에서는 지금이라도 이런 조치가 나와서 다행이라는 반응보다는 사후약방문이라는 비판의 소리가 커졌을 따름이다. 특히나, 이전부터 가구당 일주일에 천 마스크 2장을 배포하겠다는 발표로 아베노마스크(아베총리의 마스크라는 의미) 3) 라 비판받던 차에 이번 긴급사태선언이 경제 악화 우려 때문에 지연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가 경제를 위해 국민의 생명을 희생하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어났다. 그 결과 국영방송인 NHK 산하 NHK방송 문화연구소와 민간 방송사인 아사히 TV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내각 지지율이 40%에 근접한 수준으로 추락하는 등 그동안 아베노믹스의 성과 기반으로 견고한 지지율을 보여왔던 아베내각의 신뢰도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4)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인 아베노믹스의 성과

이로써 아베노믹스는 과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인가? 적어도 지금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크다. 2012년 말 등장한 아베노 믹스는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만 하더라도 1980년대 후반 버블붕괴 이후 이어져 온 일본경제의 디플레이션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기대를 모았고, 실제로도 아웃풋갭(output gap)이 마이너스 수준이긴 하지만 0%대로 축소되는 등 일련의 성과를 보여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정치사를 살펴보면 그 어떤 내각도 지지율 하락만큼은 버텨내질 못했다. 잘 알다시피 일본의 정부 형태는 의원내각제다. 때문에 경제나 다른 부문에서 특별히 위기를 초래하지 않더라도 현안 해결 능력이 모자라든지 스캔들 등으로 인해 의회와 국민 또는 다수당의 지지율이 악화되면 내각 총사 퇴와 선거 등의 절차를 거쳐 새로운 내각이 등장하게 된다. 지금처럼 아베내각이 코로나19 사태에 즉각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지지율 하락은 피할 수 없고, 내각 총사퇴 압력은 커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위협은 다름 아닌 일본경제 자체에 있다.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을 제외하더라도 일본경제는 이미 2019년 4/4분기에 소비세 인상 충격으로 역성 장하면서 경기 하방압력이 커진 상황이며, 코로나19로 인한 대외환경 악화 및 2020 도쿄올림픽 연기 결정으로 올해 0%대 성장을 피할 수 없는 환경이다. 여기에 긴급사태선언까지 겹쳐 적어도 상반기에만 GDP가 1% 이상 축소될 수 있고, 연간으로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피할수 없을 것이다.

아베노믹스는 물론이고 아베내각 입장에서는 지금이 절체절명의 순간임에 틀림없다. 당연히 아베내각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GDP의 10% 정도 수준인 56조엔을 넘는 경제대책안을 발표한 지 보름도 채 지나지 않아 거의 2배 수준인 108조엔이 넘는 사상 초유의 긴급추경안을 상정한 것만 봐도 아베총리 자신이나 아베내각이 얼마나 절박한 처지에 내몰려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5) 아마도 이런 정책 노력은 죽어가는 아베노믹스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형국으로 아베총리나 내각 입장 에서는 한 숨 돌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웃풋갭 확대로 디플레이션의 골이 다시 깊어지는 현상은 막을 수 없을 것이고, 내각지지율은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앞날이 불투명한 아베총리

물론 지금 당장 아베총리 및 내각이 총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스스로 자신을 전시의 대통령이라 칭하고,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코로나19 사태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도전이라고 하는 등 각국 수뇌들이 전시와도 같다고 하는 지금, 마땅한 후계자도 없는 상황에서 장수를 바꾸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4연임에 성공했고, 9.11테러 당시에는 아들 부시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하면서 이라크전쟁을 이끌 지도자로 재선된 것만 보더라도 전시에 장수를 바꾸는 것은 근대사적으로도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독일이 군사력을 키워 제2차 세계대전을 준비하고 있는 사이에 히틀러에게 체코슬로바키아 일부를 떼 준 것도 모자라서 대화를 통해 전쟁을 예방했다고 자랑한 탓에 1940년 독일이 유럽과 영국을 침공하자 윈스턴 처칠에게 영국의 수상 자리를 내준 네빌 챔벌린의 사례를 빼면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다만, 문제는 일본 정치의 시계가 도쿄올림픽 연기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쿄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통해 지지율을 한껏 높인 다음 아베총리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에 내각 총사퇴와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였다. 만약, 이대로 진행되었더라면 실질적으로 의회내 참의원보다 우월권을 가지는 중의원선거에서도 자민당이 압승할 가능성이 커질 뿐더러 아베총리의 재임 또는 아베총리 최측근중 누군가가 총리직을 잇는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던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 코로나19 대응이 이처럼 늦어진 것에 대해 일본 국민의 감정은 이미 상할대로 상했고, 일본 국민이 아베총리를 포함한 정부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자신들의 안전이 이처럼 위협을 받는 것은 아베총리 개인 또는 내각 주요 인사들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을 도외시한 결과라는 것이다. 또, 아베총리 스스로가 현재 일본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고 할 정도로 엉망이 된 경제 여건도 결국은 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베총리의 후임은 아베총리 자신이라는 평이 압도적이었던 일본 내 분위기는 이제 언제든 아베 총리의 정치적 생명줄이 끊어질 수 있다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을 때 국민을 움직이는 힘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지도자의 판단이라는 제78대 일본 총리였던 미야자와 키이치(宮沢喜一)의 말처럼, 과연 아베총리의 리더십이 어디까지 발휘될지 지켜볼 일이다.

 

*참고문헌

1) Bennis,Warren G., Burt Nanus, Leaders: The Strategies for Taking charge, HarperBusiness, 1997.
2) 7개 광역지자체는 도쿄도(東京都), 카나가와현(神奈川県), 사이타마현(埼玉県), 치바현(千 葉県), 오오사카부(大阪府), 효코현(兵庫県), 후쿠오카현(福岡県)임.
3) 아베총리의 천 마스크 배포 계획 발표 이후 일본에서는 비판의 의미로 ‘#아베노마스크’ 와 각종 패러디물이 쏟아져 나왔음. 그중에서도 1969년을 시작으로 후지 TV에서 50년 이상 방영된 초장수 국민만화인 ‘사자에씨(サザエさん)’를 이용한 패러디물이 대표적임.
4) 일본의 유명 뉴스배급사인 지지통신사(時事通信社)의 3월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베내각 지지율은 39.3%로 불지지율 38.8%와 거의 동일. https://www.jiji.com/jc/ graphics?p=ve_pol_politics-support-cabinet.
5)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경제대책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4월 아소타로(麻 生太郎)내각이 발표된 56.8조엔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