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 시대, ‘리더의 자격’ 3가지

2020-05-11     박은연 UnaMesa Association 위원

역사를 이야기할 때 기원전과 기원후를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서력기원’의 줄임말로 영문으로는 B.C.와 A.D.로 각각 표기되며 잘 알다시피 B.C.는 Before Christ – 예수탄생 이전을 칭하고, A.D.는 Anno Domini – 라틴어로 ‘주의 해’, 즉 기준점으로 삼은 예수탄생 이후를 칭한다. 그런데 기원후 A.D.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면서 무릇 새로운 기원전과 기원후가 생길 기세이다.

일부에서 B.C.는 Before Corona(코로나바이러스 이전)을 칭하고, A.D.는 After Disease(역병 이후)를 칭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만, 사실 올해를 기준으로 세상에 역사적인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몇 백 년 후의 역사가들은 실제로 이 새로운 기원전과 기원후의 정의를 쓸지도 모르는 일이다.

‘새 부대에는 새 술’이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급증하면서 이전에 하던 방식으로는 통하지 않게 된 리더도 많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리더만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다. 팀단위가 되었든 기업 단위가 되었든 심지어는 국가 단위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삶의 전반에 영향을 끼친다. 국가 단위에서 리더가 새로운 시대의 리더 자격을 갖추지 못해서 실패하면, 성과와 삶의 전반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람이 죽는다. 국가와 지역별 코로나에 의한 피해가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새 시대는 어떤 시대? Virtual Distance 의 시대

새로운 리더의 자격에 앞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 새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일까부터 생각해보자. 재택근무, 유연근무, 디지털 경영, 일의 미래, 4차산업혁명의 시대… 그 외에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물결을 묘사하는 연관 단어들이 많을 것이다.

그중 오늘은 Virtual Distance(가상 거리)의 시대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이는 미국 스토니브룩대학의 교수이며 창업자이기도 한 카렌 소벨-로제스키 박사가 명명한 것으로, 기술이 발달하여 정보를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온라인으로 일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졌다고 협업이 실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온갖 온라인 협업 도구를 갖추었더라도 ‘맥락’이 공유되지 않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의미 있는 소통이 불가능하며, 커뮤니케이션으로 하는 일이 대부분이 된 세상에서는 의미 있는 소통,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으면 일을 하고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때의 맥락이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 그들이 어떻게 느끼고, 그들에게 무엇이 중요하며 무엇이 그들을 움직이는지 - 즉, 상대방의 가치와 동기부여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다. 온라 인으로 간간히 미팅을 하고 주로 이메일과 문서공유로 일을 하는 상황이라면, 서로 얼굴을 자주보고 마주쳐가면서 일할 때에 비해서 이런 맥락을 잡기가 훨씬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카렌 소벨-로젠스키 박사는 이렇게 온라인 세상이 되면서 결여되는 맥락과 그로 인해 발생되는 사람들 사이의 거리를 수 백 개의 기업들을 대상으로한 실증연구를 통해 도출하여 “Virtual Distance(가상 거리)”라고 이름 짓고, 그 안에서 세가지 측면 - Physical Distance(물리적 거리), Operational Distance(운영적 거리), Affinity Distance(밀접성 거리) - 으로 구성되어 있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 가상 거리를 좁히지 못할 경우, 조직의 성공요인들에 미치는 타격도 막심하여 평균 신뢰 93%, 혁신 90%, 구성원만족도는 80%씩 떨어지며, 프로젝트 성공 률도 70%가 감소하여 가상 거리를 좁힌 다른 조직들의 30% 수준에 그치게 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Virtual Distance 시대의 ‘리더의 자격’ 3가지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세계적인 블랙스완급 위기 시에는 이런 가상 거리의 환경에서 제대로 이끌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리더 들이 이끄는 조직 또는 국가는 프로젝트 성공률은 차치하고, 자칫 하면 구성원들의 목숨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까지 된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지나가더라도, 이전으로 원상복귀가 되기보다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가상 거리가 점점 더 확장되고 ‘After Disease’의 새로운 시대로 가는 흐름이 지속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시대에서 ‘리더의 자격’은 무엇일까? 출간된 지 근 십 년이 가까웠지만 지금 매우 시의적절한 책, ‘Leading the Virtual Workforce’에서 제시된 3가지 요소를 필자 나름대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세계의 리더십 사례들에 접목하여 살펴보았다.

리더의 자격 #1: 맥락 만들기

맥락이란 무엇인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서 맥락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전에는 매일 보는 일터의 사람들과 이런 맥락을 잡기가 쉬웠으나, 점점 온라인 소통이 늘어나면서 이전 방식으로 맥락잡기가 어려워지던 중 코로나바이러스로 많은 국가들에서 재택근무가 동시에 실행되면서 급기야 세계적으로 이 맥락 만들기 면에서 지금 당장 변화해야만 대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매일, 그것도 OECD 국가 최고의 평균 노동시간이라는 훈장 아닌 훈장을 달만큼 장시간 노동으로 일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온 한국 조직의 구성원과 리더들은 서로 이 맥락이 풍부하였고, 부족하면 심지어는 근무시간 이후의 회식문화까지 더해서 맥락을 찾을 기회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다 보니 이 맥락을 잘 잡는 사람은 눈치가 빠르다고 칭찬을 듣거나, 아니면 눈치 없다고 타박을 듣기도 한다. 오죽하면 ‘눈치 – 한국 사회에서 행복과 성공의 비결’이라는 사설이 2019년 뉴욕타임즈지에 실렸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 면대면의 상황에서 통하는 맥락 파악이고, 이의 반대측면에서는 그만큼 굳이 맥락을 만드는 노력을 덜 해도 되었기에 갑자기 면대면이 아닌 온라인상에서 일을 하게 된 이 기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리더들과 ‘나는 리더가 아니니까 눈치만 잘 보면 되었던’ 구성원들이 그야말로 세계적인 맥락 변화에 당황하고 있는 경우도 왕왕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희소식도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맥락 만들기는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필자가 본 한 포스팅은 이런 ‘맥락 만들기’의 리더십을 불과 다섯 줄로 보여준다. 특히, “두려움과 자기보호를 위해 격리(quarantine)”에서 “공동의 웰빙을 위해 quaranTEAM”이라는 부분은 한국이 현재 세계적인 방역 모델이 되게 해준 원천 중 하나, 공동체의식으로 맥락을 바꾸어준다. 국가원수가 코로나대응에 필요한 리더십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다가 개인주의의 극단에 속하는 문화를 가진 미국에서 지금 꼭 필요한 맥락 만들기라고 본다. 이런 면에서 또 한가지 주목할 점은 이를 만든 사람이 공식적인 리더의 지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네팔을 주제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곳’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만든 30대 영화감독이다. 요는,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이든 아니든 어떤 맥락이 지금 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가를 생각하고 한두 마디만 맥락 잡는 이야기를 해주면 조직전체에 강력한 긍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리더의 자격 #2: 공동체 키우기

독불장군이나, 심지어 고독한 영웅이더라도 ‘나 홀로’ 리더인 것은이 시기에 맞지 않다. 이는 ‘공동체’라는 단어가 상대적으로 생소한 기업의 리더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조직도 수평적이 되어가는 지금, 제대로 일을 하려면 본인 조직 바깥의 사람들도 공동의 목표와 공동체의식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뉴질랜드의 수상이자 국가원수 중 최초로 재임중 양육휴가를 사용했던 Jacinda Ardern의 리더십은 코로나시대의 ‘공동체 키우기’ 리더십의 좋은 예이다. 다른 나라 신문에서 극찬을 받을 만큼 그녀가 이끄는 뉴질랜드의 대응은 효과적이어서, 4월 중순을 기준으로 단지 한 자릿수의 사망자만이 발생했다. 인구당 발생건수는 한국과 유사하다.

그녀의 코로나에 대한 대응 연설 중 가장 널리 회자되는 구절은 “이런 위기가 우리 뉴질랜드 사람들이 가장 빛날 때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서로를 돌보고,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감쌉니다… 유례없는전 세계적 역병과 경제문제 가운데, 우리의 대응은 사람들을 무엇 보다 우선으로 하는 것입니다… 강해집시다. 친절합시다. 우리는 괜찮을 것입니다.(Be strong, be kind. We will be OK.)”라는 부분이다.
이는 Virtual Distance가 폭증한 코로나시대를 이끄는 리더의 자격 #2, ‘공동체 키우기’의 좋은 예이다. 이 역시 말이 어렵거나 길지 않다. 다른 나라들에 비교해 확진자수도 많지 않은 시점에 일찍 재택령을 전국에 발동한 것이 주효하였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단어만 ‘우리’를 많이 쓴다고 공동체 키우기를 하는 리더가 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사람이 우선이고 공동체 안에서 약자들을 돌보는 용단과 실행으로 옮겨져야만 하는데, 이 젊은 여성 리더의 사례는 After Disease, A.D.에 대한 희망을 조심스레 가져보게 해준다.

리더의 자격 #3: 주위의 다른 새 리더들도 함께 발동시키기

마지막 리더의 자격은 ‘주위의 다른 새 리더들도 함께 발동시키기’이다. 새 시대의 리더들은 종전의 ‘내가 다 책임진다’식의 리더십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조직들이 점점 더 얽히고 설킨 연결망, 네트 워크의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해결하고자 하는 이슈들도 크고 복잡해져서 아무리 거대한 조직이라도 그 내부의 인재들만으로 일해서는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응이 열악한 미국 전체상황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그중에서도 특히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 지역의 지방정부와 주정부의 리더들을 보면 이 ‘다른 새 리더들도 함께 발동시키기’가 어떻게 실행되는지 볼 수 있다. 미국 주 중 가장 빨리 재택령을 발동한 캘리포니아주 안에서도 실리콘밸리지역은 주 차원 재택령이 나오기 전 선제적으로 움직여 미국 최초로 지방정부 재택령을 발동시켰다. 필자의 아이가 다니는 공립학군은 이보다도 더 빨리 움직여 재택령이 발동하기 전 이미 원격수업을 결정했다.

샌프란시스코시의 경우는 시장인 London Breed가 아직 확진자가 50명에 못 미친 시점에 선제적으로 재택령을 발동하려 하자, 그녀의 선배인 국회의원 Kamala Harris에게 전화로 이를 제지할 것을 제안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Harris의원은 “그녀를 믿으세요”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또한 시의 비상대 책부장인 Mary Ellen Carroll이 작년 12월에 선제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이 심각할 수 있다는 정보를 브리핑했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했으며 그림에서 보듯이 트위터에서도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의 근거가 된 과학적 분석을 제공한 리더는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공중보건장인 Sara Cody 박사이다. 주지사를 제외한 전원이 여성 리더인 것도 눈에 띈다.

제2의 기원후, After Corona의 세상에서 한국의 조직들, 더 나아가 한국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새 시대에 맞는 리더십도 꼭 갖추어야 할 요소 중 하나이다. 주목할 것은 이 리더십 모델에서는 본인이 자진 사퇴하지 않는 한 누구나 ‘이끄는 자’라는 뜻인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사뭇 식상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으나, 누구나 리더가 되지 않으면 그가 속한 집단 자체가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로 코로나가 밀어붙인 판이다. 당분간 코로나바이러스와 재택근무가 지속되는 동안만이라도 매일 밤 “나는 내일 이 세가지 리더의 자격 – 맥락 만들기, 공동체 키우기, 다른 새 리더들 함께 발동시키기 - 중에서 어느 부분을 키울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