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세션 시대의 HR
[HR STUDY]
리세션(Recession; 경기침체, 불황) 공포가 커지고 있다. 리세션은 경기가 활기를 잃어 전반적으로 축소되는 현상을 말한다. 미 경제조사국 NBER(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에서는 실질 GDP가 2분기 연속 감소하면 리세션으로 정의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대표적 리세션으로, 이 시기를 1929년 경제대공황인 그레이트 디프레션(the Great Depression)에 빗대어 그레이트 리세션(the Great Recession)으로 부른다.
2022년 10월 발표한 머서(MERCER) 조사([그림])에 따르면, 현재 리세션 중에 있거나 리세션에 접어들고 있다고 응답한 CEO와 CFO는 87%에 달한다. 이 중 절반은 이러한 리세션이 향후 1~2년간 지속되리라 예상했다.1)
기업 입장에서 리세션은 분명 힘든 시기다. 매출이 감소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는 등의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로 그레이트 리세션 동안 미국 GDP는 2008년 0.3%, 2009년 2.8% 감소했고 실업률은 10%에 달했다.
반면 리세션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기업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미국의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살펴보면, 리세션 시기를 거친 4,700개 기업 중 17%는 파산, 민영화 또는 다른 기관에 인수됐지만, 9% 기업은 리세션 후 크게 반등해 매출과 이익성장 측면에서 경쟁기업을 10% 이상 능가했다.2)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Bain&Company)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의 성과는 안정적인 시기보다 리세션 기간에 더 극적으로 갈린다. 성과가 나빠지는 기업은 경기가 안정적일 때보다 리세션 시기에 89%나 더 늘어났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새롭게 각광받는 기업 역시 경기가 안정적인 시기보다 리세션 시기에 47% 더 많았다는 점이다. 이 중 상위 10% 기업은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 내내 실적이 꾸준히 상승했고 이후에도 상승세를 이어갔다.3)
과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리고 리세션 위기가 다가오는 지금, HR은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올바른 결정은 현장에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라파엘라 사둔과 연구진은 어떤 형태의 조직이 리세션을 효과적으로 헤쳐 나가는지 연구했다.4) 리세션 동안 공장관리자가 제품생산, 판매 및 직원고용에 얼마나 의사결정 권한이 있는지와 이러한 권한이 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는데, 의사결정 권한이 많은 조직일수록 급작스러운 위기상황에 보다 잘 대처하고 리세션으로 인한 타격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이는 곧 보다 나은 조직성과로 이어졌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분권화에 따른 이점은 경기상황이 개선되면서 감소했다는 부분이다. 이는 리세션 시기에 현장의 자율권이 특별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리세션 시기가 닥치면 우리는 흔히 중앙집중형 조직을 떠올린다. 현장의 경영상황에 맞춰 각 사업부나 단위조직에서 자율적 의사결정을 하기 보다는, 많은 부분을 중앙에서 통제하고 관리하는 조직운영을 선호한다. 이러한 조직운영 방식이 리세션을 극복하는데 효과적이라 가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선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연구결과는 이와 반대의 시사점을 보여준다.
분권화된 조직이 리세션 시기에 도움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에서 말하는 메시지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리세션 환경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는 점이다. 리세션은 많은 불확실성과 혼란을 가져온다. 중앙집중 경영으로 불확실성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지만, 모든 불확실성을 중앙에서 모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늦은 의사결정으로 리세션을 극복할 적기를 놓칠 수도 있다.
의사결정과 그 실행 권한을 현장으로 그리고 아래로 이동시킬 때, 변화하는 상황에 보다 애자일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점을 연구진은 강조한다. 예를 들어, 시장수요 변화에 맞춰 필요한 인력을 즉시 채용하거나 동결하는 결정을 현장에서 수시로 행하는 게 보다 적절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운영 방식은 현장의 전문성에 의지해 조직을 애자일하게 만드는 조치다. 간혹 기업들은 리세션 시기에 의사결정을 보류하는 함정에 빠진다. 그러나 위기를 극복하는데 있어 도전과 실험은 필수적이다. 도전과 실험을 쌓은 결과는 리세션은 물론이고, 리세션 이후의 기업성과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조직구조 자체를 분권화하지 않더라도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여러 이해관계자로부터 의견을 활발히 수집할 있는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리세션은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기회를 위기로만 인지하고 의사결정을 주저할 때 기회는 곧 위기가 된다. 리세션을 앞둔 지금, 애자일한 의사결정을 돕는 조직운영을 고민할 시기다.
인건비, 그 이면을 바라보기
리세션 시기에는 인력감축을 불가피한 조치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2000년 리세션 이후 2008년까지 연간 88만 명에서 150만 명이 해고됐다.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에만 210만 명이 해고됐다. 맥킨지가 2,000개 미국 기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인원감축을 실시한 기업은 65%에 달했다.
그러나 구조조정과 같은 인력감축은 장점과 함께 단점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이 인력감축으로 인건비 절감 효과를 거둘 거라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리세션 이후의 재고용과 교육훈련을 감안하면 인력감축은 장기적으로 비용이 더 드는 조치일 수 있다.5) 심지어는 인력감축 자체가 재무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리세션으로 인해 인력감축을 발표한 기업들은 며칠 동안 주가하락을 경험했다. 이후 대다수 기업은 수익 하락을 겪으며 이익 감소가 3년 동안 지속됐다.6)
비용 효익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인력감축이 구성원 사기와 조직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들어 경기침체를 예상하며 경비지출은 물론이고 인력감축을 고민하는 국내기업이 늘고 있다. 규모와 업종을 가리지 않고 희망퇴직 칼바람이 분다는 소식에 구성원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실제 한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8명은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7)
단기적 이익개선 조치이긴 하지만, 인력감축으로 인해 발생하는 기업이미지 훼손, 숙련된 인적자원 유실, 구성원 몰입 악화, 자발적 이직 증가는 기업의 장기적 이익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건비 절감이 목적이라면, 인력감축만이 인건비를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 무급휴가, 성과급 재설계 등도 인력감축과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대안이다.
포춘 100대 기업 하니웰(Honeywell)은 우주항공, 자동제어, 특수화학 분야에서 전 세계를 선도하는 다국적 기업이다. 하지만 건실한 하니웰이라도 리세션을 피해 가긴 어렵다. 실제로 하니웰은 2000년 리세션에 긴축경영 조치로 20%가량의 직원을 해고했다. 이 여파로 리세션 이후 경영성과를 회복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하니웰은 이 과정에서 교훈을 얻은 듯하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는 2000년 해고 조치와는 달리, 무급휴가 또는 부분적 유급휴가를 운영하며 1~5주간 일시적 인력감축 조치를 취했다. 이와 같은 조치로 하니웰은 약 2만 명의 일자리를 보호했다. 또한 2008년 리세션은 2000년 경기침체보다 훨씬 심각했지만, 매출과 순이익 및 현금흐름 모든 측면에서 2000년 때보다 나은 상태로 2008년 금융위기를 벗어났다.8)
일시적 휴직이나 근로시간 단축, 성과급 재설계 등이 매력적인 점은 기업이 근로자에 대해 여전히 재량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전략적이지 않은 전반적 임금삭감이나 고용동결은 구성원의 사기를 꺾고 우수한 직원의 자발적 이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리세션이라는 경영환경과 씨름하면서 조직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사항은 현재 인력이 경영상황을 극복하고 이후 성과를 전환하는데 필수적인가의 여부다. 단기적 재무상황을 무시할 순 없지만, 인적자원이 궁극적으로 조직의 지속성과를 창출하는 생명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HR 컨틴전시 플랜을 수립하라
결국 리세션 속에서 차이를 만드는 비결은 준비에 달렸다. 베인앤컴퍼니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침체된 기업 중 “미리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비상계획)을 세우거나 대안적 시나리오 준비한 기업은 거의 없었다”고 전한다.
리세션이 닥치면 반사적으로 생존모드를 발동해 보수적인 경영방식으로 전환하는 기업이 대부분이다. 전면적 비용절감이 리세션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으로 가정하고 예산삭감, 인건비 축소, 채용동결, 정리해고 등의 조치를 취한다. 어떤 기업들은 아예 행동하기를 멈춘다. 의사결정을 미루고 관망 자세를 취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대증적(對症的) 접근이 정답일 수는 없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경영환경에서 대응적이고 보수적인 전술만을 펼치는 HR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에 따른 컨틴전시 플랜을 준비하는 자세가 리세션 시기 HR이 취할 보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변화에 맞춰 발 빠른 태세 전환과 대응이 조직분위기를 회복시키고 성과를 만드는 데 보다 유리하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답해볼 필요가 있다. 리세션을 앞둔 우리 회사의 재무적 상황은 어떠한가, 경쟁사에 비해 강점이 있는가, 인재에서 매력도는 충분한가, 리세션으로 인한 구성원 이탈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리세션을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인재는 누구인가 등을 가늠해보며 우리 기업만의 HR 컨틴전시 플랜을 고민해 보자.
1) CEO and CFO views on the economy and related business and workforce strategies, MERCER (2022.10)
2) Roaring Out of Recession, HBR (2013, 3)
3) The New Recession Playbook, Bain & Company (2022.7)
4) Turbulence, Firm Decentralization and Growth in Bad Times, Harvard Business School, Raffaella Sadun (2021.1)
5)The Hidden Costs of Onboarding a New Employee, Glassdor (2020)
6) Causes and Effects of Employee Downsizing, Journal of Management (2010)
7) 직장인 10명 중 8명 “고용불안 느껴”…고물가·경기침체, 뉴시스 (2022.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