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의 XR 전쟁과 HR
[GLOBAL REPORT - 미국]
올 여름 바야흐로 XR의 삼국지 시대가 열렸다. XR이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과 AR(Augmented Reality, 증강현실) 그리고 이 둘을 섞은 MR(Mixed Reality, 혼합현실)을 아우르는 개념으로 Extended Reality(확장현실)의 줄임이다. 애플-메타-소니의 확장현실 3파전을 단기적 시장전략과 장기적 비전으로 비교해보고, 한국 HR에의 함의를 찾아보자.
XR 기기 삼국지 시대가 열리다
XR 기기의 삼국지는 2023년 6월 애플이 WWDC(세계개발자대회)에서 XR 플랫폼 전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시작됐다. 애플의 CEO 팀 쿡과 협업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기로 한 디즈니의 CEO 밥 이거까지 함께 등장해 깜짝 이벤트로 ‘비전 프로(Vision Pro)’를 공개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올 초 마이크로소프트와 디즈니가 헤드셋 기기 시장에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면서 잠시 주춤했던 XR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됐다. 내년 초로 출시가 예정된 애플이 비전 프로, 현 시장의 최대 강자인 메타의 XR 플랫폼인 퀘스트(Quest) 시리즈, 그 뒤를 잇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 기기와 그 배후의 시장 전략이 제각각 달라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애플의 Vision Pro 출시
비전 프로의 실질 판매는 2024년 초로 예정돼 있다. 책정 가격은 미화 3,499달러로, 자주 비교되는 메타의 퀘스트프로(999달러) 또는 곧 출시될 퀘스트3(499달러)보다 월등히 비싼 가격이다. 애플은 이 과정에서 ‘공간컴퓨팅(Spatial Comput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이미 많은 업체가 들어선 AR/VR 시장과 차별화하려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이는 맥북이나 아이폰의 성공 공식의 큰 부분이었던 자기만의 OS와 생태계를 추구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 아직 출시되지 않았으므로 시장점유율은 물론 0%다.
▶메타의 퀘스트, VR 헤드셋 시장 No.1
반향을 일으킨 것은 애플이지만, 사실 현재 XR 기기 시장의 최고 강자는 메타다. 산업분석기관 Counterpoint의 조사에 따르면 2023년 1/4분기 기준으로 메타의 퀘스트 시리즈가 전 세계 XR 헤드셋 시장의 49%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2014년 오큘러스를 인수한 이래 약 10년 동안 7개의 모델을 출시하고 사명도 메타로 개명했지만, 아직까지 흑자전환이 요원하고 AR/VR 기기 시장 자체도 경제악화의 영향이 겹쳐 부진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애플의 비전 프로가 경쟁자로 등장한 것이 전체 기기시장의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소니의 PSVR, 현 VR 헤드셋 시장 No.2
애플의 비전 프로 판매 소식이 나오기 전까지 메타의 가장 큰 경쟁자는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PS VR) 시리즈로 현재 시장점유율은 32% 선이다. 나머지 경쟁자들은 7% 이하로 극히 미미하다. 현재까지 소니의 기기는 게임기기인 플레이스테이션의 부속 개념에 머물러 있고, 메타가 일터에서 VR 기기 사용을 유도하고자 시도했던 호라이즌월드도 개성을 중시하는 타깃 사용자 층의 요구를 맞추지 못해 도입이 아직 미미한 상태다.
애플-메타-소니의 XR 단기전략 비교
이런 XR 시장의 현황과 3대 기업들을 보면 마이클 포터의 일반전략(Generic Strategy)론이 떠오른다. 투자와 리스크가 막대한 분야인 만큼 세 기업 모두 기존의 성공경험에 상당히 의지하며, 이에 따라 XR 헤드셋 기기의 단기 전략을 선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애플 - 아이폰의 성공과 차별화 전략(Differentiation)
애플은 고전하던 맥북을 돌이킨 것은 물론이고 아이폰으로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독식했던 성공경험이 있다. 이에 따라 XR 시장에서도 독자적인 플랫폼과 OS로 사용자 경험을 차별화하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 강자로 군림하는 방식을 재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즉, 애플은 차별화(Differentiation)를 추구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메타 - 페이스북의 성공과 가격우위 전략(Cost Leadership)
메타의 현재까지의 XR 시장전략은 선점한 후 주로 원가우위를 통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으로 가격우위(Cost leadership) 전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메타는 빅테크의 전신인 ‘FAANG’으로 등극하게 해줬던 페이스북을 통해 소셜미디어 시장을 선점하고 훨씬 큰 구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그 우위를 지켜낸 기억이 있다. 이는 시장선점이라는 면에서는 유사하지만, 페이스북 당시 네트워크 효과를 통한 사용자층의 폭발적 확대라는 면은 아직 XR 시장에서 재현해내지 못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소니 - 플레이스테이션의 성공과 집중 전략(Focus)
소니는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는 사용자에 초점을 맞춰 시장을 확보하는 집중(Focus)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소니는 주력부문인 게임에 부속기기로 접근을 해 가장 소극적인 모습이며, 그런 전략적 접근이 현재 XR시장에서의 위치로 나타난다. 이것이 메타나 애플에 비해 유독 관심을 받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공상과학 소설에서 엿보는 XR 삼국지의 장기 비전
인사와 경영리더라면 모바일과 같이 차세대 새로운 플랫폼으로 이야기되는 AR/VR/XR 기기의 3파전과 단기전략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장기적으로 일터에서 어떤 시사점이 있을 것인가를 미리 내다보고 준비해야 한다.
XR이 일터에 어떤 영향이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면 이 두 빅테크 기업이 내세운 최신 기기의 연장선에 있는 응용, 사용자경험 그리고 사회적인 영향까지를 내다봐야 한다.
다소 엉뚱하지만 공상과학 소설에서 그 단초를 엿볼 수 있다. 많은 빅테크의 창업자들과 지금 핵심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리더들이 청소년 시절 읽던 공상과학 소설에서 영감을 받았던 것을 지금 ‘문샷(Moon Shot)”으로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애플과 ‘무지개의 끝’
그렇다면 애플의 비전 프로가 시사하는 미래상은 어느 공상과학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공상과학 소설을 즐기는 필자의 견해로는 2007년 이 분야 최고의 영예중 하나인 휴고상을 수상한 <무지개의 끝(Rainbows End)>이 아닐까 한다.
국제 비즈니스 미팅이 열리는 첫 장면, 장소는 바르셀로나인데 곧 알 수 있듯이 실제로 이 거리의 카페에 앉아있는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참석자는 사실 세계 각지에서 가상의 바르셀로나 카페에 아바타로 참석한다. 이들은 대부분은 약간 투명한 것을 제외하고는 실물과 구분이 되지 않는 서로를 보면서 세세한 표정도 읽고 대면과 같은 대화를 하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소셜미디어에서 보내는 것과 같은 실시간 메시지도 주고받으며 진행한다. 진동과 같은 촉각도 로봇 등을 활용해 전달된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이 혼합돼 사용되는 확장현실(XR)의 영역이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자 하는 한 참석자는 표정도 있고 말도 하는 토끼의 형상으로 참석한다. 현실에서는 토끼가 지을 수 없는 표정이나 테이블에 뛰어내리는 버릇 등 아바타만의 ‘물리적’ 특성과 버릇도 있다. 미팅장을 떠나갈 때도 마치 바르셀로나의 같은 거리의 카페에 있는 듯 주최자의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 몇십 미터 떨어진 골목까지 뛰어가는 모습이 모두에게 보인다. 애플의 비전 프로가 시도하고 있으며, 애플이 차별화점으로 강조하고 있는 ‘공간’의 확장인 것이다.
이 모든 정보와 경험을 전달하는 기기는 웨어러블이다. 경제적 또는 다른 이유로 이를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 가능하더라도 거부하면서 굳이 컴퓨터로 소통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뒤쳐졌다는 취급을 받는다. 오늘날 컴퓨터나 인터넷을 쓰지 않는 사람들과 유사한 것이다.
애플이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장을 지배한 것과도 흡사하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조사결과 2021년 아이폰은 글로벌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의 60%를 넘었고, 2022년에는 세계 스마트폰 모델 판매순위 1위에서 4위를 차지했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필두로 XR 기기에서도 이 같은 독립 OS와 자체 생태계를 만들어 무지개의 끝에서 엿보이는 웨어러블로 시장을 지배하는 그림이 보인다. 애플이 얼마나 이를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가 내년 초 비전 프로 출시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메타의 장기전략, ‘페리퍼럴’
그렇다면 메타의 퀘스트 시리즈가 시사하는 미래상은 어느 공상과학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페이스북에서 메타로 사명을 개명한 배경의 <스노우크래쉬(Snow Crash)>에도 XR 기기가 나온다. 특히 주인공의 부모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가상현실이 주는 대리만족에 몰입해 현실의 어려움에서 도피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2023년 현재 메타의 XR 미래상에 더 가까운 것은 또 다른 휴고상 수상작가인 윌리엄깁슨의 2014년 소설 <페리퍼럴(Peripheral)>이라고 본다. 사이버펑크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작가가 그리는 XR은 그 사용의 묘사에서 ‘햅틱(Haptic)’ 즉 촉각을 강조하며 더 먼 미래에는 ‘페리퍼럴’ 즉 주변기기라고 불리는 로봇 신체와 연결해 지구 반대편 지역에서의 경험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세상이 돼 있다. 이 페리퍼럴은 혀로 작동할 수 있다. 이 역시 몰입이되 오감 모두가 XR에서 경험 가능한 세상으로 애플의 공간 확장과는 다른 방향성이다.
이 장기 비전에 대비해 보면 현재 메타의 퀘스트 시리즈나 호라이즌월드에서 부족한 것은 단연 몰입을 유도하는 요소다. 아바타의 개성이 됐든, 페리퍼럴과 같은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는 오감의 경험이든 몰입을 유도하는 콘텐츠와 이를 뒷받침하는 기기를 실현해내지 못하면 일터에서 메타의 XR이 주요 플랫폼이 되는 성공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소니의 장기전략?
소니의 경우는 사실상 현재 주요 상품인 플레이스테이션의 연장선인 바, 상대적으로 장기적 방향성을 엿보기가 어렵다. 굳이 꼽아보자면 위에서 언급한 윌리엄 깁슨의 80년대 초기작들에서 언급되는 ‘심스팀’이라고 불리는 가상현실 세계의 오락과 드라마에 중독돼 생활하는 인물들이 떠오르나, 이와 같은 장기비전의 부재에 비춰보면 소니가 일터에서 XR을 장악할 확률은 낮다고 본다.
XR 전쟁이 한국 HR에 주는 시사점
소니, 애플, 메타 각각의 현재 시장전략과 미래 방향성을 점쳐봤다. 지금까지 보이는 한국기업들의 XR 플랫폼 시장에의 진입과 전략은 이 셋 중 어디와 비교해도 소극적이다.
컴퓨터가 집집이 들어서게 됐던 한 세대 전, 이 물결에 적극적으로 타올라 성장하고 성공했던 경험을 생각하면, 이 시점에서 애플과 메타의 XR판을 관전만 할 것이 아니라 XR 시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상을 그리고 적극적 전략을 선택해 볼 때가 아닐까.
그러면 지금 당장 인사에 어떻게 XR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끌 수 있을까? 메타버스에서는 사용자들이 동시에 제작자들이기도 하다. 인사에 적용하면 구성원이 곧 인사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이거나(HRM),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가르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HRD).
이런 움직임은 이미 일어나고 있으며 특히 교육부분에서는 ‘권위 있는 설명서에서 배우기보다는 서로에게/동료에게 배운다’는 게임세대–밀레니얼 세대의 특성과도 맞물려 조직에서의 교육/개발을 상당부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런 개성과 개인의 기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나가는 것이 XR 플랫폼에서 일하는 시대를 미리 대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글 _ 박은연 UnaMesa Association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