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에서 서류전형의 의미와 시사점
채용 프로세스 첫 단계는 보통 서류전형이다. 지원자들이 제출한 서류를 기반으로 한번 거르게 되는 것으로, 이때 제출하는 서류는 대개 학력사항, 경력사항, 경험, 교육사항 등이 기재된 ‘인적사항’과 회사가 제시한 항목에 맞추어서 작성된 ‘자기소개서’로 이루어져 있다. 인사에서는 대체로 전자는 정량평가로, 후자는 정성평가로 해서 필기, 면접 등 채용의 다음 전형에 적합한 이를 통과시킨다.
사회의 발전, 그리고 채용환경의 변화, 신기술의 도래 등으로 채용에서의 서류전형은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특히 자기소개서의 경우는 타인 및 AI 등의 대필 논란으로 현재 ‘무용론’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이하에서는 서류전형에 관련된 국내기업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여러 이슈를 분석해 보았다.
에헴, 옛날 옛적엔!
대기업 A에서 인사업무를 시작했던 필자가 처음 서류전형을 했을 때는 지원자 정보를 온라인이 아닌 서류로도 받았던 시기였다. 그룹 공채인 만큼 지원자 서류는 산더미 같이 쌓였고, 이를 평가하기 위해 10여 명의 TFT(Task Force Team)이 꾸려졌다. 당시의 리더는 “잘못 평가해도 모두가 한 사람처럼 평가한 듯한 결과이면 괜찮다”며 평가자 간 시각일치를 가장 강조했다. 그래서 자기소개서 평가를 위한 공통의 기준을 정립하기 위해 세세한 평가항목을 설계했다. 평가에 이견이 생길 만한 독특한 서류가 나오는 경우에는 모두가 모여서 치열하게 점수부여에 대해 토론했다. 이렇다 보니 일주일이 넘는 긴 시간이 투입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상대적으로 업무부담이 적은 2 ~ 3년 차의 젊은 직원들을 동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소개 항목을 공란으로 제출하면서 “귀사에 대한 백지장같이 순수한 제 마음입니다”라고 쓰거나, 지원 회사에 대한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석/제안서를 따로 제본·인쇄해서 제출하는 등, 낭만(?)이 넘치는 서류들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수십 년 전이었다 해도 평가까지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이런 서류들도 기준에 의거해서 엄정하게 평가를 했다.
자소서, 대신 써드립니다!
취업난이 장기화되고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취업시장은 상업화·전문화·고도화됐다. 소위 ‘취업 전문’을 자처하는 여러 서비스, 솔루션이 대거 등장했고,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업체들이 생겨난 것이다.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기는가 하면, 워너비 회사에 대한 ‘합격자소서’가 거래되는 모습을 취업커뮤니티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또한 ‘자소서의 연금술사’라는 식의 수식어를 곁들인 자기소개서 첨삭지도사가 등장했는데, 이에 따라 문장력이 수려한 국문과 출신, 그리고 이미 합격한 재직자 혹은 목표로 하는 회사의 인사담당자 등이 한때 인기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들해질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분명했다. 서류전형에서 평가받는 자기소개서는 작문 테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문장력은 서류전형 합격 여부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또한 아무리 실력이 좋은 누군가가 손을 봐준 자소서라 할지라도 수준에 미달하는 지원자가 합격하기는 쉽지 않다. 지원자 본인에 대한 내용을 어필해야 하는데 남들이 대신 써 준 자소서는 아무래도 본인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소서 내용은 보통 면접에서 철저한 검증을 거치는데, 이 과정에서 결국에는 대필 여부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공정채용, 서류전형도 이렇게 바뀌었다!
최근 들어서는 채용 공정성이 강조되면서 기존 서류전형 평가에 없던 새로운 방식과 항목이 등장했다. B사는 공정성을 위해서 자기소개서 평가를 서로 다른 평가위원이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 즉 같은 지원자가 작성한 1, 2번 항목은 ‘가’ 위원이, 3, 4번 항목은 ‘나’ 위원이 평가를 해서 합산하는 방식이다. 얼핏 들으면 지원자의 익명성이 더 강화돼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방식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사실 서류전형은 서류 전체를 보면서 해당 인물을 파악하고 평가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평가할 경우 항목마다의 맥락이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2, 3번 항목을 cut & paste 기능으로 복사해서 똑같이 작성한 지원자가 서류전형에서 합격을 하고 말았다. 1, 2와 3, 4를 별도로 보는 다른 위원들은 이를 잡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B사는 면접에 가서야 해당 지원자를 불성실 작성자로 조용히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
또한 블라인드 채용을 하는 회사에서는 지원자가 작성한 서류평가 항목에서 블라인드 위배 여부를 면밀하게 체크해야 했다. 본래 취지는 차별을 유발하는 개인신상을 작성해서 이득을 보는 지원자를 잡아내는 목적이었으나, 일단 기준이 설정되면 선의의 지원자까지 탈락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C사는 서류작성 시 참고할 수 있도록 ‘블라인드채용 위배 실수사례집’을 만들기도 했다.
서류전형, 대신해 드립니다!
직원들을 차출해서 서류심사를 하게 하는 것은 과거의 일이 되어버렸다. 채용절차가 점점 고도화됨에 따라 많은 기업은 이제 서류전형을 직접 하지 않고 외부에 위탁하기도 한다. D사는 자기소개서 평가를 전문 외부 업체에 이관했는데, 평가를 다 마친 후 마감이 임박한 시기에 평가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재평가를 요청하면서 업체의 빈축을 샀다. 처음에는 기준에 맞추어 점수를 부여하는 평가만 하면 되었는데, 회사명 오기재 등의 불성실 사례를 잡아내지 않았다며 이를 뒤늦게 지적한 것이다(판단하기 애매한 사안에 대한 키워드 예시를 D사가 평가 뒤에 제시했다고 한다). 평가를 시작할 때 미리 강조해서 이야기를 했다면 그런 면까지 세심하게 봤을 테지만 이미 한번 평가를 마친 고학력의 평가위원들에게 그런 단순작업을 다시 부탁하기가 쉽지 않아 업체가 난감해진 것이다.
현재는 D사의 사례처럼 회사명 오류, 맞춤법, 블라인드 위배 등을 잡아내는 것은 일차적으로 시스템을 이용한 자동 필터링이 대신하는 시대이다. 일부 회사는 AI 기술까지 활용하고 있는데 오류를 잡는 정확도가 사람보다 뛰어난 면도 있다. 그러나 아직은 100% AI 기술에만 의존하여 서류전형을 진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AI 기술 자체에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까지는 기계가 잡아낸 것도 반드시 사람이 한 번 더 검증해야 한다.
설록 홈즈가 서류전형을 한다면?
유명한 소설 속 탐정, 셜록 홈즈는 몇 가지 증거만으로 인물의 직업이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필자는 채용 서류전형 단계에서 실제로 이런 상황을 목도한 바 있다. 범죄 프로파일러로 유명한 E 교수님은 당사의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 분은 ‘채용의 셜록 홈즈’라고 할 만하다. E 교수님은 서류를 볼 때 특히 인적사항 부분을 세심하게 본다. 그리고 추리를 통해 지원자를 그려보는데 매우 날카롭고 정확하다. 예를 들어 “이 지원자는 2번째 회사에서 3번째 회사로 옮길 때 굴곡이 있었네요.” 하면서 면접에서 촌철살인의 질문을 통해 지원자에게 확인하기도 하는데, 지원자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를 잘 찾아내서 놀라움을 자아낸다. 이처럼 서류를 심사할 때 상상력을 발휘해서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우리 회사, 우리 직무에 잘 맞을까?’하는 자세는 매우 좋다고 본다.
비슷한 맥락으로 F사의 한 면접관의 서류를 보는 태도도 기억에 남는다. F사는 합숙의 형태로 면접을 보는 금융기관이다. 면접관도 지원자의 서류를 정독하며 연수원에서 밤을 새워 집중한다. 필자는 앞서 언급한 면접관의 지원자 서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서류에 줄을 치거나 메모를 하거나 했던 모습이, 흡사 시험공부를 하는 학생처럼 매우 치밀하고 꼼꼼했던 것이다. 해당 면접관이 서류 정독 후 했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제일 아쉬울 때는 열심히 정독해서 그려진 지원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데, 면접에 오지 않은 경웁니다. 정말 어떤 인물인지,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맞는지, 우리 회사에 어울리는지, 꼭 만나보고 싶었는데…”
인사, 그리고 채용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라고 보았을 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자기소개서 표절을 어떻게 봐야 할까?
표절은 음악이나 미술, 논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남들이 작성한 우수한 자소서를 활용해서 작성하곤 한다. 필자는 처음에 자소서 표절에 대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어차피 ‘자기 자신을 기술하는 건데, 남이 쓴 문구를 좀 빌려 쓰면 어때?’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몇 년 전 발전사인 G사의 서류전형 심사를 하다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수백 장의 신입 자기소개서를 보는데, “어렸을 때 정전을 경험하며 전기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선했는데, 같은 전형에서 어렸을 때 정전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한 지원자가 7명이나 나와버렸다. 당시 다른 평가자들과 이야기해 보니 G사의 합격자소서가 돌았던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들이 대다수였다. 추가로 논의한 결과, G사의 서류전형 평가자들은 ‘정전 경험자’들에게 모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지원자들은 좀 더 좋은 결과를 바라고 해당 표현을 도용한 것이겠지만 결과는 매우 좋지 못했다. 즉 ‘합격 자소서’를 참고하는 것은 괜찮지만 표절을 하는 것은 지금의 기술로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안 하느니만 못한 것 같다. 하나의 전형에서 서로 다른 지원자들 간에 동일한 문구가 발견되는 경우 담합, 도용 등의 성실성 문제가 부각되기 때문에 감점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명언이나 유명인의 심금을 울리는 연설 중 일부 등을 발췌하는 것마저도 표절로 취급해 서류평가 점수를 낮게 주는 것은 재고해 볼 문제이다. 즉, 해당 채용에서의 지원자 간 표절, 합격자소서 표절 정도 수준으로 자기소개서 표절을 검토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생성형 AI가 등장했다!
또 하나의 이슈가 있다. 지원자들의 입사지원 서류를 작성해 줄 수 있는 생성형 AI가 등장한 것이다. 필자는 월간 인재경영 2023년 3월호를 통해 “챗GPT 광풍? - AI와 인사채용의 변화’에서 자소서 작성을 시켜봤던 경험을 공유한 바 있다. 그때는 하나의 지시로는 만족스럽지 않아 2~ 3번의 추가 지시를 거쳐 자소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최근 다시 동일한 방법으로 자소서 작성을 지시하자 단 한 번에 거의 수정이 필요 없는 완벽한 문서가 나왔다. 그 사이에 AI의 학습기능으로 자소서 작성을 많이 훈련한 듯하다. 과거에는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주었다면, 이제는 AI가 대신 자소서를 대필해 주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올해 H사의 인사팀에서는 이런 방식 역시 일종의 표절로 간주하고 AI가 작성한 자소서를 잡아내는 기술을 가진 회사의 서비스를 활용해서 감점 처리하겠다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내용만 사실이라면 AI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시대별 여러 사례를 들었지만 갈수록 채용에 있어서 서류전형, 그중에서도 자기소개서의 중요도는 점점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했던 시대와는 달리 지금은 AI를 비롯한 여러 서비스가 나와 있기 때문에 조작, 대필 등의 우려로 진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 전 필자가 채용설계를 컨설팅했던 I사의 인사팀은 아예 서류전형을 폐지하자고 제안을 했고, 필자 역시 I사의 여러 상황을 감안해서 동의를 했다. 최종 보고를 대표이사에게 했었는데, 당시 대표님의 말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요새 대필, 표절의 우려는 있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자신이 직접 자신에 대해서 기술하는 진정성 있는 지원자가 더 많지 않을까요? 대다수의 지원자를 믿고 우리 역시 진심으로 그들을 파악하는 데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오히려 컨설팅 결과와는 반대로 서류전형을 좀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필자 또한 I사 대표님의 의견에 동조하는 쪽이다. 입사를 희망하는 지원자의 진정성 있는 서류는 언제나 진심을 가지고 정독할 가치가 있다.
글_엄명섭 트리피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