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청색시대

2012-11-05     권영설 한국경제 편집국 미래전략실장/한경아카데미 &

 

피카소는 지금도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야말로 시대를 풍미한 천재요, 또 끊임없이 화제를 몰고 다닌 예술가여서도 그렇지만 실제 그가 산 시기(1881~1973)가 우리와 겹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부와 명예를 다 누리면서도 장수까지 한 그였지만 그 역시 무명화가로서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연구가들은 이 시기를‘청색 시대(1901~1904)’라고 부른다. 이름 그대로 청색시대는 피카소에게 가장 우울한 시기였다.

1901년 당시 스무 살이었던 피카소는 가난했다. 돈을 벌지 못해 차가운 빵으로 연명해야 했고 너무 추워서 그림을 태워가며 언 몸을 녹여야 했다. 가까운 친구 카사헤마스가 죽자 피카소는 자신도 제대로 먹지 못해 눈이 멀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다.

고통의 시절은 모두 겪는 것
‘장님의 식사’, ‘자화상’, ‘인생’, ‘비극’ 등 이 시기 대표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깡마르고 눈이 움푹 들어가 있으며 비정상적일 정도로 팔다리가 길게 그려졌다. 그리고 모두 차갑고 우울한 코발트블루 등의 푸른색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청색시대로 세상을 보면 인생은 하나도 아름다울 것이 없고 절망과 불행의 연속으로만 느껴지게 돼 있다. 피카소의 청색시대가 2012년 지금의 우리사회와 겹쳐지는 건 과장된 반응일까.

최근 기업 현장에 가보면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심각한 수준이다. “도대체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마감일인 월말로 갈수록 거래업체에 전화하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한다.

실제 주머니를 열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사람이 너무 많은 탓이다. 스스로가 저소득층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50.1%(현대경제연구원 설문)에 이르는 현실이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이 절반은 된다는 뜻이 된다. 건강해도 나이 때문에 퇴직해야 하고,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전쟁을 치러야 하며 괜히 집을 샀다가 이자 때문에 쓸 돈이 하나도 없는 ‘하우스 푸어’가 되고 말았으니 인생이 즐거울 수 있겠는가.

생존을 목표로 신념 가져야
특히 지금 생계를 위해 창업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금융회사들이 하루아침에 영업정지되고 잘나가던 회사들이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폐업하는 사업체들이 속출하니 불안하기만 할 뿐이다. 고전하다 휘청거리기라도 하면 퇴직금까지 다 날릴지 모르는 생계형 창업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갈 뿐이다.

그러나 더 나아질 것이란 희망은 어쩌면 이런 청색시대에 자라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회사란 창업하고 생존에 성공하고 난 뒤라야 성공을 거둘 수 있고 성공해야 사회를 변화시키는 공헌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창업자는 그 첫 과제가 생존이고 생존은 고통과 고난을 수반하는 것이다.

피카소도 그랬다. 4년여의 청색시대를 마감한 그는 1905년 몽마르트에 정착하면서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된다. 그의 그림에선 푸른색이 사라지고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피카소의 ‘장밋빛 시대’라고 부른다.

개인이든 회사든 나라든 청색시대를 겪을 수밖에 없다. 거기서 절망하지 않고 노력하며, 내일은 더 나은 날이 온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만이 장밋빛 시대를 맞을 것이다. 대신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