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가치들 사이에서 저글링하기

2012-11-05     유인종 LG생활건강 HR부문장

근래 들어 필자가 몸담고 있는 그룹의 인사 커뮤니티나 외부의 인사담당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눠보면 인사업무 하기가 점차 녹록치 않다는 넋두리를 자주 듣는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원인을 들 수 있겠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상반되는 가치들을 밸런싱 해야 하는 환경에 기인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왜 예전처럼 상이한 가치 중 하나만 취하면 되지 다른 하나까지 고려해야만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모든 인사행위의 지향점, 즉 사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From Fast Follower to the First Innovator
밀레니엄 이전까지 우리 기업의 유효한 경쟁전략은 ‘Fast Follower’였다. 즉, 부족한 기술이나 아이디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초일류기업들의 제품을 재빨리 모방하여 효율성이 높은 생산과정을 거쳐 선진기업과 거의 비슷한 품질의 제품을 싼 가격에 출시하여 경쟁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최근 애플과 삼성간의 특허소송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한국기업도 더 이상 예전의 전략을 가지고 경쟁하기는 힘들어 졌다. 이제는 ‘First Innovator’로의 탈바꿈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Fast Follower로 만족할 수 있던 시절에는 명확한 사업전략만큼이나 사업을 뒷받침하는 인사의 방향성도 명료했다. 판매 및 생산계획에 의한 대량 채용, 연공서열로 표방되는 경험치를 존중하는 인사시스템, 개별적인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공통적인 인사관리방식 등이 별 이상 없이 잘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전략의 중심축이 First Innovator로 이행하기 시작하면서 인사 커뮤니티를 향하여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형평성을 지킨다는 미명 아래 기존의 관습만 고수하지 말고 새로운 접근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One-size-fits-all vs. Multi-layered Model
좀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회사에는 세 가지의 유형의 사람, 즉 후진국형, 개발도상국형, 그리고 선진국형 아이덴티티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 표현을 좀더 가다듬자면 산업시대의 근면형 근로자, 정보화 시대의 지식형 근로자, 그리고 개념화 시대의 창조형 근로자라는 상호 특질이 상이한 세 그룹이 동일한 조직, 동일한 시점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성원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회사는 산업시대의 근면형 근로자의 특성을 반영한 제도, 즉 “모든 종업원을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대우한다”라는 가치에 기반 한 ‘One-size-fits-all’ 형태의 인사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산업시대의 근로자의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 지식형 근로자, 심지어는 창조형 근로자에게까지 입을 것을 강요하니 왠지 어색하고 폼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이미 개념화 시대에 살고 있는 창조형 근로자들은 본인이 수행하고 있는 직무특성과 개성에 맞춘 개별화된 인사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 아직은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인 것이다.
따라서 인사는 지금부터라도 직무 특성이 상이한 종업원 그룹간의 세그먼트를 통하여 각 그룹간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다중(multi-layered) 인사시스템’을 개발하여 대상별로 다르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룹별로 다르게 접근한다는 것의 의미는 각 그룹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최대할 살릴 수 있도록 전략적인 차별화(differentiation)를 시도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화가 구성원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discrimination)로 오인되지 않도록 세심한 커뮤니케이션과 변화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Group Teamwork vs. Individual Creativity
과거처럼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기업의 주된 업무였을 때는 개인의 탤런트나 창의성보다는 잘 정의된 업무를 오차 없이 일사 분란하게 처리하는 집단적 팀워크가 중시되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잘 하는 사람과 잘 못하는 사람간의 성과차이가 유의미하지 않아 개인간의 차별화가 크게 요구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식정보화 사회를 넘어 개념화 사회로 이행되고 있는 요즘에는 뛰어난 창의성을 바탕으로 지속적 사업성과를 창출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백배 심지어는 천배의 차이가 될 수도 있다.
기존의 집단적 팀워크를 유지하면서도 개인의 창의와 자율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풍토를 만드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을 평균적, 획일적으로 대우하는 현행 인사시스템은 창의적인 인재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점차 좁게 만들고 있다. 그럼 이제 남은 이슈는 창의적 인재가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일, 즉 창의적인 인재는 무엇을 통하여 동기부여 되는가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Money vs. Attractive Culture
조직행동론에 나오는 공식 하나를 되씹어 보도록 하자. Performance = KSA x Motivation. 이 공식은 개인의 성과는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KSA(Knowledge, Skill, and Attitude)와 동기부여라는 두 변인에 의해 달려있음을 보여준다. KSA를 교육훈련과 육성 프로그램 등의 인터벤션을 통하여 상대적으로 쉽게 통제할 수 있는 변수로 차치한다면, 우리가 초점을 두어야 할 바는 어떠한 요인을 통해서 동기부여를 극대화할 것인가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General Electric, Microsoft, Pepsico와 같은 회사들은 금전적 보상이 동기를 촉진한다고 보고 “마켓형 성과주의”를 추진하여 사업성과를 창출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그러나 금전적 보상보다는 내재적 보상을 강조하고 Hard한 시스템 보다는 Soft한 측면에서의 문화가치를 강화해 나가면서 탁월한 사업성과를 창출하는 기업 또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P&G, Apple, SAS, Southwest Airlines와 같은 회사가 대표적이다.
한국 기업의 대부분은 1990년대를 거쳐 미국으로부터 성과주의를 도입하면서 상대평가제도를 통한 차등적 금전적 보상에 방점을 둔 마켓형 성과주의(흔히들 연봉제라 칭하기도 함)를 도입했다. 마켓형 성과주의는 1990년대까지 대부분의 기업이 취한 연공서열적인 호봉시스템이 가진 부작용을 해소해온 공도 있었지만, 구성원 간에 필요 이상의 경쟁으로 인한 조직피로도 증가, 구성원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균 이하 성과자군의 상대적 박탈감, 그리고 고용불안감에 따른 직무몰입도 저하 등의 심각한 부작용도 야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하여 인사는 성과주의의 근본 취지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과주의는 구성원의 동기를 극대화하여 기업성과 창출에 연계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에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현재 운영 중인 성과주의가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기는커녕 조직과 직무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면 제도 도입의 근본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필자의 대안으로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성과주의가 가져온 조직 내 건전한 긴장감(creative tension)은 유지하되 금전적 보상뿐만 아니라 고차원의 모티베이터를 발굴하여 제공하려는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창의적인 인재일수록 기업의 문화적인 요인, 예를 들자면 도전적이고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직무의 부여, CEO를 정점으로 한 리더십 벤치의 매력도, 그러한 리더십 벤치 아래에서 일하면서 얻을 수 있는 배움과 성장의 기회, 궁극적으로는 경력선택의 포트폴리오(portfolio of career options) 등의 요인에 매력을 느낀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Juggling the competing values
일찍이 제임스 콜린스와 제리 포래스는『비전을 가진 기업들의 성공적인 습관(1994)에서 성공하는 기업들은 기존의 핵심 가치를 보존해 나가면서 동시에 창의적인, 심지어는 모순되기까지 하는 시도를 통하여 진보를 가속화시키는 메커니즘을 내재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필자가 위에서 언급한 “One-size-fits-all vs. Multi-layered Model”, “Group Teamwork vs. Individual Creativity”, “Money vs. Attractive Culture” 등의 경쟁 가치들(competing values)이 상호 배타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마치 동양철학의 음양이론처럼 상호 보완하고 강화하는 관계로 승화되어 조직의 성공을 이끌어내는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는 시각과 동일하다. 이런 의미에서 향후 인사 리더에게는 상반된 가치들의 스펙트럼 상에서 적절한 포지셔닝을 하거나, 심지어는 일견 모순되는 듯한 가치들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저글러가 되기 위해서 인사 리더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여러 각도에서 현상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새로운 렌즈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