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뭐하시고?”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아버님, 어머님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계십니까?”
만약 지금 이런 질문을 면접에 임하는 지원자에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유감스럽게도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될 수 있다. ‘채용절차법’ 개정안이 발효된 이후, 기업의 인사와 면접관들은 주의해야 할 일이 늘었다. 더욱이 과태료 수준이 아닌 징역형 처벌이 가능한 일명 ‘공정채용법(가칭)’ 입법이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합리적이고 당연한 이야기다. 함께 일할 지원자의 직무적합성을 확인하면 될 일이지, 대체 부모의 직업이 향후 지원자의 직무수행능력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이렇듯 직무와 상관없는 질문이 성행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면접관은 과거의 관성에 사로잡혀 이런 질문을 답습하여 빈축을 사고 있다. 과거에는 대체 왜 이런 것을 물어봤을까? 그리고 현재의 ‘직무중심 인사’ 이전까지 이루어져 왔던 우리 기업 고유의 ‘사람 중심의 인사’는 터무니없는 것이었을까?
모든 범죄의 뒤에는 부모가 있다?
필자 회사 전문가 POOL에 기업의 채용 평가관으로 활동하는 A 교수님이 있다. 이분은 TV 방송에서도 자주 뵐 수 있는 저명한 프로파일러인데, 종종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 필자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그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든 범죄자의 뒤에는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의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였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범죄자들은 대개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란 경우가 많았고, 그들의 부모 역시 정상적이지 않은 환경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최근 유명 스포츠 선수와 관련되어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사기 혐의자 역시 아버지가 같은 혐의로 지명 수배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래서 A 교수님은 자제분과 결혼할 예비 며느리의 인사를 받을 때 본인보다는 부모가 어떤 분들인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때 필자가 “그건 채용절차법 위배 아닌가요?” 농담을 하며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그만큼 부모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은 이치에 닿는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듯이 부모의 생활, 습관과 언어, 행동은 자녀의 성격과 행동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은 하루 중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삼성의 관상면접, 그리고 옛날 면접의 의외의 타당성
삼성그룹의 창업주가 채용면접에서 관상가를 옆에 두고 활용했다는 이야기는 다들 잘 알 것이다. 필자가 인사업무를 처음 배우던 신입사원 시절, 과거 삼성에서 인사담당 임원으로 오래 계셨던 분에게 이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잘 모르겠다”며 확인을 해 주시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중에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삼성의 인사에서 전국의 명망 있는 관상가, 점쟁이들에게 실제 재직하고 있는 직원들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들고 가서 검증을 한 후 타당도를 조사했는데, 관상과 실제 입사 후 업무능력과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했다.
채용 실무를 담당했던 과장 시절, 이 이야기에서 인사이트를 얻어 당시 재직했던 회사의 임원면접 결과의 타당성 분석을 시도해 보았다. 당시의 임원면접 질문은 그야말로 “아버님 뭐 하시고?” 수준이었다. 또한 임원들의 채용면접에서의 자세 역시 개선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에, 검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참에 임원면접 교육을 강화하려 속셈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들에 대한 팀 내부 평가와 임원들이 이러한 ‘전통적인 질문’을 통해 평가한 평가 등급 사이에는 분명 상관관계가 있었다. 당시 질문의 스타일은 현재의 구조화된 면접 질문과 달리 매우 옛날 스타일이었지만, 임원분들의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눈은 상당히 정확했던 것이다. 한편 ‘부모의 직업과 범죄’ 사례처럼 어설퍼 보이는 질문에도 나름 깊은 뜻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직무연관성 외 인성, 태도, 조직적합성 중요
컨설팅하고 있는 고객사를 방문해 현장직원들 대상으로 SME 인터뷰를 하거나 설문을 통해 바람직한 인재의 요건을 확인하다 보면 놀랍게도 직무 지식, 기술을 요구하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채용 트렌드가 직무적합도를 가장 최우선으로 지향하는 것과는 꽤 거리가 있는 결과다. 비단 연차가 오래된 경영진이나 고위직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입사한 지 2~3년밖에 안 되는 젊은 직원들조차 ‘일단 사람이 되어야 한다’, ‘조직융화가 가장 중요하다’ 등을 강조한다. 전통적인 개념의 KSA(Knowledge, Skill, Ability) 중 A가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최근 대기업 B의 채용제도 개선을 위한 컨설팅 과정 중 전년도 입사한 신입사원들을 데리고 일을 하는 중간관리자 7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한 적이 있다. ‘우리회사나 부서에 보다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채용제도 운영상 개선/강화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이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52.8%가 ‘신입직원의 공동체 인식, 인성평가 강화’라고 답했다. 현장실무능력이 뛰어난 인재(17.2%), 직무관련 사회경험과 경력 보유(8.7%), 전문자격 평가강화(6.3%) 등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인 차이를 보였다. 아직도 우리나라 기업의 현장 직원들은 과거의 패러다임에 빠져 있는 것일까?
채용 시 조직 부적응자 이슈
최근 기업들 사이에서는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는 것’보다는, ‘우리 조직에 맞지 않는 인재를 걸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개념이 확산되고 있다. 소위 MZ세대 중 ‘조직 부적응자’ 이슈이다. 물론 모든 MZ세대가 그런 것이 아니지만, 그중 일부는 입사하고 나서 부적절한 행동을 함으로써 조직 분위기를 저해하고 회사에 피해를 끼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점심시간에 ‘혼밥’만 고집하는 등 동료들과의 교류를 거부하거나, 하던 일을 던져 버리고 칼퇴근을 위해 사라지는, 책임감 없이 자기만 챙기는 경우는 큰 문제를 일으키는 수준은 아니기에 어느 정도 조직 내에서 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사유로 직장 내 괴롭힘(갑질금지법) 등을 들어 인사위원회를 요구한다든가, 좀 더 나아가서 직원 간에 고소고발이 발생하게 된다면 사태가 심각하다. 심지어 회사에 따라서는 회사 내부의 기밀정보를 유출하거나, 민감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도록 하여 큰 타격을 준 사례도 있다.
금융기관 C사에서는 상기와 같은 여러 문제를 일으켰던 조직 부적응자가 과거 채용면접의 평가에서 점수 1등을 받았던 사실이 밝혀져 관계자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최근의 채용 트렌드인 ‘직무적합성 확인’에만 초점을 두다 보면, 지원자의 이러한 이상행동 가능성을 간과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다. 몇 번 이런 심각한 문제를 경험한 회사에서는 지나치게 창의적이고 영민한 지원자에 대한 거부감을 표하기도 한다. 면접 평가기준에서 해당 회사의 인재상에 있는 ‘창의성’을 아예 제외해 버리거나, 요구하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소위 ‘오버 스펙’에 해당하는 지원자는 과감하게 탈락시키기도 한다.
직무중심의 해외 인사는 어떠할까?
그렇다면 직무 기반의 채용을 오래 해 왔던 나라들은 어떠할까?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고, 당연히 해당 이슈가 있다. Havard Business Review 2016. 2월 ‘How to Avoid Hiring a Toxic Employee(Christin Porath)’에 따르면 독성 있는 직원(Toxic Emplyee: 조직 부적응자)은 두 명 이상의 슈퍼스타(Superstar: 상위 1% 생산성을 보유한 핵심직원)의 이익을 상쇄한다고 한다. 핵심직원은 회사이익에 연간 $5,000를 추가하는 반면, 조직 부적응자는 연간 $12,000의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고 한다.
이를 위해 ①인터뷰 과정 전반에 걸쳐 ‘정중한(civility)’ 태도를 유의해서 볼 것 ②지원자에게 과거의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사례를 확인할 것(예: 어떤 유형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누군가와 함께 일하면서 어려웠던 경험에 대해 말해 보세요. 어떻게 처리하셨나요?), 그리고 특히 ③지원자가 면접시간을 준수하는지, 이전 고용주나 동료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지, 지원자가 행동,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가 등을 확인하기 ④팀원이 지원자와의 저녁식사나 야구경기 관람 같은 캐쥬얼한 상황에 참여를 시켜서 관찰하게 하거나 ⑤추천인이나 전 직장 동료에 대해 ‘정중함(civility)’에 대한 평판조회를 하기를 권한다.
그렇다면 ‘아버님 뭐 하시고?’는 어떻게?
지금 시대에서 아무 맥락 없이, “아버님 뭐 하시고?”라고 질문하는 것은 당연히 곤란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명백히 채용절차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으로 금지한다고 해서 오로지 직무와 관련한 내용만 확인해야 할까? 지금까지 위에서 살펴본 사례, 그리고 과거에 나름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던 면접질문을 감안할 때 그대로 폐기하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사실 채용절차법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금지한 배경은 일차적으로 채용비리를 막기 위함이 크다. 유력한 집안의 자제라든지, 회사 내부 고위직이나 채용 관계자의 지인이라든지 하는 관계가 채용에 공정하지 못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것이 함께 근무하는 데 반드시 확인해야 할 지원자의 성향을 파악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니다.
따라서 조직 적합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아버님 뭐하시고?’를 지금 버전으로 컨버전할 필요가 있다. 핵심은 ①’직무 업무에 필요한 맥락’으로 끌어가는 것이 좋고 ②면접관이 직설적으로 묻기보다는 아래의 예시와 같이, 대화과정에서의 꼬리질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숙련된 면접관이 필요하며, 지원자가 불필요하게 오해하지 않도록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어려운 시대다.
<숙련된 면접 질문 예시>
“(질문)본인의 성장과정상 저희가 직무 또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도움이 될 만한, 참고할 만한 사안이 있을까요?”
“(답변)귀사는 전국 순환근로가 특징인데, 집안 사정상 어렸을 때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가 잦았기 때문에 저는 어떤 지역에 가더라도 쉽게 적응을 잘할 수 있습니다.”
글_엄명섭 (주)트리피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