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스 빌런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엄명섭 ㈜트리피 대표이사

2024-02-29     엄명섭 ㈜트리피 대표이사

최근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연일 화제라고 한다. 남편과 절친의 불륜 현장을 목격 후 살해당한 주인공이 10년 전으로 회귀하여 남편과 절친에게 복수한다는 내용인데,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필자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따로 있다. 다름아닌 이 드라마의 악역인 주인공의 직장 상사 ‘김 과장’이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때가 2013년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기혼인 여성 팀원을 ‘아줌마’로 지칭하거나 “이래서 여자들은~”을 입에 달고 살며 성추행까지 일삼는 등, 말 하나, 행동 하나하나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업무적으로는 더욱 문제가 많은데, 근무 중 야구경기를 보는 등 근무태만은 기본인 데다가, 주인공의 기획안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아무튼 상태가 메롱”이라며 폭언을 퍼붓는다. 심지어 이 기획안으로 본인이 편애(혹은 흑심)하는 계약직을 정직원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TF팀을 구성하면서 정작 기안자인 주인공은 제외시키기까지 한다. 이 김 과장 관련 에피소드의 유튜브 요약본이 100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하고 반응이 뜨거운 것을 보면 그만큼 대중들의 ‘빌런(악당) 상사’에 대한 ‘참교육’ 욕구(?)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픽션인 드라마의 ‘김 과장’만큼은 아니더라도 현실을 돌아볼 때 조직 내에는 늘 악당이 존재해 왔다. 드라마 속에서는 주인공의 지략으로 김 과장은 물론 김 과장의 연줄인 상무의 만행을 공개적으로 까발리는 데 성공하고, 김 과장은 주인공의 기획안을 가로챈 건으로 징계를 받아 대리로 강등되는 등 시청자들이 흡족해할 만한 ‘사이다 엔딩’을 맞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드라마와는 다르다. 때문에 조금은 더 냉철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이번 기고에서는 오피스 속 ‘김 과장’, 다시말해 ‘오피스 빌런’을 만났을 때 개인의 차원에서, 그리고 인사부서 차원에서의 현실적인 대처방법, 즉 바람직한 자세를 알아보자.

1. 개인적으로 오피스 빌런을 만났다면?
물론 빌런의 특색 및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개인적 차원에서는 대체적으로 아래의 방법을 쓰는 것이 어떨까 한다.

① 일단 원인을 파악하자!
가장 먼저 빌런으로 보여지는 상사나 동료가 ‘왜 이런 행동을 보이는지?’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김 과장’과 같은 절대 악인은 픽션의 공간에서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알고 보면 나름 그들은 특정한 동기나 상황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원인 파악만 제대로 된다면 적절한 대처로 빌런의 다음 행동을 막을 수도 있다.

② 워워~ 흥분하지 말고, 반드시 이성적 태도 유지
이러한 빌런들을 상대할 때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자세는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억울한 마음에 눈물을 터뜨린다든지, 같이 화를 내 버린다든지 하는 태도는 전혀 해결이 될 수가 없다. 아무래도 빌런은 직장 내에서 본인보다 위의 계층에 속한 인물이므로, 이러한 행동은 사회생활에 서투른 풋내기로 취급받아 결과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빌런의 악행에는 최대한 냉철하고 사무적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할 수 있다면 미소와 웃음으로 여유를 보인다면 만만치 않은 인물로 여겨져서 쉽게 대할 수 없게 된다. 또한 갈등의 주제에 대해서는 법적 또는 업무적인 학습과 노력을 열심히 해서 최대한 전문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설픈 지식과 경험으로 맞서다가는 빌런의 먹이감이 되기 십상이다.

③ 여기까지! ‘경계’ 설정
모든 행동에는 ‘선’이라는 것이 있다. 빌런의 악행이 무서운 것은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하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기 때문이다. 무작정 진지하고 무겁게 대응한다면 정작 빌런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농담이었다”며 빠져나가버리고, 이 경우 오히려 문제를 제기한 상대방의 과민반응인 것처럼 치부되어 버린다. 따라서 부적절한 행동에 대해서 명확하게 경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되는 행동이나 요구에 대해 “방금 …라고 하신 말씀은 선을 넘으셨습니다”라고 단호하고 명확하게 지적하며, 수용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음을 알려야 한다. 

④ 가장 최선은 대화로 단둘이 해결
일단 빌런의 언행이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라면, 제일 좋은 방법은 1:1 대화로 해결을 하는 것이다. 주위에서 보기에도 아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면, 빌런과의 갈등을 주위에 떠들고 다녀서 좋을 것은 없다. 소문이 돌고 돌아 이야기가 퍼져 빌런의 귀에 다시 들어가게 되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수 있는 데다가,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두고두고 사내에서 구설수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개인적 차원에서 부적절한 발언, 또는 행동임을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이때 정중하고 단호하게 불편하다는 의사표현을 한 후, 상대방의 사과를 이끌어내고 재발을 방지하게 할 수 있다면 대성공이다. 확실한 사과나 재발 방지를 약속 받은 후에는, 이 사안에 대해서는 상대방과 나만 아는 선에서 마무리하겠다고 안심을 시키는 전략도 괜찮다.

⑤ 안되겠다~ Help! 주위에 지원 요청
그러나 개인적인 대화 시도로 쉽게 해결이 된다면 상대방은 ‘빌런’이라고 명명할 수준도 아닐 것이다. 보통은 도저히 1:1로는 해결이 안 될 경우가 많을 것이며, 그럴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인물들의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가급적 믿음직한 동료, 멘토, 조금 오피셜 하게는 인사부와 같은 지원체계가 필요할 수 있다. 이때 지나치게 흥분해서 상대방을 비난해 봐야 개인적 감정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일어난 사실 중심으로 내용을 잘 정리해서 차분하고 침착하게 본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호소해야 한다. 일단 문제를 공유하고 조언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것이며, 필요한 경우 공식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⑥ 꼼꼼하게 기록! 그리고 또 기록~
평소 빌런의 언행은 구체적으로 기록을 해 두는 것이 좋다. 내용에는 구체적인 사례, 날짜, 시간, 관련된 사람, 목격자 등이 필수다. 타인에게 지원을 요청할 때 같은 이야기라도 막연하고 모호하게 감정에 의거해서 이야기하기보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이 낫다. 실제로 사내 인사위원회에 회부되거나, 아예 법적인 문제로 비화되었을 때는 이러한 증거의 유무는 결과에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되므로 확실한 근거를 마련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⑦ 심각하다면? 어쩔 수 없이 전문가의 도움
이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개선되지 않거나 사안이 매우 심각한 경우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언이나 심리적 지원을 포함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럴 때에는 노무사, 변호사, 또는 심리 상담사를 찾아 자문을 구해보는 것이 좋다. 드라마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오피스 빌런에 대한 대처의 8할 이상은 그저 반복적인 상황을 묵묵히 참고 일하거나, 퇴사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해결되는 것 하나 없이 본인의 신체적, 정신적 데미지로 이어질 뿐이며, 후자의 경우 일시적인 해소는 되겠지만 언제 어떤 빌런을 만날지 모르는 장기적인 직장생활의 관점에서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

2. 인사부서의 오피스 빌런 박멸방법
인재경영의 독자들은 기업의 인사담당자인 경우가 많을 것이다. 우리회사에 오피스 빌런이 존재하고 피해자가 고통을 호소한다면 우리 인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개인간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대로 두기에는 조직내의 건강한 근무환경 유지를 위해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방치한 빌런 하나가 동료 한두 명이 아닌 회사 전체를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세부적인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아래의 항목을 유념하면서 사내 오피스 빌런에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① 제일 먼저, 사실확인!
일단 오피스 빌런에 관해 신고된 내용이나 소문에 대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오피스 빌런은 피해자의 직접 제보도 있을 수 있고, ESI(Employee Satisfaction Index) 조사 설문에서 알게 될 수도 있고, 다면평가의 정성평가 내용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일방의 주장이나 막연한 소문만 믿고 단정하기 보다는 직접적인 면담, 관련된 직원들의 진술 수집, 증거자료(이메일, 메시지)의 검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좋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직장이라는 곳이 일반적인 친목단체와는 달라서, 어느 정도의 긴장과 갈등이 내재한 곳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피스 집단은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된 단체이고, 리더들은 구성원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수익과 성과가 나는 방향으로 독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마냥 관계가 좋을 수만은 없다. ‘아무리 편하고 좋은 상사라도 없는 편이 낫다’라는 이야기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② 중립! 누구도 편들지 않는다!
문제의 심각성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사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인사부서라고 해서 지나치게 직원 편을 드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회사라는 곳이 원래 그렇다”며 상사나 권력자의 시각에서만 바라보아서도 안 된다. 따라서 조사 과정에서는 편견 없이 모든 관련된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관련 증거를 공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③ 절대보안, 기밀유지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조사 과정에서 얻은 정보는 반드시 인사비로 유지되어야 하며, 관련된 당사자들에게도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잘못 새어 나간 사실은 사내에서 일파만파로 퍼져 나가면서 변형되거나 부풀려져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일어날 수도 있고,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사태가 더 악화될 수도 있다. 인사의 가장 핵심적인 미덕은 ‘무거운 입’이라는 말이 이 점에서 중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기밀 유지야 있을 수 없겠지만, 필자는 그 중심에 진중해야 할 인사, 조사부서 담당자의 가벼운 입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꽤 많이 보았다. 다시 말해 문제의 공정한 해결은 물론, 피해자나 신고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④ 적절한 인사조치
조사 결과에 따라 인사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오피스 빌런에 대한 가벼운 경고 정도로 그칠 수도 있겠지만 교육 프로그램 참석 요구, 조직 내 위치 변경(인사발령), 심각할 경우는 인사위원회를 거쳐 징계까지 고려할 수도 있다. 매우 사안이 위중한 경우는 빌런에 대한 해고, 또는 민형사상의 법적 조치가 따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에도 규정과 원칙에 의해 엄격하게 기계적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조직에 끼칠 영향과 피해자, 조사 관련자의 보호를 위해 꽤 섬세한 방법이 많이 동원되게 된다. 인사부서는 경찰이나 검찰처럼 수사부서가 아니며, 기업의 건강한 조직문화를 유지해야 하는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인사에는 정답이 없고 모범답안 밖에 없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 같다.

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피드백
오피스 빌런이 제거되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빌런이 준 상처는 피해자에게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사는 지속적으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필요한 경우 추가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직원들로부터 피드백을 수집하고, 근무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⑥ 예방교육 및 정책 강화
사실 오피스 빌런에게 적절한 조치를 하거나 제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오피스 빌런이 탄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인사는 정기적인 예방교육과 감수성 훈련을 직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일단 사전 진단을 위해서 평소 객관적인 ESI 조사나 다면평가와 같은 도구를 정기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핵심은 지표로 나타나는 점수나 인물간 부서 간 순위가 아니다. 정례적으로 체크해서 확인되는 숫자의 추이가 훨씬 더 중요하며, 진행하는 주체는 정성적 기술 내용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단서에 대한 관심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특히 오피스 빌런은 시대의 변화를 감안하지 못한 기성 세대와 새로운 세대의 갈등에서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평소 빌런이 발생하지 않도록 명확하고 엄격한 근무 환경 정책을 마련하고, 리더들에 대한 조직관리 공감 교육이나 워크샵을 수행하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빌런의 가능성이 있는 팀장, 간부들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반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다면평가 교육이나 사내외 소통교육, 직장예절 교육 등 우리 회사에 맞는 교육을 고려해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