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중심 인사체계와 직무평가

[HR STUDY]

2024-04-30     인재경영

HR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직무중심 인사’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직무중심 인사’는 인사제도를 운영하는 기준을 사람이 아닌, 직무로 활용하는 인사체계를 의미한다. 직무의 특성을 고려해서 차별화된 채용과 보상, 성과관리 및 경력개발체계 등을 운영하는 것을 의미하며,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 주로 활용되어 왔다. 직무에 따라 별도의 채용 과정을 거치고, 직무의 가치에 따른 보상을 적용 받는다. 성장경로 또한 직무에 따라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무 간의 보상 차이에 대한 인정이 자연스럽다.
반면, 한국에서는 오랜 기간 ‘사람’의 역량과 성과를 기준으로 하는 인사체계가 주류를 이루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공채(공개채용) 제도이다.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공채 제도를 통해 잠재역량이 우수한 인재들을 대규모로 채용한 이후에 다양한 업무경험을 통해 성장시키는 방식을 채택해왔다. 이러한 인력운영 방식으로 인해 전사 관점에서 범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보상체계를 선호하였다. 모두가 힘든 경쟁을 뚫고 입사한 동기이기 때문에 상호 간에 보상수준이 크게 차이나는 것에 대해 민감한 문화이다.
하지만, 한국의 사람 중심 인사체계도 변화의 시기에 접어든 듯하다. 회사 내에서 일의 구분이 세분되고, 요구되는 직무 전문성이 심화됨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대규모 공채를 폐지하고, 직무 기반의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LG그룹이 최근 들어 공채를 폐지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국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남에 따라, Global Market에서 통용 가능한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도입하려는 움직임도 전에 비해 많이 늘어난 편이다. 이러한 변화는 본인이 수행하는 직무의 가치와 성과에 대해 차별화된 인정을 원하는 MZ세대의 니즈와도 일맥상통한다.
한국 기업이 직무중심의 인사체계를 도입하기에 앞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단계가 있다. 바로 직무평가이다. 직무평가는 우리 조직 또는 시장 내에서 특정 직무의 가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운영하는 회사라면, 다양한 관점과 방법론에 기반하여 상대적인 직무가치에 대한 내부 판단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사람 중심의 인사체계를 오랜 기간 운영해온 한국 기업의 경우, 직무가치에 대한 내부의 공감대가 미흡할 확률이 높으므로, 초기부터 체계적인 직무평가를 통해 명확한 인사 기준을 잡을 것을 권고한다.
다만, 직무평가가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는 방법론이 아니기에, 이를 처음 접하는 회사의 경영진과 구성원, 인사 실무자들이 막연한 기대와 오해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직무 중심 인사체계를 희망하는 한국 기업들이 원활하게 직무평가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직무평가를 처음 도입하는 기업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오해들에 대해 지금부터 살펴보고자 한다.

오해 #1. 직무평가에는 하나의 정답이 있다
직무평가에는 다양한 방법론이 있으며, 어느 하나가 우월하거나 절대적인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직무평가 방법론을 살펴보면, 직무의 시장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시장가치법(Market Pricing), 조직 내 직무의 순위를 매겨보는 상대서열법(Whole Job Ranking), 표준적인 직무평가 요소를 기준으로 점수를 산정하는 표준점수법(Standardized Point Factor) 등이 있다. 각각의 방법론은 장단점이 뚜렷하므로 산업 특성과 활용 목적에 따라, 그에 부합하는 방법론은 채택하면 된다.
예를 들어, 직무평가의 활용 목적이 시장가치에 부합하는 직무급 도입에 있다면, 시장가치법에 기반한 Compensation Data Benchmark 및 직무 매칭을 통해서 진행해볼 수 있다. 시장 내에서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산업군일수록 시장가치법에 기반한 직무평가 방법론의 적합도가 높을 것이다. 직무가치에 기반하여 직급/승진/보상 등 인사체계 전반을 새롭게 구축하고 싶다면 상대서열법이나 표준점수법을 활용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상대서열법은 평가 편의성에서, 표준점수법은 대외적 통용성 및 체계성에서 우위가 있는 방법론이다. 이렇듯 직무평가에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며, 각 방법론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목적에 부합하는 방법론을 선택하여 활용하길 권고한다.

오해 #2. 직무평가에는 정량적이고 과학적인 산출 로직이 존재한다
기업에서 직무평가를 진행하다 보면, 직무평가 진행과정과 결과 산출에 있어서 정량적이고 과학적인 결과 도출을 종종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직무평가를 처음 도입하는 회사의 경우, 직무평가 결과의 수용성에 대해 보다 민감하게 여기기 때문에 직무평가 방법론의 완전무결함을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직무평가는 정성적인 판단과 합의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과업이다. 직무평가 방법론은 직무가치를 판단하는 관점과 기준을 제시해주지만, 세부적인 평가척도를 부여할 때는 조직 내 직무 전문가, 경영진의 합의에 따른 판단이 필수적이다.
직무평가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면 보다 쉽게 이해될 것이다. 직무평가는 기본적으로 조직 내에서 상대가치를 구분하기 위해 진행되는 것이다. 평가 요소별로 어떠한 직무에 얼마만큼의 가점과 감점을 부여하는지, 가치 차등의 기조를 크게 가져갈 것인지 등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타사의 평가사례도 각사의 평가기조와 직무의 구성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참고자료는 되겠지만 의사결정의 핵심은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내부 구성원 및 전문가에 의한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통해 평가를 진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해 #3. 직무평가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직무 내용이 바뀌거나, 산업 상황, 전략 방향 등이 변화함에 따라 직무평가 결과 또한 변화한다. 직무평가에는 다양한 평가요소가 고려되며, 그중에는 외부 환경과 전략 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는 요소 또한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Mercer의 직무평가 Tool인 IPE(International Position Evaluation)의 평가요소인 Contribution(공헌도), Breadth(지리적 범위)와 같은 요소들은 산업 환경에 따른 매출, 이익 변화나 직무의 업무 관할 범위가 변경될 경우, 평가 점수가 바뀌게 된다.
따라서, 직무평가 결과가 변하지 않는다거나 오랜 기간 동일하게 유지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직무의 내용이나, 업무 수행/성과 등이 안정화되었을 경우, 직무평가 결과 또한 안정적으로 유지되기도 하지만, 회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직무의 가치 변화가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 Mercer에서는 직무평가를 최소 1년 주기로, 정기적으로 실시하도록 안내하며, 새로운 직무가 생겨나거나, 조직/전략 관점에서 큰 변화가 있을 경우에는 상시적으로 직무평가를 실시하여 최신화 할 것을 권장한다.

오해 #4. 직무평가는 외부 전문가가 수행해야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직무평가를 위해 컨설팅 회사와 같은 전문기관에 직무평가를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 직무평가 전문 컨설턴트들은 컨설팅 회사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직무평가 방법론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고, 글로벌 직무평가 데이터베이스 등을 활용하여 검증할 수 있는 등 직무평가에 관하여 분명한 강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외부 전문가들은 회사가 속한 산업이나 회사 내 직무 특성에 대해 내부의 직무 전문가만큼 알지 못한다. 직무평가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직무평가 방법론 자체에 대한 이해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평가대상이 되는 직무 자체에 대한 이해이다. 따라서, 성공적인 직무평가를 위해서는 외부의 전문가에 의뢰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내부 직무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과정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오해 #5. 직무가치에 따라 보상수준이 결정된다
직무평가를 진행할 때, 구성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직무평가 결과와 보상의 연계이다. 향후 직무평가 결과가 보상과 연계될 것을 생각하게 되면, 직무가치에 대해 보다 급진적으로 또는 보수적으로 평가하려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 특정 직무에 대한 평가 기조가 편향될 경우, 전체 직무에 대한 일관된 가치 평가를 훼손할 수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직무가치가 높으면 정말로 보상수준이 높을까? 보편적으로는 그렇겠지만, 직무기반 보상을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미국과 같이 Market Data에 기반한 직무급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회사에서 판단한 직무가치 외에 직무의 Market Price가 함께 고려되며, 직무가치 순위와 보상수준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사 내에 직무가치가 높은 A직무와 보통 수준인 B직무가 있다고 했을 때, 시장 내에 B직무의 수급이 적어 보상 값이 높게 형성되어 있다면, 사내에서 A직무의 가치가 더 높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보상 수준은 B직무가 높을 수도 있다. 또는 동일한 직무가치의 직무라 하더라도, 필요에 따라 보상 정책을 차별적으로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Mercer에서는 보상 연계를 염두에 두고, 직무평가 결과를 조정하기보다는 직무평가를 일관된 기준에 따라 먼저 진행해두고, 활용 시점에서 유연하게 조정방안을 고민할 것을 권고한다.

직무평가 바로 알기
지금까지 직무평가를 진행하면서 나타날 수 있는 5가지 오해에 대해 살펴보았다. 직무평가를 처음 진행하다 보면, 필자가 소개한 오해들을 조직 내에서 마주치는 순간이 많이 생길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당황하지 말고, 이해관계자 간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논의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서 진행해보도록 하자. 만약 자체적으로 직무평가 과업을 수행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면, 전문기관과의 협업을 통해서 초기 과정을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사내에서 직무 전문가들을 선발하여, 외부의 직무평가 방법론을 충분히 교육한 후에 직무평가를 진행하여 직무평가 결과의 수용도를 높인 컨설팅 사례 또한 존재한다.
직무평가는 조직 내 주요 직무에 대한 상대적인 가치를 살펴보고, 구성원 간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단순히 직무평가를 통해 도출한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고려되는 조직의 판단 기준, 상이한 가치 판단에 대한 조율 등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며, 이러한 과정을 충실하게 거쳐서 도출한 결과여야만 인사체계의 안정적인 운영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직무평가를 희망하는 인사담당자라면 어떠한 직무평가 방법론이 자신의 회사 특성과 활용 목적에 부합할 것인지부터 고민을 시작해보자. 
 


글_황수용 머서코리아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