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핏, 모티베이션핏을 확인하는  채용의 온고지신

2025-06-01     엄명섭 트리피 대표이사

사례 1. 막강그룹 채용의 관상 면접관

안성기 배우 주연의 1988년도 영화 <성공시대>를 보면 과거의 대기업(막강그룹 감미료회사 유미사) 면접 장면이 나온다. 당시 사회 분위기가 그랬듯이 상당히 경직된 분위기의 압박면접 형태였다. 면접관 여럿에 지원자 한 명이 들어와 스탠딩 형태로 역할연기(Role Playing) 면접을 수행토록 한다. 과제는 ‘본인 주머니에 있는 물건을 꺼내서 면접관에게 팔아보라’는 것이다. 많은 지원자들이 당황해하면서 열심히 판매를 해 보지만, 임원들로 구성된 면접관들의 흥미를 끌지는 못한다.
특이한 것은 면접관 중에 두루마기 도포를 입은 인물이 있다. 그는 여느 직원 같아 보이지 않는데, 영화 내에서 안성기 배우가 ‘빈 주먹’을 판매하면서 결국 손바닥을 펴니까 돋보기로 손금을 보고 그의 재물운을 판단한다. 주인공의 합격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그는 범상한 면접관이 아니었다. 그렇다. 그는 관상 면접관이었던 것이다!
오래전부터 초창기 삼성그룹의 면접에서 이병철 회장은 관상가, 또는 역술인을 면접관으로 배석시켰다는 소문이 있었다. ‘인재제일’의 경영철학을 강조한 분이니만큼 직접 면접에 나선 것도 대단하지만, 사람을 판단할 때 관상, 또는 사주팔자까지 확인했다는 점이 요즘 시각으로 보면 신기하기만 하다. 필자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새내기일 때 삼성에서 인사 임원을 오래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상무님, 정말 선대 회장님이 면접 때 점쟁이를 불렀습니까?”
“글쎄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 실제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삼성 인사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은 있었지.”
“그게 어떤 건데요?”
“전국에 용하다는 무속인들을 찾아가서 실제로 그들이 인재를 제대로 평가하는지 진지하게 검증을 해 보았지. 나는 당시 광주 점집까지 가서 확인을 했어.”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하하하, 이 사람이! 만약 그게 맞았다면 지금도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면접관으로 쓰고 있었겠지.”
“그랬겠군요~”
“하나도 맞는 게 없었어. 사진만 보고 누가 봐도 형편없는 친구를 핵심인재라고 하지 않나, 사주를 보더니 이미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에 대해서도 장차 큰 인물이 될 거라는 둥...”
“삼성 인사는 과학적이었군요!(끄덕끄덕)”

당시 들었던 이야기는 필자에게 채용 기법과 실제 현장에서의 모습을 비교해 보는 ‘타당성 분석’의 중요도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 삼성 인사처럼 채용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활용했던 채용 기법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채용된 인재를 대상으로 반드시 검증을 해 봐야 하는 것이다.

사례 2. 생각보다 높았던 임원면접의 타당도

채용에 대해 어느 정도 실무책임을 지게 되는 과장 직급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타당성 분석’을 제대로 해 볼 수 있었다. 당시에도 최종 면접은 임원들이 인성면접으로 보았는데, 워낙 높으신 분들이라 면접관 교육을 해도 그분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지금처럼 면접관의 행위가 언론에 보도되거나 채용절차법의 법령으로 규제되는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인사 채용 실무자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많았다. 
당시 임원들의 면접은 전형적인 ‘인물 면접’이었다. 성장 배경, 부모님의 직업, 고향, 그리고 인상과 관상 등이었고 질문도 ‘자기소개를 해 보라’는 식의 간단한 공통질문 형태였다. 인사팀에서는 좀 더 직무에 입각한 구조화된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고, 지원자를 배려하는 형태의 면접을 지향하고자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경각심을 고취시키려는 의욕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근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수준과 임원의 면접 평가 점수의 상관관계를 측정해 보기로 했다. 
한 가지 문제점은 신입사원의 ‘수준 판단’이었는데, 대부분의 신입사원이 인사고과를 N(Non)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신분이거나 부서의 특성을 많이 타기 때문에 인사평가 결과를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따라서 연수원과 인사부서의 인물평을 통해 ‘일 잘하는 사람’ 기준으로 상중하로 나누었다. 소위 ‘입소문’에 의한 평가인 셈이지만 의외로 꽤 정확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입사원이라 할지라도 몇 개월 지나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인재’와 ‘아무도 안 받으려고 하는 인재’로 금방 평판이 생기기 때문이다.
통계를 잘 아는 직원이 돌린 상관관계 분석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임원들이 지원자들을 보는 눈이 꽤 정확했던 것이다. 즉 임원들이 면접 때 좋게 평가한 인재들은 실제 현업에 배정되어서 일을 할 때 우수한 인재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임원들이 뽑을지 말지 망설였던, 평가점수가 낮은 인재들은 역시 조직에 잘 적응을 하고 있지 못했거나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퇴사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인사 실무자들에게 ‘면접은 옛날 스타일로 봐도 임원 정도 되면 사람 보는 눈이 생기는구나’ 하는 존경(?)의 마음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아버님 직업이 어떻게 되시나요?”
예전엔 임원들이 쉽게 하던 질문이지만, 직무 역량의 적합도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에는 적절치 않은 질문이다. 특히 이러한 개인 신상을 묻는 질문은 채용절차법에 의거 ‘과태료 300만 원’을 부과해야 하는 요주의 발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금의 면접관 교육 시 가장 조심해야 할 대표 사례로 활용된다. 그러나 과거에는 이러한 류의 질문들을 심도 있게 했다. 그리고 면접의 면이 얼굴을 의미하기 때문에 인상이 밝은지, 그리고 인물이 준수한지도 유념해서 보았다. 사위나 며느리를 얻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을 찾는 면접에서, 얼핏 보면 지극히 비합리적인 질문과 판단 기준일 수 있는데, 왜 과거의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가정 상황에 집착했을까?

사례 3. 모든 범죄의 뒤에는 부모가 있다 - A 교수

필자의 전문가 Pool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TV 방송 출연이 많아서 누구나 알아보는 유명 인사들도 있는데, 그중 범죄 프로파일러로도 활동하는 A 교수가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회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각종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재미있다. 특히 ‘연쇄살인마’라든지, 잔혹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의 이야기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범죄(자)의 뒤에는 공통된 한 가지가 있습니다.”
“ 흥미롭군요. 대체 뭐가 있죠?”
“범죄자의 (불우한) 가정환경, 특히 (범상치 않은) 부모가 있습니다. 저는 제 아들딸이 배우자를 인사 시키러 와도 우리 애들을 믿습니다. 다만 소개하려는 사람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꼭 확인하죠.”

A 교수는 외부 면접관으로도 활동하는데 지금 성행하는 과도한 블라인드 방식, 또는 채용절차법에 의거한 엄격한 직무중심의 채용에 대해서는 일부 비판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직무적합도가 중요하긴 하지만 사람은 부분으로 판단하기보다는 다양한 면모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례 4. 문제학생에게는 꼭 닮은 부모가 있다 - B 교사

필자와 함께 HR 컨설팅을 하다가 뜻한 바 있어 진로를 바꾸고 고등학교 진로상담교사가 된 후배 연구원 B가 있다. 근황을 물어보니 학생들과 함께 하며 보람을 느끼지만 과거와는 달라진 학교 풍토, 특히 학생들 때문에 가끔 상처도 받는다고 했다.

“요새 학생들이 예전 같지 않지요?”
“아유 말도 마세요~ 정말 ‘금쪽이’들이 많고요. 특히 코로나 시국에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있었던 아이들 중에 사회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선생님들이 그런 학생들 대하기가 쉽지 않겠구나~”
“그런데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부모가 종종 찾아오시게 되거든요. 그러면 아하~ 하게 돼요!”
“부모요?”
“그 학생이 학교에서 왜 그런지, 부모님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된답니다(씁쓸한 미소).”

‘부모는 자녀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기 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곳이 가정이고 가장 많은 소통을 하게 되는 이가 부모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직업, 생활습관, 언어, 행동은 한 사람의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취업을 하고 나면 가장 오랜 시간을 직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하게 된다.

사례 5. 면접 때 지식, 기술, 태도는 완벽했는데? - C 사

최근 SME(Subject Matter Expert) 인터뷰를 했던 C 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채용형 인턴’ 사원이었는데, 그야말로 주위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함께 일하기 힘든 인물이었다고 한다. 사례를 들어 보니 어떤 업무를 주면 맥락 없이 딱 그 업무만 수행해서 결국 과업이 완수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알고 보니 머리가 비상한 직원이라 일부러 그런 방식으로 일을 해서 결국 자신에게 일이 부여되지 않도록, 일에 피해 가도록 계획한 것이었다고 했다. 하도 심각해서 대체 어떻게 입사한 건지 인사팀에서 채용 과정을 다시 한번 면밀하게 살펴봤는데, 특히 이 직원을 채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직무 기반의 PT 면접은 전체 채용 대상자 중에서 톱클래스의 성적을 받았던 재원이었다고 한다.
보통 채용형 인턴의 경우 거의 모든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문화를 가진 C 사였지만 해당 직원만큼은 전환 불가 통보를 했다. 그랬더니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서 회사를 상대로 다툼을 벌였다. 워낙 명석한 사람이라 변호사나 노무사 도움 없이 본인이 직접 진행했다고 한다. 결국 회사가 이기게 되어서 이 직원은 회사를 떠나게 되었는데, 충격적인 건 그다음이다. C 사 못지않은 일류기업 D 사에 뛰어난 면접 실력으로 또 합격을 한 듯하다고 했다. C 사 관계자들은 과연 이 직원이 D 사에서는 잘 적응할지, 걱정 어린 마음이라고 전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앎

지금은 직무중심의 채용이 대세이긴 하다. 또한 채용절차법과 같은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규정으로 지원자에 대한 불필요한 개인 신상 파악은 원천적으로 금지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외도 그렇지만 최근 국내 기업에서는 컬쳐핏, 모티베이션핏을 심각하게 고려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직무기술서 상의 요건은 모두 충족하는 인재였지만 막상 그 회사의 기업문화에 전혀 맞지 않거나, 근무의욕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 아무리 직무역량이 충분하다 하더라도 채용 실패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그저 한 직원의 문제에 그쳤지만 지금은 동료, 소속 부서원들에게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는 경우가 많다. 심각할 경우에는 SNS, 노조, 기업 평판 제공 서비스, 언론 등을 통해 갈등 상황을 노출하여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저하시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서 여러 기업에서는 직무중심의 채용을 기반으로 이러한 ‘조직 적합성’을 판단하는 여러 노력을 병행하기도 한다.
지금 시대에는 과거의 임원, 면접관들과 같은 방식의 면접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점쟁이를 면접관으로 쓸 수도 없고, AI 등 기술을 쓰는 방법은 아직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지원자의 적합도를 판단하는 채용 기법은 과거 전통적인 우리나라 채용 기법을 연구하는 온고지신을 통해 개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