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신입 vs. 생신입

2025-08-31     엄명섭 트리피 대표이사

“’중고신입’과 ‘생신입’ 중 어떤 지원자를 더 선호하세요?”
컨설팅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그간 만난 고객사가 250개를 넘어서고 있다. 위는 최근 필자가 채용제도 설계를 위해 현장 사례 중심의 SME 인터뷰를 하며 자주 던지는 질문이다. 중고신입은 몇 년 전만 해도 단어 자체가 생소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잘 인지하는 용어다. 지금은 이런 중고신입을 선호하는 회사들이 많이 늘었기 때문에 이제는 정말로 ‘중고신입의 전성시대’가 된 듯하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학교를 갓 졸업한, 일과 직무 경험이 전혀 없는 구직자가 입사할 수 있는 기회는 아예 사라져 버린 걸까?

1. ‘중고신입’ 이란?

보통 중고신입이란, 말 그대로 직장 경력이 있지만 신입 채용에 지원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대개 3년 미만 경력을 가진 노동자가 더 높은 연봉이나 직종 변경, 조건 때문에 경력직으로 인정받는 것을 포기하고 신입에 지원하는 경우에 해당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분명 이득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구직자 입장에서도 길지 않은 경력 기간을 포기하긴 하지만 본인들이 가진 직무 경험을 무기로 다른 지원자들 대비 우월한 경쟁력을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기꺼이 감내한다.

2. 중고신입은 왜 대세가 되었나?

지금은 과거처럼 스펙 중심, 사람 중심이 아니라 직무 중심의 채용이 대세이다. 고용노동부의 기업 채용동향 조사 결과, 최근 인사담당자들이 구직자들의 역량 중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직무 관련 일 경험이었다(35.6%).
A사의 법무직 채용을 위한 상황면접 질문이다.
“귀하는 소속된 회사의 지시로 주주 자격으로 다른 회사의 주주총회에 참석하려 하는데, 요건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주총장 입장을 허가받지 못했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일체의 사회경험 없이 법률 공부만 하다 온 지원자의 답변이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주총 개최 회사에 소송을 제기하겠습니다.”
순간 면접관들이 어처구니없어 했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면 입장하는 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요?”
그제야 지원자는 자신의 경험이 너무 부족함을 한탄했다.
반면 중고신입 신분으로 면접에 참여한 또 다른 지원자는 자신의 과거 회사에서의 법무 실무 경험을 토대로 다양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었고, 무난하게 합격할 수 있었다.
이처럼 직무중심의 일 경험이 압도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면접에서 최소한 아르바이트나 인턴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최종 합격권에 드는 지원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중고 신입이 유리해지는 현상은 일반화가 되어 버렸다.

3. 중고신입 현상이 초래한 결과

이러한 중고신입 대세 현상은 취업시장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① 필수 스펙이 된 인턴, 안 되면 아르바이트라도!
과거처럼 학점을 올리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옛날 개념의 ‘SPEC 쌓기’는 채용에서의 중요도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러나 SPEC 아닌 또 다른 SPEC이 생겼으니 구직자들은 최소한 2~3개 정도의 인턴생활을 재학 중에서라도 반드시 경험하려고 한다. 그에 맞추어서 나라에서 지원하는 ‘일 경험 인턴’이나 학교에서 학점을 부여받을 수 있는 ‘현장 학기 실습’ 같은 제도도 이제 어느 정도 자리 잡아 있다. 그것이 어렵다면 다양한 아르바이트 활동이라도 하려고 노력한다. 도서관에서 공부만 하는 사람과 실제 고객을 응대하고 동료들과 협업을 해 본 사람은 수준 차이가 꽤 난다. 특히 면접 과정 중 기민하게 대처하는 센스나 기지는 반드시 일을 해야 습득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면접을 보면 좋은 학교에서 우수한 학점을 받은 지원자보다, 인턴, 아르바이트, 공모전, 학회, 동아리 등 다양한 경험으로 무장한 지원자들이 확실히 두각을 나타낸다. 반면 A사 사례에서의 지원자처럼 고시공부나 어려운 자격증 공부로 2~3년을 보내다가 결국 취업으로 진로를 변경한 지원자들의 경우는 지금의 채용 환경에서는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면접관들이 던진 질문에 답변 시 어필할 경험이 없는 것이다.

② 계단형 이직의 증가
과거에는 대기업, 금융권, 그리고 공기업은 출신학교나 나이에 따라 기회가 제한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회사에서 SPEC 타파, 나이나 학력에 따른 차별을 철폐했고 공기업을 비롯한 몇몇 회사에서는 아예 블라인드 채용 방식까지 적용하고 있다. 학교의 레벨, 학점, 나이 등이 무색해졌다.
처음에는 작은 회사에서 본인이 원하는 직무 수행을 통해 경험을 쌓으면서 더 나은 조건과 규모의 회사로 전직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시 말해 소기업 - 중견기업 - 대기업으로의 계단식 이직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원하는 기업을 한번에 가기보다는, 시간을 길게 두고 차근차근 일에 대한 경험을 쌓는 방식이 점차 당연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신입사원이라고 하면 최소 20대를 넘지 않아야 했지만, 지금은 나이에 따른 차별도 없어져서 30대 신입의 입사도 그다지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인사 전문가인 B는 원래 지방 소재 소규모 제조기업 공장의 인사담당자였다. 그는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자세로 학습하고 노력해서 본인이 소속한 조직의 인사제도를 개선하고 발전시켰다. 지역 인사담당자 모임에도 열심이었다. 3년 뒤 그는 다른 업종이지만 규모가 훨씬 큰 경기권역의 제조기업 본사 인사담당자로 중고 신입 신분으로 전직했다. 이 회사는 B의 열정과 인사 전문성을 높이 샀고 기대했다. B는 이 회사에서도 약 3년 정도 인정받으면서 근무를 하다가 이번에는 서울 소재 IT 회사의 인사팀장으로 경력을 인정받아 다시 스카우트되었다. 기존 직장에서의 평판, 새롭게 조직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그의 전문성이 인정받은 케이스이다. 아마도 B가 신입이었을 때는 지금의 회사에 한번에 입사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4. 중고신입을 기피하는 회사도 있다?

아무리 시대 트렌드가 ‘중고신입 선호’라 해도 반드시 그런 회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발전기업 C사에서는 신입사원 채용 시 토의 면접을 활용한다. 토의 주제는 “’오버홀’을 예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적으로는 어떤 준비를 할 것인가?”였다. 발전소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생소할 용어인 ‘오버홀’은 발전기를 멈추고 정비를 하는 기간이며, 가급적 이 기간을 짧게 가져가려고 하기 때문에 관련된 많은 구성원이 낮밤을 가리지 않고 분초를 아껴가며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조당 7~8 명의 지원자들이 면접에 참여하여 발언을 하는데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D 발전사에서 인턴을 하면서 오버홀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당하게 본인의 경험을 어필했다. 다른 경쟁자들 중엔 오버홀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한 이도 있었는데, 그야말로 ‘진짜가 나타났다’ 격이었다. 이 오버홀 경험자는 자연스럽게 토의의 리더가 되어서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C 발전사의 면접관들은 이 오버홀 경험자를 좋지 않게 평가했으며, 결국 그는 탈락하고 말았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경험을 한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의 인턴 경험으로 오버홀을 다 이해했다고 볼 수도 없고, 실제 그 지원자의 발언에는 틀린 내용도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토의 면접을 통해 협의하는 자세, 리더십, 팔로우십, 경청능력 등을 판단하고자 하는데, 면접 과정에서 약간의 경험으로 지나치게 우월감을 보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정도의 경험과 지식은 우리 회사에서 몇 개월이면 누구라도 금방 배우는 것이거든요!”
이처럼 중고신입이 가진 경험의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그 차별점이 결정적인가를 판단하는 회사, 면접관들이 분명 있다. 이들은 오히려 ‘다른 회사에서 불필요하거나 부적절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것을 고치는 것이 더 힘들다’고도 한다. 그래서 중고신입을 안 좋게 보는 경험자의 의견에 따르면, ‘사회생활에 익숙하고 눈치도 빠른데, 조직을 상대로 바람직하지 않은 얕은 수작을 부린다’던가, ‘책임에 대한 부담 없이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면서 오히려 함께 입사한 순수한 입사자들을 안 좋게 물들이는 경우도 있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고도 한다.

5. 기업의 특성에 따른 중고신입 선호 여부

필자가 보기에 중고신입의 선호도에는 해당 기업의 특색이 많이 작용한다. 기본적으로 업력이 오래되지 않은 기업, 테크 IT와 같은 신산업, 새로 만들어진 스타트업의 경우 당연히 중고신입을 선호한다. 이들을 일일이 가르쳐 줄 교육부서나 OJT 과정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은 회사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산업은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느긋하게 신입사원을 양성할 수 있는 여력을 보유한 회사는 많지 않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중고신입의 선호 현상은 계속될 것인가? 다음의 이유로 점차로 중고신입, 나아가서는 경력사원의 시대가 열릴 것은 명확하다.
우선 지금의 MZ 세대는 평생직장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에 충실하며 지금 있는 조직에서 적절한 경험을 쌓고 미련 없이 더 나은 조건의 조직으로 이직할 준비가 되어 있다. 퇴직과 이직에 대한 인식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 또한 기업들에게 있어서도 과거처럼 변화가 느린 시대에 맞추어서 신입사원을 느긋하게 양성하고 가르칠 시간이 부족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지금의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필요시 해당 직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직원들을 즉시 활용해야 한다. 과거에 훌륭한 기업교육으로 유명했던 글로벌 초우량 기업들도 지금은 교육부서와 예산을 줄이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지금은 다양성의 시대로 중고신입과 경력에 대한 선호도만 존재할 것 같지는 않다. 아직도 안정적인 직장에서 장기근속을 원하는 젊은 인재들도 많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탄탄한 기업문화와 교육제도를 가지고 긴 호흡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지하는 것을 선호하는 회사도 있다. 정답은 없다. 우리 회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에 따라 선호도는 당연히 바뀔 수 있다. 인사담당자라면 우리 회사에 맞는 인재상을 먼저 정립하고 그에 맞추어서 채용 제도를 설계하고 면접관을 교육, 공감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도 이 질문을 한다.
“’중고신입’과 ‘생신입’ 중에 어떤 지원자를 더 선호하세요?”